에디터의 글

서울문화사 2024. 3. 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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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디디온처럼 쓸 수 없다면 그 글을 읽기라도 하자.

내 말의 의미는

조앤 디디온, 책읽는수요일

요즘 같은 세상에 조앤 디디온을 소개하려면 ‘넷플릭스에 다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다. 2017년작 <조앤 디디온의 초상>은 당시 미국의 논픽션 저널리즘과 그를 둘러싼 분위기에 대해 다루는 잔잔한 다큐다. 분위기는 잔잔한데 게스트는 화려하다. 조앤 디디온을 지켜본 사람 중 하나로 해리슨 포드가 나오니까. 이 다큐에서 해리슨 포드의 타이틀은 목수다. 배우가 되기 전 목수를 하다 조앤 디디온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조앤 디디온이 누구길래 그의 다큐가 나오고 여기에 해리슨 포드까지 나올까? 유명하기 때문이다. 멋진 글로. 그는 당대 미국을 대표하는 논픽션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 중 하나다. 그는 2004년 남편을 잃고 2005년 <상실(원제는 마법적 사고의 해)>을 썼다. 이 책은 2005년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영국 신문 <가디언>은 21세기에 가장 위대한 책 100권 중 하나로 이 책을 꼽았다. 2021년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가 이 위대한 작가를 추모했다.

조앤 디디온의 무엇이 위대할까? 글이. 특유의 시점이. 조앤 디디온은 생전 멋진 기사를 많이 썼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도, 선과 악을 선명하고 단순하게 가르는 선전물도 아니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작가 힐튼 앨스는 조앤 디디온의 글을 빌려 그의 글의 특징을 정리한다. ‘세상을 보기는 하지만 참여하지는 않고, 세상 속을 통과하지만 몸담지는 않는’ 태도로 미국 사회를 관통하고 묘사했다고. 그가 글로 그린 미국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시대의 초상이 되었다.

위대한 작가는 조앤 디디온 말고도 많은데 왜 이 책을 소개하는가? 그가 잡지인 출신이라서다. 조앤 디디온은 미 서부 출신인데 <보그> 에세이 공모전에서 수상해 동부로 넘어와 <보그>의 에디터가 되었다. 미국의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잡지는 훗날 클래식이 되는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의 글을 싣던 전통이 있다. 크게 보면 조앤 디디온 역시 영미권 잡지에서 나올 수 있는 멋진 작가의 흐름 안에 있는 셈이다. 이 책 역시 조앤 디디온이 각종 매체에 발표한 12개의 글로 구성되었다.

미국 잡지 글의 멋은 세계 수준이다. 조앤 디디온의 글은 ‘뉴 저널리즘’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 말처럼 그의 글은 기술적으로 아름다운 글인 동시에 내용적으로 저널이다. 정리된 사건이 있고 명확한 데이터가 있으며 그에 기반한 관찰과 통찰이 있다. 오늘날 한국 잡지 글의 특징으로 희화화되는 뜻도 모를 외국어나 사전에만 있는 (명징이나 핍진처럼) 이상한 단어는 없다. 조앤 디디온 글의 멋은 잔재주가 아니라 기본적인 구조 위에 얹히는 남다른 시선과 리듬에서 온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이른바 패션잡지 글에 대한 고정관념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 관념은 일정 부분 맞을 것이며, 그건 나를 비롯한 잡지인이 초래했을 것이다. ‘잡지 글이란 게 뻔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이 책을 권한다. 잡지 글이 얼마나 우아할 수 있는지, 얼마나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잡지 글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분야의 클래식이니까.

칼날 위의 삶

라훌 잔디얼, 심심

책 제목은 문학적이지만 이 제목은 100% 실제 상황이다. 저자 라훌 잔디얼은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고 첫 장면부터 자극적이다. 총상 환자가 헬리콥터로 실려온 뒤 심정지가 와서 저자는 환자의 심장을 맨손으로 마사지한다. 이 장면을 시작으로 저자는 말 그대로 생사를 오가는 현장을 내내 전한다. 극도의 긴장감과 압박감. 그 안에서 발휘되어야 하는 극도의 전문성. 그 결과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성장과 보람과 성찰. 저자는 이렇게 심리적인 요소들을 자신의 극적인 경험과 결부시키고, 그 사이로 본인의 전문 영역인 뇌과학을 끼워넣는다. 그래서 독자는 다양한 감정과 정보를 느끼며 저자가 깔아둔 스토리를 따라가게 된다. 기꺼이 페이지를 넘기며 스토리를 따라가고 싶을 만큼 멋진 책이다.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책과함께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는 연설에서 “안거낙업(安居樂業)을 지향점으로 국민에게 보답하겠다”고 했다. 책의 역자 윤대석은 이 단어를 듣고 전율했다고 했다. 안거낙업은 만주국의 슬로건이었기 때문이다. 만주국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존속했던 만주의 괴뢰국이다. 저자는 만주국을 ‘머리는 사자(관동군), 몸은 양(천황제 구가), 꼬리가 용(중국)’인 괴물 키메라로 상정하고 이 국가의 의미와 영향을 정리했다. 연설문의 ‘안거낙업’처럼 아시아의 역사는 아직 곳곳에 남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디로 가는지 알기 위해 어디서 왔는지 알 필요가 있고, 그 면에서 동아시아 현대사 책은 늘 가치가 있다. 번역을 다듬고 참고문헌 등 정보가 추가됐다.

Editor : 박찬용 | Photography : 송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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