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 ‘청년 선생님’이 사는 법
[세상읽기] 이병곤
제천간디학교 교장·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지난 2월 개학 전. 충북 괴산에서 우리 학교 교사들이 모여 2박3일 ‘모꼬지’를 가졌다. 프로그램 주제 한 가지가 ‘시골 마을 공동체에서 살아남기’였다. 젊은 교사 셋이 발제를 맡았다. 교직 경력 5년째 접어드는 ㅇ선생(남)이 먼저 입을 뗐다.
“마을에 조용히 퍼지는 입소문이 놀랍죠, 제 삶은 마치 ‘안티팬이 많은 곳에서 사는 인기 없는 연예인의 일상’ 같았다고나 할까요. 겉으론 무심한 척하시지만 실상 마을 어르신들은 새로 이사 온 청년의 손짓 발짓 하나까지 죄다 보고 계십니다. 제 차의 어느 부분을 수리했는지 알고 계시다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죠.”
“하지만 살다 보면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아름다움에 절로 빠집니다. 마을 정자, 아스라이 건너다보이는 산과 밭의 모습, 안개 낀 산등성이는 저처럼 마음 메마른 사람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20평 남짓한 단독주택을 아주 싼 값으로 사들여 제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꿈꾸던 공간을 직접 가꿀 수 있다는 것이 시골생활의 백미죠. 주변에 마트나 편의점이 없거나 멀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택배’를 잘 활용하면 불편함이 어느 정도는 상쇄됩니다.”
학교가 자리한 제천시 덕산면에서 사계절을 오롯이 살아낸 새내기 ㅇ선생(여)이 말을 잇는다.
“살아오는 동안 도시 인프라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걸어서 3분 거리에 병원, 5분 거리에 초·중·고교가 다 있었죠. 10분 더 가면 쇼핑몰을 비롯한 온갖 편의시설이 더 펼쳐졌고요. 제가 도시를 떠날 거라곤 전혀 생각 못 했어요. 오로지 제천간디학교만 바라보고 왔어요. 도시의 편리성, 친구들과의 헤어짐 모두 제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어요.”
“덕산에 와보니 선입견과는 다르게 마을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덕산면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죠. ‘주민모임 마실’이 펼치는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이 의지하며 재미난 일상을 만들어가는 현장을 보았어요. 작년 가을에는 마을축제 스태프로 일하면서 마을살이를 경험하러 온 몇몇 청년들과 친구가 되었죠.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사람들 사이가 따뜻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요.”
세번째 발언자인 새내기 2년차 ㄱ선생(남) 차례가 돌아왔다.
“가장 어려운 것은 집 구하기였어요. 생활의 편리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면사무소 주변 지역인 ‘면세권’을 고집해서 더 그랬나 봐요. 시골이라 생활비가 덜 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어요. 천사 같은 월세는 좋았으나 악마 같은 난방비 때문이죠. 공연 보고, 강의 듣고, 모임 가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여기서그런 생활 하려면 크게 마음먹고 한번씩 도시로 나가야 가능했어요.”
“학교 초기 정착 시절에 여러 선생님들이 마음 내어 도움을 주셨어요. 각종 생활 가전제품을 챙겨주셨고, 삼겹살도 사주셨죠. 교통체증 전혀 없는 시골의 출근길도 매력입니다. 사계절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연환경은 말할 것도 없이 좋습니다. 도시에 살면 무의식 속에 경쟁심이 싹트고, 늘 뭔가 불안했는데, 여기 살아보니 그런 압박감에서 벗어나 훨씬 자유롭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새내기 교사들의 생활, 느낌, 생각을 웬만큼 알고 있다 여겼지만 큰 착각이었다. 이날 ‘각 잡고’ 저마다 들려준 이야기를 짚어보니 내 생각이 닿지 못한 곳들이 새록새록 드러났다. 특히 젊은 세대가 ‘익명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누군가의 관찰 대상이 되는 상황이 그렇게 버거운 마음의 부담인 줄은 몰랐다. 마을과 학교 사이의 친밀감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뼈아팠다. 발제와 논의 마당을 접자마자 근처 생맥줏집에서 ‘비공식 회합’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당근마켓 활용 비법, 제천화폐나 온누리상품권을 이용해 생활비 10% 줄이기, 청년내일배움카드 사용법, 청년희망적금 이용 정보, 청년 정착금 지원받아 집수리하는 방법 등 ‘빠듯한 월급으로 시골생활 버티기 전략’을 귀동냥으로 들었다. 연이어 터지는 웃음, 박수 소리, 잔 부딪치기 속에서 왁자지껄 대화 나누다 보니 나는 그날 그만 과음하고 말았다.
충주시에서 덕산면 차부까지 들어오는 버스는 하루 4대뿐이다. 우리 학교에서 만 6년 근무한 교사는 6개월 동안 유급 안식학기를 누린다. 아직 안식학기를 갖지 않은 젊은 교사는 9명이다. 도시 삶을 접고, 시골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선생님들. 펄펄 살아 요동치는 대안교육의 심장이다. 나는 이들이 진심으로, 눈물 나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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