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뜬 류승룡, 내조퀸 ♥아내 자랑 “돈 자기가 벌테니 연기하라고”(유퀴즈)[어제TV]

서유나 2024. 3. 7. 05: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뉴스엔 서유나 기자]

배우 류승룡이 내조퀸 사랑꾼 아내를 자랑했다.

3월 6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234회 '인생은 팔당터널' 특집에는 배우 류승룡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유재석은 전설로 내려온 서울예대 한 학번 선배 류승룡에 대해 말 꺼냈다. 직접 뵌 적은 없는데 '학교에 한복을 입고, 고무신 신고 다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는 것.

류승룡은 실제로 한복을 입었냐는 질문에 "생활한복 편한 거, 머리 길고 수염도 길렀는데 스키니한 청바지가 이상하더라. 거기에 맞춰 위에서부터 내려오게 입었다"고 답하며 사실임을 인정했다.

조세호는 무엇보다 "집에 계신 가족분들이 그런 모습으로 학교 다닌다고 했을 때 뭐라고 안 하셨냐"고 궁금해했다. 이에 류승룡은 "많이 힘들어 하셨다"면서도 "워낙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머리를 짧게 스포츠로 하라고 하셔서 학교 가서 마음껏 나래를 펼친 것. 그냥 평범한 게 싫었던 것 같다"고 그런 스타일을 고수한 이유를 전했다.

배우의 꿈을 키우며 대극장 무대 세트 일, 족발 배달, 실내 인테리어, 배추 나르기, 자동차 세차, 과수원, 도로 아스팔트 공사 등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한 류승룡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뮤지컬 '난타'의 초기 멤버로 합류하면서. 미국, 유럽 투어를 다니며 인기를 끈 류승룡은 뉴스에도 자주 등장했다.

수입이 좋지 않았냐는 질문에 류승룡은 "연극하는 배우들 치고는 괜찮았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5년간 같은 공연을 거의 매일 했던 게 엄청 큰 자양분이 된 것 같다. 말이 없는 공연임에도 다르다. 똑같이 해도 반응이 다 다르다. 그런 것들이 큰 도움이 됐지만 대사를 못 하니까 갈급했던 것 같다. 과감하게 그만두고 연기를 하려 했다"고 밝혔다.

당시 만류는 없었냐고 묻자 류승룡은 "많았다. 힘든 중독 중 하나가 월급이라더라. 고정 수입이 없어지기에 그만두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연기가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힘이 된 건 무엇보다 지금의 아내의 응원이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는 '돈은 내가 벌 테니 하고 싶은 연기해'라며 류승룡을 응원했다고. 류승룡은 "고마웠다. 그게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그렇지만 제가 일을 안 한 건 아니다. 제가 '황진이'라는 작품 때 처음 매니저가 있었고 그전엔 작품이 없을 때 여러 가지 일을 계속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처가댁으로 처음 인사간 이야기가 나오자 류승룡은 짧은 한숨과 함께 "놀라웠다.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우리 아내는 오빠가 4명에 막내딸이다. 아빠 엄마한테 귀여움을 받았다. 인사 드리러 가는데 제가 그래도 양심이 있으니까 '이래도 되나'했는데 (아내가) '오빠 괜찮아'라고 해서 그냥 도인처럼 갔다. 그런데 장모님은 한복, 아버님은 양복, 형님들(아내의 오빠)도 다 격식있게 차려입고 계셨다"면서 "저를 보고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안동 권씨 집안이다. 화들짝 놀라셨을 것. 그래도 양반들이시니까 내색은 안 하셨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류승룡의 성실함을 높게 사주셨다는 장인, 장모님. 류승룡은 "제 결혼 사진을 보면 웨딩 사진은 머리를 길렀다. 도저히 결혼식을 그러고 못 가겠어서 결혼식 사진을 보면 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조연을 벗어나지 못하던 류승룡은 42세 나이가 되어서야 '최종병기 활'을 통해 대중에 이름을 알리고 인기를 얻었다. 그는 포기할까 생각을 안 해 봤냐는 질문에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조연을 맡았을 때 이준익 감독님에게 '항상 주인공 뒤에 있는 게 힘들다'라고 하니까 '땅을 파는데 깊게 팔수록 말간 물이 나온다. 손톱이 아프고 피가 나지만 그때 포기 말고 더 깊게 파라'고 말해주시더라. 그 말씀이 박히더라"며 "그때 고민하던 작품이 '최종병기 활'이었다.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후 본격적으로 배우로서 빛을 보기 시작한 류승룡은 천만 배우에 등극했지만 약 4, 5년간 흥행 부진에 시달리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때 또 힘이 된 건 아내였다.

그는 "4년 동안 힘들고 축 처지더라. 제가 집에 가면 절대 바깥일을 얘기 안 하는데 분위기에 티가 나잖나. 아내가 그때 '여보 껌껌하지만 이게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생각해. 분명 터널이야. 내가 장담할게. 당신 같은 성실함과 기획력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마라'고 하더라. 그게 힘이 되더라. 물론 그다음, 다음 작품이 다 안 됐는데 '아니야, 또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랬다"고 말했다.

그러다 류승룡은 영화 '극한직업'을 만나며 4년 만에 흥행에 성공했다. "마지막 무대인사 때 다 울었다. 저부터 울컥했고, 대성통곡했다. 감독님도 피디님도 울고"라며 모두에게 간절했던 영화의 성공이었음을 전한 류승룡은 "아내가 '또 터널을 지나면 또 다른 터널이 나올 거다. 마음의 예산을 넉넉히 세우자'고 하더라. 실제로 '내려갈 준비해'라고 그랬다"고 아내의 남다른 반응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유재석은 "(아내분이) 혜안을 가지고 계시다"며 감탄했다.

뉴스엔 서유나 stranger77@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 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