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단상] 탄신 520주년 신사임당을 다시 생각한다

정항교 2024. 3. 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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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16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상중에 '어머니행장'을 지었다.

"어머니는 경전에 통하고, 글씨도 잘 썼으며, 바느질과 자수에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산수, 포도, 풀벌레 그림은 모두 지극히 정묘하여 세상에 흉내 낼 사람이 없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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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교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문학박사

율곡은 16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상중에 ‘어머니행장’을 지었다. “어머니는 경전에 통하고, 글씨도 잘 썼으며, 바느질과 자수에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산수, 포도, 풀벌레 그림은 모두 지극히 정묘하여 세상에 흉내 낼 사람이 없었다”라고 했다.

조선 후기 형조판서를 지낸 신석우는 “사임당 신씨 부인은 타고난 자질이 맑고 고운 데다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전과 사기에 통하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며, 바느질과 자수도 신비에 가까울 정도였다. 더욱이 그림에 있어서는 신품을 만들어 냈다”면서 “사임당은 여류 선비가 분명하다”고 했다.

또 송강 정철의 후손이자 강릉부사를 지낸 정호는 “사임당은 여자 중의 군자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우리 역사 인물 속에는 훌륭한 여성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여성의 경우 한두가지 분야에만 뛰어나 이름이 알려졌을 뿐인데 사임당은 어느 한 분야가 아닌 여러 방면에 걸쳐 골고루 뛰어났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고 할지라도 인격과 덕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것은 한낱 재주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나, 사임당은 인격도 뛰어났고, 덕 또한 높았다.

15년 전 사임당이 화폐 인물로 선정되기에 앞서 아들 초상화가 들어간 오천원권 화폐 도안에 어머니가 그린 초충도 가운데 다산을 상징하는 수박과 벼슬을 상징하는 맨드라미가 채택된 것도, 오만원권 화폐에 풍요와 다산, 가문의 번창을 의미하는 포도 그림과 자수 가지가 화폐 보조 소재에 들어간 것도, 모두 어머니를 여윈 슬픔 속에 아들이 지은 ‘어머니행장’ 때문이었다.

오늘날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계발한 21세기 여성, 시와 화폭 속에서도 어머니를 그린 효성스러운 여성, 백 대의 스승을 낳고 기른 훌륭한 어머니, 정묘한 예술 세계를 개척한 최고의 여류 예술인,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한 참된 살림꾼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사임당의 참모습 선양은 뒷전으로 미루고, 어느 기록에도 전하지 않는 엉뚱한 신인선(申仁善, 仁宣)이란 이름이 마치 사임당의 본명인 것처럼 떠들며,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사임당 이름 맞추기로 법석을 떠는 요지경을 보고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세태가 한스럽다.

정몽주의 어머니 이씨, 세종대왕의 어머니 민씨, 퇴계 이황의 어머니 박씨,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변씨, 모두 전하는 이름이 없다. 율곡도 ‘어머니행장’에서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 휘(諱)는 모(某)”라고만 했다. “겨레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위인의 없는 이름을 후세 사람들이 함부로 지어 부르는 것은 위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 혼란스럽고 개탄스러울 뿐이다.

율곡은 나랏님 파평윤씨 10대 직계 파조(派祖) 문정공 윤황(尹煌)의 스승이며, 율곡의 사위 김집은 그의 아들을 가르친 스승이다. 올해는 백 대의 스승을 낳고 기른 사임당이 탄생한 지 520주년이 되는 해다. 또 모자가 화폐 속에서 만난 지 15년이 되는 해라 의미가 깊다.

사실 많은 교육 기관이 있지만 사임당 얼 선양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 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사임당교육원은 설립 취지를 잃은 지 오래되었고, 교원연수원, 한국여성수련원, 평생학습관 같이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들도 얼 선양에 등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앞으로 “여성의 사표”로 불리는 사임당의 참모습은 역사 속에 묻혀 한낱 손때묻은 지폐 속 인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별나라에 계신 사임당께서 주소를 옮기지나 않을지, 탄신 520주년을 맞아 율곡을 공부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죗값을 치르고 용서를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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