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끝까지 쫓는다”… 日주간지 기자들, 특종? 독종!
검은색 정장을 입은 일본 여성 국회의원이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남편을 배신하고 아이들에게도 고통을 줘서 정말 죄송한 마음”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의 히로세 메구미(58) 참의원(상원) 국회의원이 주간지인 슈칸신초(週刊新潮)의 불륜 보도를 인정한 것이다. 1남 1녀를 둔 히로세 의원은 “가족은 이런 나를 ‘다시 하나의 가족으로 살자’며 용서했다”며 7분 만에 6번 고개를 숙이곤 성급히 기자회견을 끝냈다.
일본 슈칸신초는 히로세 의원이 지난해 10월 30일 빨간 벤츠에 캐나다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인 앤디 울프(56)를 태우고 유흥가인 신주쿠 가부키초의 한 호텔로 들어가는 사진과 함께 ‘호텔에서 국회로 직행, 자민당 히로세 메구미 의원의 빨간 벤츠 불륜 충격의 하룻밤’이란 제목의 기사를 최근 내보냈다. 히로세 의원의 통화도 녹음해 “사진이 찍혔으니 (불륜을 인정해야지) 어쩔 수 없네”라는 육성도 온라인에 공개했다.
주간지의 단독 보도에 떠오르던 집권당 신인의 정치 생명이 끊긴 순간이었다. 히로세 의원은 2년 전 야당의 ‘텃밭’인 이와테 참의원 선거구에 출마해, 자민당에 30년 만에 의석을 되찾아준 신인 정치인이었다. 기자회견 한 당일 히로세 의원은 이와테현 자민당연맹의 부회장직을 사직했다. 의원 사퇴를 하진 않았지만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 주간지는 흥미 위주의 가십(gossip) 기사를 내고 취재원을 괴롭히며 때때로 오보(誤報)를 내는 ‘황색 언론’으로 흔히 폄하된다. 하지만 정치 권력자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취재해 까발림으로써 권력을 견제하는 감시자 역할도 한다. 이 선봉엔 일본 최대 주간지인 슈칸분슌(週刊文春)이 있고 이번에 히로세 의원의 불륜을 폭로한 2위 슈칸신초 및 3위 슈칸겐다이(週刊現代)도 일조한다. 일본인들은 권력자에게 ‘한 방’을 날리는 이 같은 주간지 보도를 ‘슈칸분슌이 쏜 대포’라는 뜻으로 ‘분슌호(文春砲)’라고 부른다. 특정 ‘목표물’을 포격하는 보도이자 걸리면 끝장을 본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일본 주간지의 정치인 ‘저격’은 불륜 사건에만 그치지 않는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직무 수행과 관련해 감추고 싶은 문제들을 드러내는 특종 보도도 때때로 터뜨린다. 아베 신조(1954-2022) 전 총리가 사임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되는 2020년 9월 슈칸분슌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슈칸분슌은 “아베 총리가 여름휴가 때 갑작스럽게 게이오대 병원을 방문했으며 그의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지난 2007년에도 같은 병이 악화돼 총리직을 중도 사퇴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던 아베 전 총리는 건강 악화를 주변에 감추다가 슈칸분슌의 취재로 더는 버티기 어렵게 됐다.
이어 총리가 된 스가 요시히데 또한 2021년 2월 ‘분슌호’을 맞고,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다 같은 해 11월에 물러났다. 일본 아키타현의 농가 출신인 스가 총리는 임기 초반엔 일본 정치에서 보기 드문 서민 출신 총리로 인기가 높았다. 슈칸분슌은 그런 스가 총리의 장남이 총무성의 고위 간부 네 명과 부적절하게 만난 사실을 보도했다. 방송 인허가권을 쥔 총무성 관료들이 방송제작사인 도호쿠신샤와 고급 횟집에서 지속적으로 만나, 수만엔대 접대를 받았는데 그 자리에 당시 이 회사에 근무하던 스가 총리의 아들이 함께했다는 것이다. 접대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도되자 같은 달 총무성은 해당 간부를 징계 처분했고 도호쿠신샤의 사장은 사임했다. 스가 총리의 ‘서민 출신 정치인’이란 이미지도 한순간에 깨졌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분슌호’를 피해가진 못했다. 지난해 5월 기시다 총리의 장남인 기시다 쇼타로 총리 정무비서관이 총리 공저(公邸)에서 친척 10여 명과 송년회 하는 사진을 입수해 슈칸분슌이 보도했다. 공적인 공간인 공저에서 사적인 파티를 하는 총리 아들의 사진이 공개된 지 한 달 만에 기시다 총리의 아들은 비서관직을 사임했다. 장남을 후계로 키우려던 기시다 총리의 계획은 틀어졌고, 기시다 내각 지지율도 추락했다.
일본 연예계 권력인 ‘자니스 사무소’의 자니 기타가와 창업자가 수십년간 연습생을 성추행한 사건을 유일하게 보도한 게 슈칸분슌이다. 일본의 다른 신문·방송사가 ‘사실관계의 명확한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침묵했지만 슈칸분슌은 1999년 첫 보도를 했고, 이후에도 유일하게 이 문제를 잇따라 다뤘다.
한때 차기 총리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시장은 2012년 슈칸분슌에 불륜 사실이 폭로되며 타격을 입었다. 2006~2007년 오사카의 유흥 클럽에서 일하던 30대 여성과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을 드러나 타격을 입었다. 당시 그는 “성인군자처럼 살지는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자녀 다섯을 둔 화목한 가정의 가장(家長)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정치 경력은 3년쯤 후에 접었다.
슈칸분슌의 편집국 기자는 60명 정도로, ‘분슌호’를 맡는 특집취재반은 40명 조금 못 미친다. 특종을 위해선 돈·시간을 아끼지 않고 끝장을 볼 때까지 집요하게 달라붙는다고 알려졌다. 취재에 돈도 아끼지 않아 기자가 ‘단독 아이템’이라고 판단하면 수천만원씩 돈을 쓴다. 예컨대 스가 전 총리의 장남 취재 때는 1인당 5만엔(약 45만원) 이상 하는 횟집에 손님으로 가장해 수차례 들어갔다고 한다. 회원제 식당이어서 적잖은 ‘가입비’도 추가로 썼다.
주간지 기자의 극악스럽다 싶을 정도의 취재에 대한 기존 언론사의 평가는 높지 않다. 일본의 한 신문사 기자는 “슈칸분슌과 슈칸신초는 우익 성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다 너무 노골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판매 부수에 도움이 되면 뭐든지 하기 때문에 거기에 권력자도 예외가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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