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 맞고, 깃털 뒤집어쓰고…발베니 장인의 가혹한 ‘신고식’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2008년 8월 저녁,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거리에 한 남성이 온몸에 타르와 깃털을 두른 채 발견됐습니다. 그의 목에는 ‘나는 마약 거래를 하는 쓰레기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바라클라바(두건형 쓰개)를 착용한 신원미상의 두 사람이 마약상으로 추정되는 남성을 가로등에 묶고 머리에 타르와 깃털을 뿌린 것입니다. 현장에 있던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군중은 말없이 이를 지켜봤고, 이 충격적인 상황은 휴대전화로 촬영돼 언론에 공개됐습니다.
이는 ‘타링-페더링(Tarring and feathering)’ 입니다. 타링-페더링은 범죄자나 반사회적 행위를 한 이들에게 행해졌던 수치스러운 형벌이자 고문입니다. 타링-페더링을 당한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상·하의가 벗겨진 채 머리에 타르(Tar)를 뒤집어쓰고, 몸 전체에 깃털(feather)이 들러붙었습니다. 단단하게 굳은 타르와 깃털을 떼어내려면 머리는 삭발해야 했고 피부는 벗겨져 낙인처럼 남았습니다. 최초의 타링-페더링은 1189년 십자군 원정대를 이끈 영국 사자왕 리처드 1세가 군법을 어긴 병사에게 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스코틀랜드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특히 4년간의 고된 수습 생활을 마친 쿠퍼(Cooper: 오크통을 만드는 장인)가 수습 딱지를 떼는 행사에 활용됩니다. 수습을 마친 신입 쿠퍼들은 온갖 오물로 만들어진 액체를 뒤집어 쓰고 깃털 세례를 받은 후, 본인이 만든 오크통에 들어가서 ‘굴림’ 당합니다. 고강도 ‘생일빵’을 맞는 셈입니다. 온갖 수난을 당한 수습생들이 인근 강물에서 몸을 씻고 나면 비로소 정식 쿠퍼로 재탄생합니다. 위스키 맛의 70% 이상을 결정짓는 오크통을 제작하는 장인이 되는 통과의례를 마친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쿠퍼의 주된 업무는 오크통을 조립하고 수선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오크통을 통째로 수입하는 경우가 없으므로 기다란 나무 조각(Stave) 형태로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덩치가 큰 오크통을 분해하지 않고 배에 적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쿠퍼들은 이렇게 가져온 나무 조각을 크기별로 재조립하고 검수하며 노후화된 오크통을 관리합니다.
증류소는 오크통을 절대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갈수록 비싸지고 귀해지는 오크통 가격 때문이지요. 오크통을 한두 번 쓰고 냅다 버리는 것은 범죄 행위에 가깝습니다. 이들은 오크통의 영혼까지 깎고 태워서 재활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오크통도 여러 번 사용할수록 그 풍미를 잃습니다. 사골도 계속 끓이다 보면 더 이상 육수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쿠퍼들은 수년 동안 위스키에 맛이 빨려서 생명력을 잃은 오크통을 되살리기도 합니다. 이를 리쥬베네이티드 오크통(Rejuvenated cask)이라고 부르는데 오크통 내부를 일정량 깎아낸 뒤 다시 태워(re-char) 재조립하는 과정입니다. 즉, 맛 성분이 전부 빠진 오크통을 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카발란 증류소의 STR(Shave, Toast, Re-char: 깎고, 굽고, 다시 태우기) 기법과도 유사합니다.
보통 오크통은 내부를 태워 표면을 굽거나 숯으로 만듭니다. 나무의 표면적이 열리면서 바닐라와 캐러멜 향 같은 맛 성분이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숯처럼 그을린 나무는 알코올을 순하게 만드는 필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스카치위스키는 최소 2~3회 이상 오크통을 재활용해서 사용합니다. 첫 번째로 사용했을 경우 퍼스트 필(First Fill), 두 번째는 세컨드 필(2nd Fill), 세 번째는 써드 필(3rd Fill)이라 부릅니다. 여기까지는 오크통 상태가 좋다 보니 증류소들이 위스키 라벨에도 표기해주는 편입니다. 그 이후로는 그냥 리필(Re Fill) 캐스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무조건 퍼스트 필이라고 좋은 것도 아니고 리필이라고 마냥 나쁜 게 아닙니다. 오크통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면 스피릿이 가진 고유의 특징까지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떻게 어떤 오크통에서 보석 같은 위스키가 탄생하는지는 ‘천사들의 몫’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몇 안 되는 쿠퍼리지(Cooperage: 오크통을 제작하는 곳) 중 하나는 더프타운에 위치한 발베니 증류소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증류소는 비용과 편리성 차원에서 오크통의 수선과 조립을 외주에 맡기는 편입니다. 발베니는 오크통을 직접 관리하는 몇 안 되는 증류소 중 하나로 모회사(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가 같은 글렌피딕과 함께 쿠퍼리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발베니 증류소 쿠퍼리지에 들어서는 순간 데이비드 게타의 화려한 ‘노동가’가 흘러나옵니다. 강렬한 전자음과 함께 굵직한 베이스음에 맞춰 10여 명의 쿠퍼들이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합니다. 말 그대로 나무를 깎고, 두드리고, 조이고, 태우고를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이들이 하루 동안 손 보는 오크통은 평균 25개. 정식 면허를 갖춘 쿠퍼라면 최소 20분 안에 오크통을 조립해야만 합니다.
속도도 좋지만 날마다 40~100파운드가 넘는 오크통을 다루는 일은 중노동에 가깝습니다. 일반인이라면 하루 이틀 망치질만으로도 어깨가 결리고 뻐근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 작업하는 오크통 개수로 돈을 지급했던 쿠퍼리지는 고령화가 돼가는 장인들의 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월급제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키가 작아 별명이 ‘미니쿠퍼’인 이안 맥도널드는 16살에 수습생으로 입사해 54년째 발베니의 쿠퍼리지에서 수석 쿠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성기에 8분 만에 오크통을 조립한 이안은 손끝 촉감만으로 미국산 오크와 유러피언 오크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어떤 접착제나 못 없이도 물 한 방울 새지 않는 오크통을 조립하는 쿠퍼의 손기술입니다. 아무리 규격에 맞춰 짜인 나뭇조각이라도 세월에 의해 변형되거나 미묘한 차이가 있을 텐데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발베니 소속 쿠퍼는 아니지만 3분 3초 만에 30여 개의 나무판으로 이루어진 190리터짜리 배럴(Barrel)을 조립하는 기네스 기록 보유자도 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뚝딱 만든다는 표현은 이런데 쓰는 것 같습니다.
첨단 기술이 피부로 와닿기도 전에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현재까지 신문물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수작업에 의존하는 쿠퍼들의 모습이 처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인공지능(AI)가 뛰어난 능력을 갖춘다 해도 복잡미묘한 위스키의 풍미와 오크통의 세월은 사람만이 가늠하는 영역으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랜 세월 그 섬세함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장인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새롭고 다양한 위스키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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