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위, 김건희 ‘여사’ 빼면 감점 때리며 방송 ‘입틀막’
출범 석달도 안돼 징계·경고 ‘9건’
법정제재 비율, 이전보다 압도적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치 심의 논란에 이어 4월 총선을 앞두고 꾸려진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의 ‘편향 심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선방위가 정부·여당에 비판적 내용을 다룬 방송사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무더기 법정 제재를 내리고 있어서다.
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출범한 22대 국회의원선거 선방위는 그간 여덟 차례 회의를 열어 모두 54건의 방송심의 안건을 의결했다. 현재까지 나온 법정 제재는 총 9건으로 이 가운데 7건이 문화방송(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관계자 징계 5건, 경고 2건)이 대상이었다. 와이티엔(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시비에스(CBS) ‘박재홍의 한판승부’도 각각 경고와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모두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 여권 인사나 정책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 담긴 방송이었다.
‘역대 선방위 의결 현황’을 보면, 이번 선방위의 법정제재 규모와 수위는 이례적이다. 전체 의결 중 법정제재 비율은 17%에 이른다. 19대 대선(2017년·5%), 7회 지방선거(2018년·8%), 21대 총선(2020년·1%), 20대 대선(2022년·1%), 8회 지방선거(2022년·5%) 등 과거 선방위에 견줘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특히 가장 무거운 제재인 관계자 징계는 벌써 6번이나 나왔는데, 앞선 18번의 선방위에서는 관계자 징계가 2번(2014년 6회 지선, 2016년 20대 총선)뿐이었다.
선방위의 ‘과잉 심의’에 대한 우려는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추천을 받은 심재흔 위원은 지난 1월11일 회의(3차)에서 “지난 대선 때 7개월 동안 법정제재가 3건이었는데 우리는 첫 회의에서만 2건을 내렸다. 이런 페이스로 가다가는 가혹한 징계가 쌓이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백선기 선방위원장은 2월22일 회의(7차)에서 “그때와 지금의 시대정신이 달라졌다. 언론사가 변하려면 경고성, 주의성, 엄격성이 있어야 한다”며 일축했다.
언론의 ‘위축 효과’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난다. 앞서 선방위가 에스비에스(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서 ‘김건희 특검’을 언급하면서 ‘여사’라는 호칭을 생략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권고)를 결정하자 다수 방송사는 실제 용어를 바꿨다. 지난달 26일 시비에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김준일 평론가가 여사 호칭을 빼고 발언하자 진행자가 “김건희 여사 특검법”으로 정정하며 “‘여사’를 꼭 붙여야 한다는 지침이 있죠”라고 했다.
압박은 출연자 교체로도 이어졌다. 문화방송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을 진행해온 신장식 변호사는 지난 1월 하차를 발표하며 “엠비시에 더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선방위 제재가 집중되면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문화방송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에서도 관련 지적이 나왔다. 여권 추천 이사인 차기환 이사는 지난 5일 정기회의에서 “뉴스하이킥 프로그램은 법정제재를 여러 건 초래했는데 엠비시는 그 프로그램 제작 피디에 격려상을 줬다”며 비판했다.
언론계에선 선방위가 ‘표적 심의’를 통해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김중호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시비에스지부장은 한겨레에 “가장 심각한 점은 선방위 징계가 방송사 재허가 감점 요소라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권 임기 안에 재허가 심사가 한번 더 있다. 관계자 징계와 경고, 주의는 각각 4점, 2점, 1점의 감점을 받게 돼 (징계는) 방송사에 실질적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시비에스는 지난 2월29일(8차) 선방위에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20대 총선(2016년)에서 선방위원을 지낸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제재 수위는 일정해야 하고, 기존 심의 사례를 판례 삼아 예측 가능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주관을 가지고 제재를 내린다”고 비판했다.
이번 선방위는 출범 당시부터 편파적 구성으로 잡음을 일었다. 공직선거법(8조)에 따라 방심위 산하에 설치되는 선방위는 국회 교섭단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변호사협회, 방송사·방송학계·언론인단체 등에서 추천한 심의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류희림 방심위는 이 추천권을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종편 채널(티브이조선), 강성 보수 성향 언론단체(공정언론국민연대) 등에 배분했다. 백선기 선방위원장은 류희림 위원장의 대학원 지도교수였다. 이 명단은 야권 위원과 합의 없이 확정됐다.
한겨레는 ‘과잉 제재’, ‘표적 심의’ 논란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백 선방위원장에게 전화와 문자로 질의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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