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지옥·현세 한꺼번에 묘사…대한독립 염원 담아 그린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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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봄을 알린다는 매화꽃이 여기저기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그린 그림으로 그 안에 삶과 죽음, 현실과 지옥을 모두 보여주는 조선시대부터 유행하던 불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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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용일섭 작가의 원작을 변형
- 일제강점기 금지된 한글 표기
- 화가·제작 시기는 알 수 없어
가장 먼저 봄을 알린다는 매화꽃이 여기저기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혹독했던 겨울을 버텨내고 다가올 봄을 알리는 매화꽃을 만나니 선물처럼 반갑다. 여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그림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감로도(甘露圖)’라 불리는 불교그림이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그린 그림으로 그 안에 삶과 죽음, 현실과 지옥을 모두 보여주는 조선시대부터 유행하던 불화이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감로도’는 우리나라 근대불화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부산광역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박물관 소장 ‘감로도’는 일반 사찰불화와 다르다. 그림 하단에 있어야할 화기畵記(제작시기, 장소, 조성에 참여 또는 기여한 사람의 이름 등 기록)가 없어 제작자를 알 수 없다. 그림을 좀 더 들여다보자. 화면 중앙에는 푸른색 용머리의 화려한 반야용선이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고 있다.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만이 탈 수 있는 배다. 천국을 향하고 있는 용선 아래에는 영화 ‘신과 함께’에서 본 듯한 지옥장면이 펼쳐져 있다. 지옥문을 들어서는 망자들의 행렬 앞에 날카로운 칼이 심어진 도산지옥(刀山地獄)이 펼쳐지고, 거대한 톱으로 몸이 반으로 잘려나가는 거해지옥(鋸骸地獄),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 안에서 고통 받는 화탕지옥(火湯地獄 )등 살아생전 죄를 지은 이들에 대한 형벌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지옥세계와 천상세계 사이는 현실세계다. 다양한 의상을 입은 세계 각국 사람이 무리지어 서있고 그 옆에는 조선인·중국인 등 모두 33개 국가명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 이 ‘감로도’의 배경에는 근대 불교미술의 선구자인 화승 금용일섭(1900~1975)이 일제강점기에 제작한 초본(밑그림)이 있다. 채색 없이 먹선으로만 그려진 초본에는 다양한 국적의 인물들이 특징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33개 국명이 일본어 가타카나로 표기되어 있다. 당시 시대흐름과 세계관이 반영된 새로운 불화양식이다.
‘감로도’는 동일한 구도, 동일한 장면으로 금용일섭의 초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각 인물들 옆에 표기된 국가명을 한글로 바꾸었다. 또 다양한 색상의 민족들과 달리 화면 오른쪽 조선인 남성들은 흰색의 두루마기와 도포를 입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 신사참배와 더불어 흰옷을 금지하는 ‘색의 착용’을 강요했다. 작가는 일제의 이런 ‘색의착용’ 정책에 저항이라도 하듯 백의민족으로서 전통색인 백색을 강조하고 있다. 불교그림인 ‘감로도’ 안에 금지된 한글을 쓰고, 백의를 입은 조선인을 그려 넣음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가오는 봄, 국립해양박물관을 방문하시어 일제강점기 이름 모를 화가가 대한독립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그렸던 감로도를 찬찬히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 국립해양박물관·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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