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의사 선생님을 계속 존경할 수 있도록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2024. 3. 7.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폭압적 정부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정부가 미래의 환자들을 위협에 빠트리게 하지 않을 것.” 지난 4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에서 발표한 성명서 내용이다.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는 ‘보건 의료 독재를 일삼는 정부’가 ‘반헌법적이고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지시’를 했다고 비난했다.

성명서를 발표한 날 전공의 9970명 중 8983명은 근무지를 이탈해 있었다. 서울아산병원, 순천향대병원 등은 정상적 진료를 볼 수 없어 간호사들에게 무급 휴가를 권했다. ‘정부가 환자들을 위협에 빠트리게 하지 않을 것’이라던 의사 집단이 환자의 건강을 볼모로 잡아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려 하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의사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업무 복귀 지시를 ‘반헌법적’이라 비난한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야말로 헌법에 반하는 행동이 아닐까.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한다. 로마 시대 정치가였던 키케로는 ‘국가론’에서 “’공화국’의 구성원은 아무렇게나 모인 일군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동의 이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의 모임이다”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구성원을 공동의 정의와 법, 그리고 공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들로 보고 있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제한 없는 사적 이익 추구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제한할 수 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이유다.

공무원들에게는 집단행동이 허용되지 않는다. 어찌 그들이라고 하여 보수와 근무 조건에 불만이 없겠고 그들에게 직업의 자유가 없겠는가. 그럼에도 소방관, 경찰관 등과 같은 공무원들에게 파업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신분이 ‘공무원’이기 전에 그들이 하는 일이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에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사 집단’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신분은 ‘공무원’이 아니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서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은 그들의 권리이기에 앞서 의무다.

작금의 우리 의료 체계가 왜곡되어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지방 의료원들은 연봉 4억원을 제시해도 전문의를 채용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해 전공의들은 주 88시간이 넘게 혹사당하며 의료 시스템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 피부 미용 일반 개업의 등은 월 수천만원씩 수입을 거두지만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등 필수 진료과를 선택하는 의사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여타 직업군보다 월등히 높은 수입을 거두기에, 초등학생부터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다. 이것은 건강한 국가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정부의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에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수가 체계에 대한 본질적 대안 제시가 없었던 것도 그러하다. “나는 연간 10억원 적자를 만드는 원흉이 됐다. ...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불러오는 조직원이었다. 무고했으나 죄인이었다”라고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좌절하게 만든 우리의 비정상적 수가 체계 말이다. 그러나 여타 문제 제기는 의사 집단이 공동체 내에서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다한 이후에야 할 수 있다.

사태 와중에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헌신적 진료를 받았다. 헌신적으로 맡은 일을 수행하는 의료인을 존경한다. 공동체 속에서 국민이 의료인들을 계속 존경할 수 있도록 작금의 사태가 원활히 마무리되기를 기원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