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4·10 총선에 달린 사법부 미래

김태훈 2024. 3. 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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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예일 출신만 대법관 되나”
백악관, 판사 인선에 큰 공 들여
2024년 대법관·재판관 잇따라 교체
우리 대통령도 교훈으로 삼아야

법조계에 ‘서오남’이란 말이 있다.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이 대법관을 독식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이, 성별은 빼고 학벌만 따지자면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 중 4명이 하버드대 로스쿨, 다른 4명은 예일대 로스쿨 졸업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만 노터데임대 로스쿨을 나왔다. 인디애나주에 있는 가톨릭계 대학 노터데임도 좋은 학교임이 분명하나, 그 로스쿨의 인지도와 평판은 하버드나 예일에 한참 뒤진다. 배럿이 아직 후보자 신분이던 2020년 10월 트럼프의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대법원에 왜 배럿이 꼭 필요한지 설명하며 백악관은 “하버드나 예일이 아닌 기타 대학 출신의 유일한 대법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에도 배럿은 대법원에 입성했다. 대법관을 비롯한 연방법원 판사 임명 동의권을 쥔 상원의 다수당이 여당인 공화당이었기에 가능했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지난달 초 소셜미디어에 글을 하나 올렸다. 2021년 1월 취임 후 3년간 그가 상원 인준을 거쳐 임명한 연방법원 법관이 175명에 이른다며 “우리는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자평했다. 바이든에 따르면 175명 가운데 65% 이상이 여성이고 또 65%가량은 흑인 등 유색인종이다. 미국 사법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은 둘 다 해당된다. 바이든은 “이 판사들이 우리나라(미국)의 강점인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무척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요즘 여소야대 하원에 발목을 잡혀 되는 일이 없는 바이든이 그나마 법관 인사에서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원은 여당인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트럼프와 바이든을 포함해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판사 임명에 큰 공을 들였다. 자신과 정치적 색채가 가까운 법률가를 한 명이라도 더 사법부에 밀어넣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목적도 있다. 트럼프가 “하버드·예일 출신만 대법관 되나”라고 외친 건 대법원 구성 다양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정작 그는 인재를 등용할 때 명문대 출신을 각별히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성 보수 법조인 배럿을 대법관에 앉히고자 트럼프와 백악관 참모진이 온갖 명분을 찾는 와중에 ‘학벌 타파’까지 꺼냈다고 봐야 옳다. 바이든은 어떤가. 본인이 임명한 판사들 면면을 소개하며 대뜸 “이들은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한다”고 단언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여성과 진보 성향 유권자들 표심을 얻으려는 속내가 엿보인다.

연방법원 법관 전부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대통령의 판사 인사권은 제한적이다.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구성에 관여할 수 있을 뿐이다. 대법원장 후보자야 대통령 혼자만의 결단으로 낙점할 수 있겠으나, 대법관 13명은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의 후보자 제청(提請) 절차가 선행된다. 헌재의 경우 재판관 9명 중 소장 등 3명만 대통령 몫이다. 더욱이 대법원장, 헌재소장, 대법관은 모두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수다.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대통령의 입지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사법부 최고위급 공직자 인선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내심 학벌을 따지면서도 “하버드·예일 출신만 대법관 되나”라고 호소했던 트럼프의 진지함과 끈질김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올해 법조계는 지각변동이 예고돼 있다. 대법원은 8월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대법관이 물러나고 12월에는 김상환 대법관이 떠난다. 헌재도 9월 이은애 재판관을 시작으로 10월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 김기영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된다. 재판 지연, 편향 판결 등 여러 논란에 휩싸인 사법부를 일신할 기회다. 윤석열 대통령이 절박함을 느낀다면 헌법이 그에게 부여한 권한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국회 역할도 중요하다. 트럼프와 바이든이 대법관 등 판사 인선을 소신대로 밀어붙인 배경에는 여대야소 상원이 있었다. 1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 결과에 정치권은 물론 사법부 미래도 달려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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