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이라며 통역 거부한 이승만?… 116년 만에 누명 벗었다
친일 스티븐스 저격·살해한 사건
1908년 친일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전명운 의사 통역 요청을 이승만이 “살인범은 통역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는 누명을 벗길 사료가 나왔다. 스티븐스 사건 이틀 뒤인 1908년 3월 25일 이승만이 샌프란시스코 한인연합단체 ‘상항공동회’에 보낸 편지다. 스티븐스 저격 사건은 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 한인 장인환·전명운 의사가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선 대한제국 고문 스티븐스를 노천에서 저격한 사건이다.
이승만 편지는 2019년 독립기념관이 대한인국민회 빌딩과 문서를 양도받은 로스앤젤레스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로부터 대여받아 해제한 문서 4117건 가운데 하나다. 자료번호는 2-K05448-000이다.
편지에는 통역 요청을 받은 이승만이 “내가 통역을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니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 거사의 정당성을 법정에서 밝히라”고 조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반이승만 세력 주장처럼 “기독교인으로서 살인범을 통역할 수 없다”는 내용은 없다.
편지에 따르면 당시 보스턴에 있던 이승만은 저격 사건 직후 샌프란시스코 양대 한인단체인 대동보국회와 공립협회가 조직한 ‘상항공동회’로부터 통역을 의뢰받았다. 이승만은 즉각 공동회 공립협회에 답신을 보냈다. 다음은 중요 부분 현대역이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우리 거사가 터럭만큼이라도 미국인들에게 언짢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먼저 설명해 알게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생명을 해칠 계획 없이 누누이 그 미국인에게 (일제 식민의) 불법을 설명하였으나 그 미국인이 고집을 부리며 남의 나라와 충애(忠愛)를 멸시하여 공분(公憤)이 솟구쳐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십시오. 고명한 변호사를 고용해 천천히 설명하면 서양인에게 배일(排日)하는 마음이 생겨 거사를 심히 원수로 삼지 않을 듯합니다. 지금 내가 (샌프란시스코로) 간들 이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다. 재정을 아끼는 것이 갇힌 분들을 위한 사후책입니다. (재정을 낭비하면) 방해가 생길 터이니, 잠시 지켜봄이 서로 편할 듯합니다. 하루이틀에 결론이 날 일이 아니니 천천히 더 상의함이 좋을 듯합니다. 나머지는 마음이 흔들리고 손이 떨려서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올립니다(餘心擾手戰 不備謝上). 3월 25일 이승만 배상’
편지를 받은 공동회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이승만의 한성감옥 옥중 동지 신흥우에게 통역을 맡겼다. 공동회가 고용한 배럿과 페럴 두 변호사가 조언대로 변론한 결과 전명운 의사는 석달 만에 무죄로 풀려나고 장인환 의사는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10년 뒤 모범수로 석방됐다. 비용은 한인 의연금으로 충당했다.
반이승만 세력은 ‘이승만이 “예수교인 신분으로 살인재판 통역을 원하지 않는다”며 동부로 돌아갔다’고 주장해 왔다. ‘예수교’ ‘살인재판’ 운운은 1959년 반이승만 세력인 독립운동가 김원용이 쓴 필사본 단행본 ‘재미한인50년사(재판: 혜안, 2004, p244)’에 처음 등장한다. 미국에서 이 책이 출간되면서 이승만이 반민족적 행위를 했다는 가짜 뉴스가 만들어졌다. 1960년대 중반 또 다른 반이승만 세력인 독립운동가 김현구도 ‘우남 이승만전’에 악의적인 내용을 덧붙여 기록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독부 이승만 평전(책보세, 2012, p73)’에서 이들을 인용해 ‘이승만이 교포들이 모은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가 돌아가버렸다’며 ‘역사인식과 애국심에 적잖게 의문이 가는 대목’이라고 부풀렸다. 여타 반이승만 시민단체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인용해 이승만을 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었다.
이 편지가 나옴으로써 이승만은 처음부터 법정 변론과 경비 절약에 대한 조언을 했음이 밝혀졌다. 문서 해제를 맡았던 독립기념관 오영섭 이사는 “오히려 당시 이승만이 동포 사회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기존 학계에서는 1908년 7월 이승만이 콜로라도 덴버 애국동지대표대회 참석 후 샌프란시스코에 들렀다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지 신흥우에게 통역을 맡겼다고 추정해 왔지만 입증 자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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