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와 E

서울문화사 2024. 3. 7. 09:0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시리즈와 E클래스는 외모도 성격도 다르지만 가격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두 차의 어떤 점이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할까? 5시리즈와 E클래스 차주들에게 들어본 독일 차 구매기.

김승호 씨는 4년 전 4800만원을 주고 생애 첫 차를 샀다. 2017년식 은색 E300 아방가르드. 김승호 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차에 큰 관심도 욕심도 없다. 매일 역촌동에서 서교동까지 택시로 출근하는 게 번거로워 차를 샀다. E클래스를 사기로 한 건 주변에 E클래스 타는 친구들이 많아서다. 5시리즈를 타는 친구들도 있지만 두 부류에는 다른 느낌이 있다. “E클래스 타는 친구들은 다 신사예요. 점잖은 친구들. 5시리즈 타는 친구들은 ‘가오’가 좀 있죠.”

김승호 씨는 평소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이다. 차를 몰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E클래스를 타면서 시속 100km를 넘긴 적은 손에 꼽는다고 했다. 그는 쉬는 날이면 술보다 커피 마시기를 좋아하고, 집에서는 늘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그는 목에 고양이 타투가 있다. 물론 고양이 밑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은 타투가 있다. 직업은 타투이스트다.

김승호 씨가 5시리즈를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는 5시리즈의 실내 인테리어가 나쁘지 않았지만 ‘콧구멍이 너무 커서’ 구매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김승호 씨에게 차를 바꿀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CLS 생각하고 있어요. E클래스는 저한테 너무 길어요. 너무 정숙하고요. 무난한 게 좋아서 샀는데 그런 저한테도 너무 무난해요.” 김승호 씨는 앞으로도 5시리즈는 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저 이번에 96점 받았어요.” 33세 직장인 성승환 씨는 지난해 5월 2016년식 BMW 528i를 중고로 구입했다. 그가 차를 산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최근 티맵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운전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티맵 운전점수는 GPS 신호를 기반으로 급가속, 급감속, 제한속도 준수 등을 분석해 운전자의 점수를 매긴다.

성승환 씨는 중고차를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2000만원 중반대의 거의 모든 차를 선택지에 올렸다. E클래스도 후보 중 하나였지만 일찍이 리스트에서 탈락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E클래스는 디자인이 별로였어요. 얼굴도 이미지도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5시리즈가 최종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BMW만의 스포티한 이미지가 있죠? 학교 다닐 때 보면 공부보다 운동 잘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교실 앞자리보다 뒷자리에 앉는 5시리즈가 E클래스보다 얼마나 더 잘 달리는지는 몰라요. 실제로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요. 그래도 그 이미지가 중요했어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성승환 씨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늘 전교 3등 안에 들었고, 자기 스스로 얌전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성승환 씨의 5시리즈 이야기는 모순처럼 들렸지만, 실제로 E클래스 차주들이 5시리즈 차주보다 차를 더 안전하게 몬다는 것은 숫자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티맵이 발표한 ‘2023 국내 수입차 운전점수’ 랭킹에 따르면 벤츠 E클래스는 80.5점, BMW 5시리즈는 78.5점으로 각각 7위와 9위를 차지했다. 성승환 씨는 김승호 씨와 반대로 언젠가는 벤츠를 사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벤츠가 늘 내세우는 게 ‘럭셔리’잖아요. 기왕 벤츠를 탈 거면 새 차로 사고 싶어요. 좀 더 나이도 먹고 돈도 많이 벌었을 때요.”

40대 중반에 접어든 이주승 씨는 서울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 중이다. 그는 지난해 BMW가 7년 만에 메르세데스-벤츠를 제치고 국내 수입차 판매 1위를 달성하는 데 일조했다. 지난해 10월 신형 8세대 5시리즈가 출시되자마자 530i를 구입했기 때문이다. 이주승 씨와 성승환 씨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모델명을 물었을 때 528i, 530i가 아닌 코드네임 ‘F10’, ‘G60’으로 말했다. 김승호 씨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원래는 GLC를 사려고 했어요. 막상 시승을 했는데 뭔가 차가 붕 떠서 다니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X4를 보러 갔는데 신형 5시리즈가 있었죠. 코가 너무 예쁘더라고요.” 이주승 씨는 곧 출시될 E클래스를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디자인 때문에 5시리즈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디자인을 차지하더라도 5시리즈를 선택했을 거라고 말했다. “8세대 E클래스를 2주 정도 탄 적이 있어요. 안정성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벤츠는 늘 굼뜨게 출발하더라고요. 조향 감각도 무디고요. 제 성향에는 안 맞아요.”

이주승 씨는 기본적으로 차는 움직이는 물건이고, 재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차가 좋은 차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재 530i와 함께 포르쉐 911, 카이엔을 운용 중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주승 씨에게 앞으로 벤츠를 탈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그럼요. 나이가 들면 질문받는 게 귀찮아질 것 같아요. 만약 제가 60살 돼서 푸조를 타면 분명 ‘왜 그거 타세요?’ 물어볼 거예요. 그런데 벤츠는 설명할 필요가 없거든요.”

이번 마감을 하는 동안 신형 E클래스 시승 행사가 있었다. 서울에서 파주를 오가며 느꼈던 E클래스는 이주승 씨가 말한 그대로였다. 설명이 필요 없는 차다. 무엇 하나 모자란 것 없이 편하고 고급스럽다. 동시에 더 궁금한 게 없는 차이기도 했다. 차를 모는 내내 ‘이 차의 한계는 어디일까?’ 싶었던 순간은 없었다. 물론 모든 차를 타며 한계 성능치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5시리즈를 타는 이들 중에도 내가 E클래스에서 느꼈던 생각을 하며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동차는 생필품이기도 하지만,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과 안목으로 선택하는 기호품이기도 하다. 똑같은 이유로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것이 자동차 생활의 묘미이기도 하다. 차가 그 사람의 캐릭터를 반영하듯, 차 역시 사람을 반영하기도 한다. 기사를 쓰면서 메르세데스-벤츠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E클래스 밑에 이런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 ‘EVOLVES WITH YOU(당신과 함께 진화합니다).’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y : BMW, MERCEDES-BENZ

Copyright © 아레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