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감독의 낡은 농구 비판이 자극제, 감독이 침묵하면 팀은 와해된다” 13년 공백깨고 돌아온 안준호 농구 국가대표 감독
“착각할까 두렵다. 이제 첫 발을 떼었을 뿐, 대한민국 농구가 수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망각하면 안 된다.”
13년 만의 공백을 깨고 남자농구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현역에 복귀한 안준호 감독(68)은 부임후 치른 두 경기를 통해 달라진 대표팀의 모습에 누그러진 언론과 팬들의 반응을 경계했다. 자신을 포함해 선수단, 농구계 전체가 현재의 위기상황을 절실히 깨닫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걸 거듭 강조했다.
안준호 감독은 지난해 대한농구협회의 공모과정을 거쳐 대표팀 사령탑에 임명됐다. 2025 FIBA 아시아컵(사우디아라비아)까지 지휘봉을 맡은 그에게는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역대 최악인 7위로 무너졌던 한국농구를 되살려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지난달 팀을 처음 소집해 치른 FIBA 아시아컵 예선 A조 호주 원정경기(71-85패)와 태국 홈경기(96-62승) 이후 ‘늙은 감독’에 대한 우려는 사라졌고, 팬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주장 라건아, 김종규를 비롯해 오재현, 박무빈, 이정현, 한희원 등 대표선수 전원의 하고자 하는 열의와 투지가 남달랐다는 점이다.
지난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내 대한농구협회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안준호 감독은 고령에 대표감독을 지원한 동기를 비롯해 지도철학, 데뷔전 에피소드와 후일담, 향후 목표 등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었다.
-두 경기에서 1승1패인데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두 경기의 교훈과 의미는 무엇인가.
“호주 원정경기에서는 초반에 13점 차로 앞서가다가 4쿼터에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역전패 했다. 대표팀이 진천선수촌을 떠나 호주 멜버른 인근 벤디고에 도착하니 24시간이 넘게 걸렸다. 국내 리그에서 40경기 가까이 뛴 선수들이 이동하면서 더욱 지쳐 후반 경기력이 떨어졌다. 감독으로서도 선수운용에 반성할 점을 느낀 경기다. 태국전에서는 준비했던 강한 압박 플레이가 잘 됐다. 두 경기에서 선수들의 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했다. 그리고 우리가 한 팀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13년만의 현장 복귀에 비판적인 여론도 많았다. 호주전 4쿼터 역전패 상황은 현장감각 공백 영향이 아닌가.
“감독에게 변명은 필요없다. 오직 성적으로 말할 뿐이다. 가장 아쉬운 점은 5분여 남기고 라건아가 파울트러블에 걸려 체력안배를 겸해 잠시 뺐는데, 결과적으로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실수라면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발전하도록 하겠다. 오는 11월 호주와 홈경기에서는 진짜 승부를 해보고 싶다.”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대표팀은 언제 다시 소집되나.
“FIBA 아시아컵은 2025년 8월 사우디에서 열린다. 호주, 태국, 인도네시아와 한 조인데 2위까지 본선 16강에 진출한다. 11월에 두 경기, 내년 2월에 두 경기를 홈 앤드 어웨이 경기로 치른다. 여름에 일본과의 평가전이 있는데, 우리는 못 나가는 올림픽을 대비하는 상대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그보다는 대만에서 열리는 존스컵 출전을 협회에 요청해 놓았다. 평가전 명분으로 팀을 소집할 수는 없다. 대회에 나가 전력을 점검하는 차원이라야 선수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협회에 요청했는데, 꼭 성사되야 한다.”
-출발점으로 돌아가 대표 감독을 지원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작년 아시안게임에서 2진이 나온 일본에 3점슛 17개를 허용하면서 굴욕적으로 지는 장면을 보면서 심각한 문제점을 느꼈다. 우리가 정말 전력이 약해서 불가항력으로 진게 아니고 준비, 책임감, 열의가 부족한 총체적 난국으로 보였다. 거의 사보타지 수준이었다고 여겨졌다. 한국농구가 일본을 상대로 그런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고 1때 농구를 늦게 시작해서 농구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보답하고 싶었다. 지난해 미국 UCLA팀에서 두 달 반 연수를 하던 중에 서동철 코치(전 KT감독)와 연락이 됐고 계기가 됐다. 서 코치와는 삼성 시절 감독 코치의 인연으로 호흡이 잘 맞는다. 최근까지 현장에 있었던 감독급 이상의 코치와 함께 해 좋다. 국가대표 감독은 그간 인연이 없었고, 처음이다.”
-늙은 감독의 낡은 농구, 현장감을 잃은 농구를 걱정하는 비판이 많았다.
“삼성을 떠난 이후 KBL 행정과 경희대 겸임교수 등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늙은 감독 이슈가 참 고통스러웠지만, 나를 더욱 자극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 대표팀 컬러 설정, 방향을 잡는데도 내게 큰 도전의식을 주었다. 현장을 떠난지 오래 됐지만 삼성을 우승(2006년) 시키는 등 커리어가 나쁘지 않았고 서장훈, 이상민, 이규섭 등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데리고도 어떻게든 성적을 냈다. 그리고 또 하나, 난 틈만 나면 미국 대학팀에 가서 자비로 연수를 한 사람이다. UCLA 농구팀에는 거의 연례행사처럼 갔다. 거기서 선진농구, 기본기를 충실히 하는 농구와 호흡했다. 그런 비판에는 자신이 있었다. 전문기자가 오랫동안 공백이 있다고 기사를 못 쓰나, 자전거도 오래 안 타다가 3분만 지나면 익숙해진다.(웃음)”
-대표팀을 소집해 선수들에게 강조한 원칙은 무엇이었나.
“지난달 진천선수촌에 소집해 화이트보드에 ‘원팀 코리아(One Team Korea)’를 맨 위에 쓰고 팀화합을 강조하는 ‘팀워크, 팀스피리트, 원포올, 올포원’을 적었다. 선수단 전체가 가족처럼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대표팀을 원칙으로 강조했다. 지난 대표팀에서는 코칭스태프와 선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팀워크가 와해된 것이 경기력으로 나타났다. 이번 대표팀이 달라진게 있다면 서로 위해주며 투지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라건아를 주장으로 임명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배경은 무엇인가.
“감독 선임후 여러 원로 선배들을 만나며 인사하고 조언을 들었다. 맏형인 라건아에게 캡틴을 맡기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도 받았다. 진천에서 면담을 하며 주장 제의를 했더니 감사히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번이 라건아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주장의 영광을 선물하고 싶었고, 책임감도 주고 싶었다. 라건아를 도운 고참 김종규의 역할도 컸다. ‘원팀 코리아’라는 슬로건을 라건아가 경기중 구호로 사용하자고 제안했고, 선수들은 똘똘 뭉쳐 하나가 됐다. 이런 분위기는 이번에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자극제가 됐을 것으로 본다.”
-최준용등 개성이 강한 선수들이 이번에 팀에 합류하지 못했는데, 11월에는 그들과도 ‘진짜승부’를 벌여야 하는건가.
“지도자는 선수들의 개성과 고집을 살려줘야 한다. 가슴이 숯검정이 되더라도. 하지만 그런 고집도 팀워크를 흔들 만큼 선을 넘으면 안된다. 삼성 시절 서장훈이 최고의 선수였지만 그런 상황에서 엄하게 기강을 잡고 팀을 끌어간 적이 있다. 중심선수가 레드라인을 넘을 때 동료들은 감독을 쳐다본다. 지도자가 거기서 침묵하면 그 팀은 와해된다. 대표팀을 가족처럼 운영하고 싶다고 했는데, 부모의 심정으로 선수들과 호흡하겠다.”
-라건아가 재계약을 못하면 대표팀을 떠나야 한다.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할 텐데.
“이미 많이 늦었다. 우선 계약을 어떻게 해야할까 원칙부터 정해야 한다. KBL과 농구협회, KCC 등이 빨리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하는데 KBL 집행부가 6월에 교체된다. 여러가지로 복잡하다.”
-한국 대표팀을 어떤 팀, 어떤 농구를 추구하는 팀으로 이끌 계획인가.
“우선 내년 사우디 아시안컵에서 2027 FIBA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7팀)을 따는 것은 기본이고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둬야 한다. 대표팀을 더 강한 압박, 더 빠른 공수전환을 하는 팀, 거기에 끈끈한 조직력을 갖춘 원팀 코리아로 만들고 싶다. 정말로 대한민국 남자농구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플레이를 전개하도록 하는게 과제다. 또한 선수들이 대표선수로서 가치와 품위를 깨닫고, 경기력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갖춰진 팀이 되도록 이끌겠다. 대표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더 단단해져야 한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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