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사라지고 공천만 보인다 [아침을 열며]

2024. 3.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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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34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각 당의 후보자 공천에 가려 정당이 내건 비전과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 공약은 정당과 후보자가 당선 후 실행하겠다는 유권자와의 선거 계약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유권자들은 후보자와 정당이 어떠한 비전과 안목을 갖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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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배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34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각 당의 후보자 공천에 가려 정당이 내건 비전과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선거는 앞으로 4년간 입법권력을 맡을 정당과 정책을 선택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이번 총선은 세계적 격변기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한국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중 경쟁 속의 지정학적 위기, 기술 패권의 위기, 기후 위기, 인구 위기, 지방소멸 위기, 북핵 위기 등 매우 어려운 시기에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선거이다. 어떤 정당과 인물을 뽑느냐에 따라 전통적 안보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 경제ㆍ산업 분야 등에서 우리나라의 장래에 미칠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총선 과정에는 이러한 절박함은 보이지 않는다. 총선에서 정당은 향후 4년간의 국정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여당은 지난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국정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신임을 받으면 국정 수행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야당도 국정의 비판에만 함몰되지 말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수권 능력을 보여야 한다. 특히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신생 정당들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와 기성 정당들과의 차별화를 분명히 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정당의 10대 공약과 후보자 공약은 아직도 확인할 수 없다.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 완성도가 낮은 공약을 제출하고, 제대로 검증도 할 수 없다면 유권자는 정당과 후보자가 어떤 비전과 안목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게 된다. 당내 경선에서도 진영 간의 세력 경쟁에 몰두한 나머지 정책 비전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못했다. 본선에서도 네거티브 캠페인에만 의존하면 22대 국회 개원 이후의 국정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책 공약은 정당과 후보자가 당선 후 실행하겠다는 유권자와의 선거 계약이다. 따라서 총선은 국회 다수 세력을 선택하는 장이기도 하며, 정책 패키지를 선택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의회 다수를 차지할 경우 추진할 국정의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과제의 우선순위를 부여해 국민의 선택을 구하는 것이다. 미국 뉴트 깅리치가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선거 공약으로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그가 주도한 공약으로 미국의 변혁을 이끈 것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도약과 후퇴의 갈림길에 서 있다. 관건은 정치다. 정치가 바뀌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고, 이대로 가면 나라가 몰락할 수도 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몰락을 경고하면서 “조작된 여론에 근거한 어리석은 민심 정치”를 지적한 바 있다. 인기를 위해 대중의 요구에 무조건 부응하는 포퓰리즘, 다중에 휩쓸린 조작된 여론에 의한 정치 등을 말한다. 정당의 공천 후보들이 얼마나 사리사욕, 진영의 논리,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연유이다. 그러한 잣대의 하나가 국가와 지역을 위해 내놓은 정당과 후보자의 비전과 공약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유권자들은 후보자와 정당이 어떠한 비전과 안목을 갖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 제시한 정책 대안과 변화의 방향을 현실적으로 구현해 낼 전략이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 남은 기간 이번 선거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국가적 비전과 정책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기를 바란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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