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초전도체’라는 러시안룰렛에 참가한 사람들

강정아 기자 2024. 3.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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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전기는 구리로 만든 케이블을 통해 이동한다.

100년 넘게 상용화가 안 됐다 보니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몰랐던 초전도체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우리나라 주식투자자들의 주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개발됐다고 하는 상온 초전도체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초전도체와 같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테마주 투자는 이 러시안룰렛에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위험을 끌어안아야 하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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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전기는 구리로 만든 케이블을 통해 이동한다. 하지만 중간에 손실되는 양이 많다 보니 사용하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전기를 내보내야 한다.

초전도체가 개발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저항이 ‘0′인 초전도체는 전력 손실·발열 없이 전기를 목적지까지 100% 보낼 수 있다. 자석 위로 떠 오르는 성질이 있는 초전도체를 활용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자기부상열차를 만들 수 있고, 반도체의 집적도 또한 혁신적으로 높여 슈퍼컴퓨터를 노트북 크기로 줄일 수도 있다.

문제는 ‘온도’다. 전기저항을 ‘0′까지 낮추기 위해선 온도를 영하 273도까지 떨어뜨려야 한다. 그렇기에 1911년 네덜란드 카멜린 온네스 교수가 초전도체를 처음 발견한 이후에도 한 세기가 지날 동안 기술적인 문제와 비용 등으로 상용화될 수 없었다.

100년 넘게 상용화가 안 됐다 보니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몰랐던 초전도체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우리나라 주식투자자들의 주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동안 그 어떤 전문가도 개발하지 못했던 상온 초전도체를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개발했다는 소식은 주식시장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투자자들은 관련 테마주로 달려들었다. 지난달 28일 일명 ‘초전도체 대장주’로 불리는 신성델타테크는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 에코프로비엠 등을 제치고 거래량 1위를 찍었다. 이날 신성델타테크의 거래액만 1조원이 넘었다.

하지만 개발됐다고 하는 상온 초전도체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이미 네이처·사이언스 등 국제학술지가 퀀텀에너지연구소 등이 개발한 ‘LK-99′를 불순물로 평가하면서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작년 12월 국내 초전도학회 검증위원회도 LK-99가 상온 초전도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달 4일(현지 시각) 미국 물리학회(APS)에서 LK-99 연구에 이름을 올렸던 일부 연구진이 상온·상압 초전도체라고 주장하는 물질 ‘PCPOSOS’에 대한 후속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샘플을 공개하지 않고, 영상만 공개해 실망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해당 발표 질의응답에 참여한 체코 카렐대의 페트르 체르마크 박사는 “모든 것은 여전히 추측적이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돌아오는 정치 테마주의 말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단기 투자 중심의 ‘테마장’은 항상 초라하게 끝난다. 지난 5일 APS 후속 연구 발표에 일제히 급락했던 초전도체 관련주들은 전날 특허청이 초전도체 주장 물질의 특허 출원을 거절하지 않고 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다시 급등했다. 향후 어떤 소식이 또 주가를 흔들지는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결론은 여느 테마주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총알 한 발만 장전하고 탄창을 돌린 뒤 상대와 돌아가면서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위험한 게임이 있다. 바로 ‘러시안룰렛’이다. 참여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어도 운명은 운에 따라 엇갈린다. 초전도체와 같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테마주 투자는 이 러시안룰렛에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위험을 끌어안아야 하는 게임이다.

이미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도 나왔다. 바로 초전도체 테마로 묶인 기업의 주요 임원들이다. 이들은 벌써 올해 1~2월 사이 보유 주식을 팔아 차익 실현을 하고 초전도체 테마장에서 빠져나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임관헌 신성델타테크 부사장은 지난달 10, 23일과 이달 4일 세 차례에 걸쳐 보유 주식 2만주를 모두 장내 매도해 약 27억원을 손에 쥐었다. 같은 회사의 김정현 상무이사(5000주), 윤종규 전무이사(5000주)도 올해 1월 말 주식을 팔아 각각 약 3억7000만원씩 현금화했다. 서남의 이호엽, 이복형 부사장 역시 지난 1~2월 사이 각각 11억6000만원, 2억1500만원씩 보유 주식을 내다 팔았다.

초전도체와 같은 테마주가 국내 증시를 흔드는 상황은 그만큼 증시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묻지마 투자’가 아닌 신중한 투자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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