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주석중의 부재'에서 비롯된 또 하나의 비극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주 교수의 제자 수소문
그러나 수술 당일엔 다른 의사가 수술 진행
병원 "정상적 절차에 의한 교체" vs 유족 "사전 상의 없었다"
이른바 '대체불가 의사'로 알려졌던 서울아산병원 주석중 교수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수술 의료진을 바꿀 수 밖에 없었던 70대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병상에서 숨진 안타까운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유족들은 수술을 맡은 병원 측의 △예고없는 수술의사 교체 △뇌출혈 전조증상에 대한 늑장대응 때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모씨가(71세, 대구시 군위군) 대동맥류 진료를 받기 위해 아산병원의 주석중 교수를 찾아간 건 지난해 6월 이었다. 안과에서 백내장 진료를 받던 그가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인 주 교수를 찾아간 건 초음파 진단에서 대동맥류 소견이 나왔기 때문.
가족들은 급한 김에 헬스케어 서비스 검색을 통해 국내 심장혈관 최고권위자로 알려진 주석중 교수의 존재를 알게 됐고 급하게 외래진료 예약을 잡았다. 이 외래진료에서 이씨의 대동맥류 혈관치환술 수술날짜는 6월 18일로 잡혔다.
수술 성공률이 98~99%에 이를 정도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던 상황이라 수술날짜를 잡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수술일을 이틀 앞두고 주석중 교수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비보가 날아 들었다.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 교수 문하에서 배운 제자를 급히 수소문해 대구 동산병원에 근무중인 박 모 교수를 알게 됐다. 외래진료를 거쳐 수술날짜를 잡고 6월 29일 입원 절차를 마쳤지만 이 때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아버지를 입원시키려 병원에 가서야 수술의사가 김 모 교수로 바뀐 걸 알게 됐죠. 당시 병원 측은 대동맥 스탠트 수술은 전담자가 김 교수예요 라고 설명했어요" 이씨 아들의 말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납득이 어려웠다.
애초 최고 수준의 진료를 받기 위해 주 교수를 찾았고 여의치 않게 됐을 때 대안으로 그의 제자를 급 수소문했던 건데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수술의사를 바꾸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특히 분통을 터트리는 대목은 수술에 동참한다던 제자 박 모 교수는 끝내 수술실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사실이다.
"저희가 항의를 하자 병원 측은 수술 때 박 교수도 같이 수술실에 들어간다 했다"는 것이 가족들 주장이다.
수술을 한 뒤에 가족들은 또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이라 아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수술 후 경과가 크게 나쁘지 않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환자 이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섬망증세가 심했고, 수술부위에서 피가 흘러나와 몇일 뒤 2차 수술을 해야했다.
수술은 7월 3일 1차로 대동맥대체술이 있었고, 이후 혈액누출 현상이 생겨 7일 2차로 흉부혈관내 스탠트삽입술이 실시되는 등 2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가족들이 병원로비에서 환자를 첫 면회한 건 수술 뒤 이틀만인 9일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너댓가지의 없던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눈동자가 풀렸고 입부위가 살짝 돌아갔고(구완와사) 말이 어눌해진 사실을 파악해 뇌졸중 증세가 의심된다면서 회진의사에게 조치를 요청했으나 "자는 것일 수도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 오후까지만 지켜보고 얘기를 하자"며 의료진은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 결국 7월 11일 신경과 협진의사까지 참여한 진찰에서 △안면부 마비와 △구음장애 △좌측 손가락마비, △운동실종 등의 증상을 파악한 뒤 곧바로 CT촬영에 들어가 우측 뇌경색과 심한 혈관협착증(우측 M2혈관)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 지점이 병원의 대응이 늦었다고 보는 대목이다.
뇌졸중 진단후 환자의 상태에 대해 가족들은 "'중풍'을 맞았지만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병원로비에서 걷는 시간을 늘리는 등 재활노력을 기울이면서 2~3주 가량의 시간을 보냈고, 8월 6일에는 식사를 혼자할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였다. 이씨는 끝내 병상을 털고 일어서지 못했다.
8월 6일 뇌출혈이 발병해 결국 숨을 거두게 됐다. 여러 가지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났을 때 의료진이 가벼이 넘긴게 골든타임을 놓치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졌다는 생각에 가족들은 병원을 원망하고 있다.
환자의 아들 이 모씨는 5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수술 뒤 안정을 찾던 아버지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됐지만 의료진이 섬망증세인지 뇌졸중 등 뇌와 관련된 질환의 조짐인 지를 제대로 구별해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뇌경색 진단이 나온 뒤 신경외과 의사도 협진에 투입됐다. 당시 이 의사를 접했던 환자의 아들 이 모씨는 "뇌출혈이 발생했을 때 신경과 의사는 (환자가)외래로 들어온 줄 알았나봐요. 신경과 선생님 말씀이 '너무 늦게 오셨어요 너무 많이 진행돼서..'라고 안타까워 했다"고 의사의 말을 전했다.
담당 의사는 사고 1주일 뒤 외래에서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 일에) 도의적으로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병원 직원이어서 제가 해줄 건 없어요. 병원에 얘기하세요"라는 말을 건넸고 병원에 적절한 대책을 요구하는 요구를 남겼지만 병원측에서 아무런 대응이 없어 유족들은 지난해 연말 병원에 내용증명 우편을 발송하고 법적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의료진의 과실여부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가려질 일이지만, 주 교수의 불의의 사고와 환자에게 통보되지 않은 수술의사 교체 사실, 뇌졸증 → 뇌출혈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병원측이 취한 의학적 조치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쉽게 가라 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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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CBS 이재기 기자 dlwor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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