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테이텀의 스토리처럼···2024년 3월, ‘우상’을 상대하는 스미레는 어떤 이야기를 쓸까

윤은용 기자 2024. 3. 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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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한국기원에서 당시 10살이었던 나카무라 스미레 3단(왼쪽)을 위해 무릎을 꿇고 포즈를 취하는 박정환 9단. 한국기원 제공



어릴 적 우상이었던 사람을 성장한 뒤 다시 만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성인이 돼 경기에서 자신의 우상을 상대로 경기를 한다면, 그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보스턴 셀틱스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꺾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2017~2018 미국프로농구(NBA) 동부콘퍼런스 결승 매치업을 확정한 2018년 5월10일, 당시 19세였던 보스턴의 신인 선수 제이슨 테이텀이 어릴 적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찍은 사진이 주목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제임스를 NBA 선수가 되고 나서, 그것도 중요한 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것 자체만으로도 테이텀에게는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시리즈 내내 무시무시한 활약을 한 제임스를 앞세운 클리블랜드가 4승3패로 이겨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지만, 경기 후 둘은 승패와 상관없이 진한 포옹을 나눴다. 그리고 테이텀은 “그와 함께 뛴 이번 시리즈는 내게 정말 특별했다. 난 제임스를 보면서 자라왔다. 이번 동부콘퍼런스 결승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2018년 5월28일 열린 보스턴 셀틱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2017~2018 미국프로농구 동부콘퍼런스 결승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가 승리한 뒤 르브론 제임스(왼쪽)와 포옹하는 제이슨 테이텀. 게티이미지코리아



오는 11일 제5기 쏘팔코사놀 본선리그 2라운드에 나서는 나카무라 스미레 3단(15)에게는, 그날이 2018년 5월 테이텀이 느꼈던 그 감정을 똑같이 체험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지도 모르겠다. 스미레의 상대가 다름 아닌 ‘무결점’ 박정환 9단(31)이기 때문이다. 박정환은 스미레가 우상으로 여기는 기사다.

스미레와 박정환의 인연은 스미레가 막 10살이 됐던 201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정 9단과의 ‘슈퍼매치 영재·정상 대결 스미레 vs 최정’ 대국을 하루 앞두고 한국기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스미레는 우상을 묻는 질문에 “박정환 9단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2개월 후, 한 매체와 진행한 합동 인터뷰 자리에서 마침내 자신의 우상을 만났다. 일본기원의 영재 특별채용을 통한 정식 프로기사 입단을 1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꼬마 아이였던 스미레를 위해 박정환이 무릎을 꿇고 찍은 사진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도 스미레는 여전히 박정환을 좋아하고, 또 존경한다. 스미레는 지난해 8월 한국기원에 객원기사로 이적하기를 요청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한국기원의 승인을 받아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활동에 나섰다. 지난 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미레에게 ‘한국 바둑기사 중에 본받고 싶은, 존경하는 기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스미레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박정환이었다. “박정환, 최정, 오유진 9단, 김채영 8단을 많이 존경한다. 바둑을 매우 잘 두고, 성격도 너무 좋고 친절하다”는게 스미레의 대답이었다.

나카무라 스미레 3단이 지난 4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스미레는 일본에서 프로 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버지 나카무라 신야 9단과 일본기원의 바둑 강사로 일했던 어머니 나카무라 미유키씨의 영향을 받아 3살 때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고, 2015년에는 한국으로 건너와 한종진 9단(현 기사협회장)이 운영하는 도장에서 유학을 하기도 했다. 2019년 만 10세0개월의 나이로 입단해 후지사와 리나 6단의 11세6개월을 넘어 일본기원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웠던 스미레는 지난해 2월 제26기 여류기성전에서 13세11개월의 나이에 우승, 후지사와의 15세9개월을 넘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일본의 천재 바둑 소녀’라며 많은 주목을 받는 스미레가 한국행을 택한 것은 강자들과 대결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좀 더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우승도 노릴 수 있다지만, 전문가들은 일본보다 여자기사들의 선수층이 두꺼운 한국에서는 나카무라의 수준을 랭킹 10위 안팎으로 평가하고 있다. 나카무라도 “현재 한국에서 내 실력은 여자 랭킹 15위 정도라고 생각한다. 최정 사범님과 김은지 사범님은 지금 내 실력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오유진 사범님도 마찬가지”라며 인정한다.

3일 쏘팔코사놀 본선리그 1라운드에서 이창석 9단을 상대로 한국기원 객원기사로서의 데뷔전을 가져 아쉽게 패배했지만, 이도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고 웃는 스미레는 11일에는 대국 그 자체만으로도 얻는게 많기를 바라고 있다. “박정환 사범님과 대국을 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쁘다. 세계 톱 기사이기 때문에 대국하는 것이 너무 긴장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며 설레는 마음 또한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대국을 고대하는 것은 박정환 또한 마찬가지다. 박정환은 지난달 28일 쏘팔코사놀 본선리그 1라운드에서 임상규 2단을 상대로 승리한 뒤 “다음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스미레 선수와 두게 되어 너무 기쁘고, 일본에서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 한국에 오는지 기대되고 재미있는 바둑을 뒀으면 좋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둘 중 누가 이길 가능성이 높은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두 기사에게 있어 이 대국은 승패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는 한 판이다. 2018년 5월 테이텀이 그랬던 것처럼, 꼬마아이에서 어엿한 프로기사로 성장한 스미레 역시 5년 만에 반상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우상과의 첫 대결이 특별한 추억으로 남길 기대한다. 물론 2018년 5월의 제임스와 같은 위치에 있는 박정환도 마찬가지다.

박정환 9단이 6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기 5육七 관절타이밍 한국기원 선수권전 결승 5번기 최종국에서 설현준 9단과 대국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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