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세계 최초 양수로 만든 태아 미니 장기, 임신 중 맞춤 치료 길 열려

이영완 과학에디터 2024. 3.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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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말기 양수에서 태아 줄기세포 분리
폐, 신장, 소장 특성 오가노이드로 배양
선천적 기형 , 임신 중 조기 진단 가능
출산 전 태아 맞춤형 치료할 수 있어
양수에 포함된 줄기세포로 만든 태아의 신장 오가노이드. 신장 세뇨관 구조가 보인다./영 UCL

태아의 선천적 기형을 출산 전에 조기 진단하고 맞춤 치료까지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영국 과학자들이 임신 중에 채취한 양수로 태아의 미니 장기(臟器)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이전처럼 태아 세포를 직접 채취하지 않아 윤리 문제 없이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마티아 겔리(Mattia Gerli) 교수와 UCL 그레이트 오먼드 병원의 파올로 드 코비(Paolo De Coppi) 박사 연구진은 지난 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임신 말기인 34주에 산모에서 채취한 양수로 여러 장기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오가노이드(organoid)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라고 불린다. 이를테면 폐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로 미니 폐를 만든 것과 같다. 이전에는 인체 세포를 평면 배양접시에서 키워 인체 내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양수에 포함된 줄기세포로 만든 태아의 소장 오가노이드./영 UCL

◇양수에서 장기 특성 가진 줄기세포 분리

양수는 태아를 싸고 있는 액체이다. 태아를 보호하고 모체와 태아 사이의 신진대사도 돕는다. 임신 중반 이후에는 주로 태아의 소변과 폐에서 분비된 체액으로 이뤄진다. 병원에서는 태아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양수를 채취하거나 과도한 양수를 배출하는 시술을 한다.

연구진은 임신 16~34주 사이에 채취한 양수 12건을 확보했다. 양수에 들어있는 세포는 대부분 죽은 상태였지만, 극히 일부는 아직 살아있는 줄기세포였다. 연구진은 단일 세포의 유전자를 해독해 폐와 신장, 소장의 특성을 가진 줄기세포를 각각 따로 분리했다. 이를 젤 배양액에 넣어 입체로 배양했다. 4주가 지나자 쌀알만 한 1㎜ 크기의 오가노이드로 자랐다. 연구진은 오가노이드가 폐와 신장, 소장의 특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다 자란 세포를 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리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배양했다. 지금까지 뇌와 폐, 소장, 신장 등 다양한 장기의 특성을 가진 오가노이드가 나왔다.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오가노이드로 배양하기까지 5~9개월이 걸린다. 이번 연구진은 이 시간을 4~6주로 단축했다.

겔리 교수는 “iPS 세포와 달리 양수에 있는 줄기세포는 이미 특정 장기의 특성을 가져 성체 세포의 발생 과정을 거꾸로 돌리는 역분화나 장기로 자라도록 하는 별도 조작이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태아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배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임신 중절된 태아 조직으로 만들어 윤리적 문제가 있었다. 양수 줄기세포는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

그래픽=손민균

◇기형 가진 태아의 치료 효과도 확인

과학자들은 오가노이드로 개발 중인 약물의 효과를 시험하고 있다. 환자 맞춤형 치료 효과도 같은 방식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 연구진은 양수 오가노이드로 임신 중에 태아의 선천적 기형을 진단하고 맞춤형 치료까지 가능함을 입증했다.

UCL 연구진은 벨기에 뢰번대 도움을 받아 ‘선천적 횡격막 탈장(CHD)’ 태아를 감싼 양수로 폐 오가노이드를 배양했다. CHD는 배와 가슴을 분리하는 근육인 횡격막에 구멍이 생기는 질병이다. 이러면 복부 장기가 가슴으로 밀려 올라가 폐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CHD 진단을 받으면 태아의 폐에 풍선을 밀어 넣는 치료를 한다. 그러면 폐가 확장돼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 연구진은 CHD 태아와 건강한 태아의 폐 오가노이드를 비교했다. 예상대로 건강한 오가노이드와 치료 전 CHD 오가노이드는 발달 상태가 크게 달랐다.

하지만 치료 후 CHD 오가노으드는 건강한 오가노이드에 훨씬 가까웠다. 세포 차원에서 치료효과를 확인한 것이다. 파올로 드 코피 박사는 “태아의 선천적 기형을 출산 전에 기능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태아 오가노이드로 치료 효과를 확인하고 더 나은 치료법도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영국 헐 대학의 로저 스터메이(Roger Sturmey) 교수는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를 통해 “지금까지 태아 오가노이드는 낙태한 태아 조직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로 배양해 법적, 윤리적 문제가 있고, 임신 중절도 20~22주까지만 가능해 임신 후기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연구는 낙태가 아니어도 태아의 주요 장기가 어떻게 형성되고 기능하는지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소변이나 혈액, 복부나 폐에 들어찬 물에 떠다니는 암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만들기도 했는데, 양수에서도 정상적인 태아 세포를 분리해 오가노이드를 만들 생각은 못했다”며 “발상의 전환으로 임신 중에도 태아의 오가노이드를 만들 가능성을 열어준 훌륭한 연구”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연구진은 최근 영국 암 저널에 방광암 환자의 소변에서 분리한 암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배양하고 치료 약물의 효과를 시험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양수로 모든 장기의 오가노이드를 배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글래드스턴 심혈관질환연구소의 베누아 브루노(Benoit Bruneau) 박사는 이날 네이처지에 “뇌나 심장같이 양수로 세포가 배출되지 않는 장기는 양수 오가노이드로 연구하기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수에 포함된 줄기세포로 만든 태아의 폐 오가노이드. 붉은색이 줄기세포이다./영 UCL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4-02807-z

British Journal of Cancer(2024), DOI: https://doi.org/10.1038/s41416-023-02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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