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중동 대폭격에도… 이스라엘·이집트 사이, 천연가스는 평화롭게 흐른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4. 3.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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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전 위에 세운 이스라엘의 평화
레비아탄 가스전 /사진=이스라엘 환경부

1973년 6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다. 양국 수교 8년 만의 방문이었다. 학살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서독 총리의 이스라엘 방문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가 환영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은 그가 이스라엘인들을 중동에서 석유가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40년 동안 사막을 통과했다는 점입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리면서 경직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중동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석유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었다.

적대국에 포위된 이스라엘로서는 건국 이래 안정적 에너지 확보가 국가적 과제였다. 1960년대까지 이스라엘은 시추정을 480여 개 뚫어 석유와 가스를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소규모 유정 한 곳 이외에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안정적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던 이스라엘의 약점은 1973년 4차 중동 전쟁 당시 산유국들이 이스라엘 및 서방국들에 석유 금수 조치를 하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이스라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1980년대 중반까지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졌다. 1984년 이스라엘의 물가 상승률은 445%에 이르기도 했다.

그래픽=백형선

사람들이 찾던 젖과 꿀은 육지가 아닌 바다에 있었다. 1999년 6월 해안에서 40km 떨어진 곳에서 첫 번째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했다. 노아-1 가스전을 발견한 것이다. 뒤이어 2000년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가스전인 마리-B 가스전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2004년부터 많은 기업이 몰려들어 인근 해역을 탐사하면서 2009년 타마르 1, 다릿-1 등의 대형 가스전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2010년 발견된 레비아탄 가스전은 매장량이 605bcm(1bcm=10억㎥)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가스전이었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2020년부터 에너지 순수출 국가로 전환되었다. 2022년 이스라엘은 22bcm 규모의 천연가스를 생산하여 이 가운데 9.2bcm을 수출하였다.

대규모 가스전의 발견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변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게 해줬다.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문제로 갈등 관계였던 요르단과 2016년 가스 거래 협정을 체결하여 15년 동안 45bcm 규모의 가스를 공급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양국 간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집트에 대해서도 대등한 협력 관계를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는 2000년대 초반 대규모 가스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파이프라인과 수출용 LNG 터미널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시행하였다. 2003년 총연장 1200km의 아랍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한 이집트는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에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100km의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스라엘에도 가스를 공급하면서 동지중해 가스 허브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하지만 이집트는 2011년 혁명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더불어 인구 증가에 따른 가스 수요 확대로 오히려 가스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2018년 이집트와 가스 수출 협정을 체결하고 2020년 1월부터 기존 파이프라인을 역류시켜 이집트에 가스를 수출함으로써 이집트의 가스 수요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필요한 파이프라인이나 액화 시설 등을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액화 설비를 이용하여 LNG 형태로 수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양국은 상호 이익을 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양국 협력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중단되어 어려움을 겪는 EU에 대량의 LNG를 수출함으로써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스라엘로서는 가스 수출을 통해 주변국 및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2022년 10월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레바논과 이어지던 해상 경계 분쟁도 합의를 도출해 다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양측이 주장하는 해상 경계 선상에 있는 가스전 관련 분쟁을 미국의 중재로 마무리해 평화적 가스 개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레바논으로서는 협상 내용에 일부 불만은 있지만 가스전 개발을 통해 다급한 경제난을 일부라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천연가스를 통해 인접한 요르단, 이집트 및 레바논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평화와 안보를 위한 충분한 완충 지대를 구축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더해 가자지구 앞바다에서 2000년에 발견된 가자 마린 가스전에 대해서도 개발을 반대하던 이스라엘 정부가 2023년 6월 입장을 바꿔 개발을 허용하면서 천연가스는 평화를 가져다주는 선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적 이스라엘 공격과 이어진 이스라엘의 대규모 보복으로 인해 힘겹게 만들어놓은 평화 무대는 무너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에 분노한 아랍 각국 국민들은 이스라엘과 협력하기를 중단하라고 자국 정부에 촉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천연가스 공급과 관련한 사항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이집트와 요르단 정부로서는 이스라엘에서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협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해상에 위치한 해상 가스전을 목표로 한 하마스 등의 공격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해상에 고정된 대규모 시설물들은 자살 폭탄 테러나 드론을 이용한 공격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가자지구 공격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갈등이 커지고 험악한 말 폭탄이 오가는 중에도 가스관을 통해 조용히 흐르는 천연가스의 흐름은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냉혹한 국제 정치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천연가스가 미래를 위한 젖과 꿀이 될 것인지는 신이 아닌 사람의 몫일 것이다.

가스전 놓고 싸우던 이스라엘과 레바논… 美 중재로 12년 만에 ‘젖과 꿀’ 나눠가져

국경을 맞댄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가스전을 둘러싼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 분쟁을 벌여왔다. 2007년 레바논과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는 EEZ 협정을 체결하였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으로 휘청거리던 레바논이 비준을 하지 않음으로써 레바논의 EEZ 경계는 모호한 상태가 되었다. 2010년 레비아탄 가스전을 발견한 이스라엘은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인접 국가인 키프로스와 EEZ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국은 레바논이 주장하는 EEZ 경계선을 인정하지 않고 레바논 EEZ가 860㎢가량 축소되는 형태의 경계선에 합의하면서 분쟁은 본격화되었다.

2011년 레바논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경계선을 유엔에 제출하면서 갈등은 국제 분쟁으로 비화했다. 미국 외교관 프레더릭 호프가 분쟁 수역 860㎢ 가운데 490㎢를 레바논 것으로 하는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레바논은 분쟁 수역 전부가 자기들 것이라며 중재안을 거부했다. 이후 양측이 주장하는 경계에서 카리시(Karish)와 카나(Qana)라고 하는 가스전이 각각 2012년과 2013년 발견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교착 상태가 이어지던 2020년 미국은 경제난에 시달리던 레바논에 가스전 개발에 따른 이익을 두 국가가 상호 공유하는 협상안을 제시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했고, 2022년 10월 최종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은 카리시 가스전에 대해서는 배타적 권리를 확보하게 되었고, 레바논은 카나 가스전을 통제하되 이스라엘은 카나 가스전 개발에 따른 수익 가운데 17%를 청구할 권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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