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가 바꾼 엘리베이터…AI로 범죄막는 시대[미래on]

최동현 기자 2024. 3.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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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비명·이상동작 감지해 신고…원룸·아파트 등 주거시설 도입 급증
"집사처럼 심부름도 엘리베이터로"…로봇 연계 '컨시어지 서비스'로도 진화

[편집자주] 기술·사회·산업·문화 전반의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산업·문화 혁신과 사회·인구 구조 변화 등 여러 요인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현상이다. 다가오는 시대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려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가늠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뉴스1은 세상 곳곳에서 감지되는 변화를 살펴보고 어떤 식으로 바뀌는지 '미래on'을 통해 다각도로 살펴본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부산 서면의 한 오피스텔. 새벽에 홀로 귀가하던 20대 여성 A 씨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날아든 발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여성을 뒤쫓아온 전과 18범 이현우(32)는 신음하는 A 씨를 걷어차며 무차별 폭행했고, 폐쇄회로(CC)TV가 없는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 했다. 2년 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다.

변화는 때때로 인식에서 시작된다. 매일 무심코 지나쳤던 엘리베이터가 범죄와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공간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180도 달라졌다. 인공지능(AI)이 실시간으로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첨단 서비스 수요가 급증했다. 나아가 엘리베이터는 무인 로봇과 연계한 '컨시어지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 범죄 공포에 수요 증가…"비명·이상동작 땐 AI가 자동 신고"

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017800)의 유지관리 서비스 '미리'(MIRI)가 출시 8개월 만에 판매량 2만5000대를 돌파했다. 미리는 엘리베이터 내에 설치된 AI 카메라가 비명이나 이상동작을 감지하고 고객케어센터로 위치와 영상을 전송하는 서비스다.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각종 범죄와 사고의 '골든타임' 확보가 가능하다.

경쟁사들도 앞다퉈 동종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티케이엘리베이터는 AI 기반 안전보호 솔루션 'T-VIEW'(티 뷰)를 개발해 파일럿 테스트 중이다. 역시 AI가 엘리베이터 내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즉시 고객센터로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몸 다툼이나 넘어짐 등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24시간 운영하는 고객센터 상담원이 현장 상황을 파악해 119 등에 신고하는 식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AI가 들어온 배경은 최근 급증한 '흉악 범죄'와 연관이 깊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비롯해 신림역·서현역 흉기 난동 등 '묻지마 범죄' 급증으로 밀폐된 공간에 혼자 놓이거나 낯선 타인과 함께 이용해야 하는 엘리베이터의 '공간 수요'가 재조명됐다는 업계의 공통된 이야기다.

실제 미리는 초창기 병원이나 호텔 등 불특정 다수의 관리·보호가 필요한 공공시설을 위주로 도입됐지만, 최근에는 아파트·빌라 등 주거시설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서울 잠실에 다세대 주택을 보유한 심 모 씨(71)는 "뉴스를 보면 엘리베이터에서 무서운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며 "입주자 안전을 위해 (미리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상주 관리자가 없고 CCTV가 부족한 오피스텔, 빌라를 대상으로 문의가 많다"며 서비스 초기에는 호텔이나 리조트 등 대형 현장을 중심으로 도입됐지만, 요즘은 아파트나 원룸, 다세대 주택 등에도 빠르게 도입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가 배달의 민족 배달로봇 딜리 시연을 하고 있다/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로봇이 택배 받아 문 앞까지…컨시어지 플랫폼 진화하는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는 안전을 넘어 '컨시어지(Concierge)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저택의 집사'를 뜻하는 컨시어지는 귀찮고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대신 해주는 편의 서비스의 총칭하는 용어다. 엘리베이터와 자율주행 로봇을 연계해 택배나 음식을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라스트마일(Last Mile·물류 배송 최종 구간)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미리 API'(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통해 호텔·리조트·대학병원·아파트 등 시설에서 로봇 배달을 하는 라스트마일 서비스를 시범운영 중이다. AI 클라우드 기술로 로봇은 물론 스마트 기기, 건물관리시스템(BMS)과 연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에서 배달 음식을 주문하면 1층에서 로봇이 음식을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져다주는 서비스가 가능하다.

네이버가 판교 제2사옥 1784에 도입한 '로봇 배달 시스템'은 라스트마일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0대의 배달 로봇이 28층 높이의 건물을 구석구석 다니며 서류나 물건을 배달한다. 로봇과 엘리베이터가 정보를 주고받으며 정해진 장소로 이동할 수 있도록 협업한다. 엘리베이터와 로봇을 연계한 라스트마일은 택배 차량 출입 제한 등 갈등을 겪는 아파트 단지에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일찌감치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KT, LG전자 등과 '엘리베이터-로봇-통신 연계 서비스' 개발에 나선 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자율주행 로봇 기업 뉴빌리티와 '자율주행 로봇과 엘리베이터의 상호연동 서비스 및 국내·국제 표준 개발을 위한 사업의향서'(LOI)를 체결하는 등 역점을 두고 있다.

조재천 현대엘리베이터 대표는 지난해 7월 미리 서비스 출시 당시 "미리는 엘리베이터가 이동 수단을 넘어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스마트폰, AI, 로봇 등 다양한 기기와 엘리베이터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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