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한 김우민 “수영은 제 기록과 싸우는 것…파리에서도 이길 것”

장필수 기자 2024. 3. 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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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2024 우리가 간다
수영 황금세대 주역 김우민
김우민이 2월11일(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4 국제수영연맹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도하/EPA 연합뉴스

주종목이 자유형 400m인 김우민(22·강원도청)에게는 항상 ‘마린 보이’ 박태환의 기록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국제대회에 나가 메달을 휩쓸 때도 박태환의 한국 신기록(자유형 400m·3분41초53)이 함께 언급된다. 여기에는 김우민의 등장을 수영 천재의 재림으로 해석하고 싶은 바람이 투영돼 있다. ‘수영 불모지’ 한국에 혜성처럼 나타나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박태환을, 이제는 ‘수영 황금세대’의 주역인 김우민이 넘어서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김우민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그런 것(박태환 선수와 비교)에 대한 부담감은 일단 전혀 없어요. 제 주종목에서 대단한 분인 건 사실이지만, 제 목표를 이뤄내려면 그를 뛰어넘어야 해요.”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의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더불어 “(박태환 선수와) 같은 시대에 경쟁하고 있는 게 아니고, 저는 제 기록을 경신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에도 박태환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수영 선수 김우민이 지난달 29일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김우민은 혜성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했지만, 초등학생,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과거의 자신을 놓고선 “워낙 수영을 못한 상태”였고, “밑바닥부터 올라왔다”고 돌아봤다. 대신 “훈련할 때 성실히 임했던 게 시합 때마다 좋은 결과로 나왔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서서히 조금씩 제 기록을 줄여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자유형 400m에서 3분50초16으로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웠던 박태환과 달리 김우민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기량을 증명해왔다. 자유형 400m라는 종목 외에 두 사람이 걸어온 수영 인생은 판이하다.

4분01초36(2017 문화방송배 전국수영대회·1위)→3분59초67(2019 국제수영연맹 경영월드컵 6차 대회·11위)→3분45초64(2022 부다페스트 세계수영선수권대회·6위)→3분43초92(2023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5위). 고등학교 1학년 시절만 해도 4분이 넘었던 기록은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어느덧 3분43초대까지 진입했다. 부모님은 기록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둘째 아들을 응원했다. 차근차근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온 시간과 함께 성장해왔다는 자신감은 이제 몸과 마음에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김우민이 2월11일(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4 국제수영연맹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도하/AP 연합뉴스

마침내 김우민은 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4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 결선에서 3분42초71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지난해 후쿠오카 대회에서 세웠던 자신의 최고 기록(3분43초92)을 무려 1초21이나 앞당기며 정상에 섰다. 박태환 이후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선수는 김우민이 처음이다. 그는 “3분45초대에서 한 단계씩 내려가고 있다. 개인 기록 경신이라는 꿈이 있었는데, 이번 대회에서 잘해냈다”고 평가했다.

이제는 ‘한국신기록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예상이 조심스레 나오지만, 김우민은 이 또한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수영은 누군가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가 아니라, 제 기록과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기존에 쌓은 기록들이 있는데, 이 기록을 깨는 게 힘든 훈련을 견디는 원동력이 됩니다.”

매일 새벽 5시 반부터 시작되는 고된 훈련에도 그는 “지금도 수영이 재밌고, 사랑하고 있다”며 수줍게 웃음지었다. 일주일에 단 하루 허락된 휴일에도 “휴식이 중요해서 누워서 쉬는 편”이라는 22살의 청년은 이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인 파리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수영 선수 김우민이 2024 도하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자유형 400m)과 은메달(계영 800m)을 들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제가 만족하는 레이스가 되면 그만입니다. 제가 잘하면 (성적은) 따라오는 것이니까요.” 수영 선수의 전성기로 꼽히는 22살. 정점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파리올림픽에서 김우민의 목표는 개인 기록 경신이다.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 한국신기록과 올림픽 메달 색을 의식하기보단, 오로지 자신과 승부에서 이번에도 승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파리올림픽에서 이뤄내고 싶은 게 많은데,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우민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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