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MWC 2024'에서 본 우리의 숙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라는 노천명님의 시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생사를 건 동분서주를 보면 이 시가 떠오르며 참으로 마음이 아련하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사람과 노력, 지치지 않는 열정과 도전만을 가지고 오늘날의 각박한 경쟁에서 살아가기에 그렇다. 올해 'MWC(Mobile World Congress) 2024'에서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찡했다.
지난해 MWC를 다녀와서 'MWC 2023이 대한민국에 주는 황색경고'라는 글을 기고했다. 당시 출시된 '갤럭시S23'의 탁월함만으로 부지기수인 중국 기업의 추격을 따돌리기 어렵다는 의미로 거대 중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올해는 삼성전자의 피나는 노력으로 온디바이스 AI로 개인통역 역할을 수행하고 이미지나 디오 일부를 검색할 수 있으며 생성형 AI기술을 활용해 손쉽게 이미지 편집이 가능한 독보적 기능의 '갤럭시S24'를 출시했다. 올해 'MWC 2024'가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내의 갤럭시 매장은 '갤럭시S24'를 보고 구매하려는 젊은이로 장사진을 이뤘다. 간만에 마음이 놓였고 계속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제품이 해외에서 반응이 뜨겁다는 것이 흐뭇하다. 대기업의 약진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의 비상에 관심이 더 많다. 이번 'MWC 2024'에도 800여개 스타트업이 4YFN(4 Years From Now)에서 자신들을 과시했다. 이 중 한국 기업이 165곳 참가했는데 대부분 스타트업으로 우리나라는 참가기업 수로는 스페인 다음의 2위를 차지했다. 국내 스타트업이 'MWC 2024' 스타트업 톱5 리스트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건강과 웰빙분야에서 인공지능 돌봄로봇인 '효돌'은 소수에만 수여되는 최고의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 GLOMO를 수상했다. 대박이다.
'CES 2024'에 우리나라 기업이 많다고 말이 많았다. 한국 기업엔 너무도 흔하다고 'CES 혁신상'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CES 2024' 전체 혁신상의 40%를 차지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하고 더 나가 해외 전시에 대한 회의감을 이야기하는 분들까지 있었다. 그래도 모두가 효율을 이야기하고, 대안을 이야기하고, 더 나가 새로운 형식의 해외진출 플랫폼을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일단은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 필요성에 모두 이견이 없었던 이유는 해외진출은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MWC 2024'가 개최된 스페인은 유럽국가 중에서도 척박한 토양을 가진 나라다. 때문에 아무리 더워도, 땅이 얼고, 물이 없어도 견뎌내는 올리브나무가 자란다. 더불어 그들의 조상은 바다로 바다로 나갔다. 그 결과 식민지개척시절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됐다. 풍요가 풍요를 낳은 것이 아니라 척박함과 절박함이 풍요를 낳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을 보면 오늘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해외로 가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는 그런 운명 같은 숙명이 보인다. 공식을 대입하면 우리가 우리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도 해외로 해외로 나가 성장하고 확장하는 게 필연일 것이다. 모가지가 길다고 해서 슬플 이유는 없다. 그게 우리의 숙명이라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다. 즐기면 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 기업들로부터 견제를 받고 오늘날 CES에, MWC에, IFA에 나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라면 더 많은 우리 기업이 한 번이라도 더 뛰고 비상하기를 바란다.
세계는 작고 빠르고 다양한 스타트업의 시대다. 'MWC 2024'에서도 다시 한번 보여준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지치지 않는 역동과 빠른 행보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 이러한 우리의 숙명에 감사한다.
최재홍 가천대학교 글로벌 캠퍼스 창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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