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인천 정신’의 처지
3∙1 독립운동 인천 발상지인 창영초교에서 3∙1절 기념행사가 매년 거의 빠짐없이 열린다. 올해에도 시장, 교육감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뒤 태극기를 들고 창영초교에서 배다리~경인전철 동인천역 북광장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인천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행사라도 치러져 다행이나 평상시 창영초 존재는 그 가치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민족혼이 밴 건축물을 간직한 역사적 장소이지만 학생 수 감소로 폐교를 걱정해야 하는 ‘원도심의 비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초 창영초를 인근 금송재개발구역으로 이전하려는 행정절차가 막바지 단계까지 이르렀으나 시민단체의 반발로 극적으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학교 당국과 학부모들은 학교 존치 결정에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무엇보다 낙후된 학교 시설 개선이 시급한 상태인데도 문화재보호구역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어 여의치 않다는 불만이 가장 크다. 교육청은 최근 학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사 2개동의 외벽, 창호, 복도 바닥, 화장실부터 개∙보수하려는 예산안을 편성했다.
장기적인 학교 발전 청사진 없이 이런 식으로 급한 불만 끄다 보면 유서 깊은 역사도 살리지 못하고, 명품학교로 발돋움시킬 길을 제대로 찾기 어렵지 않을까 우려된다. 창영초는 국내 어느 학교에서도 보기 드문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 얼마 전 역사 고증을 통해 밝혀졌듯 개교일은 그간 알려진 1907년이 아닌 18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문제는 지난해 시민단체 토론회에서 처음 거론됐다. 창영초는 일본 통감부 지시로 1907년 문을 연 ‘인천공립보통학교’가 아닌 1896년 ‘인천부공립소학교’에서 출발했다. 1896년 발행된 대한제국 관보에 ‘1월22일 서임 및 사령, 인천부공립소학교 교원 판임관 6등(等)에 변영대(卞榮大)를 임용한다’라고 적힌 기록이 확인됐다. 근대교육의 서막을 연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인 것이다.
이후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문이다. 1919년 3월6일 창영초 어린 학생들이 전화선을 끊고 동맹휴교를 선언한 뒤 거리로 뛰쳐나갔다. 이를 계기로 강화읍 장터, 계양 황어장터, 용유도 읍내 등 인천 시내 9곳으로 독립 만세운동이 퍼져나갔다. 한국 미학의 선구자 고유섭, 광복 직후 2대 대법원장을 지낸 조진만, 추사 이후 최고 서예가로 칭송받는 유희강,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살려낸 강재구 소령이 창영초 출신이다.
창영초는 ‘인천 정신’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역사와 장소의 힘이 살아 숨 쉬는 교육 공간이다. 인천시, 인천시교육청, 시민사회가 좀 더 원활한 민관협의체를 가동해 창영초를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닌 역사문화거점으로 살려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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