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새출발
미성을 가진 김동률의 노래 ‘출발’이 듣기 좋은 봄날.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아기 병아리떼처럼, 자~ 출발이다. 기지개를 켜고 뜨락에 나오면 나도 같이 출발이다.
하루는 맹구가 공부하기로 맘을 먹고 책을 꺼내 들었대. 친구가 맹구를 보더니만 “깜딱이야~ 너 시방 들고 있는 게 책? 니가 책을 본다고?” “응~ 나 이제 새출발이야~” 친구는 놀라서리 “살다살다 별일을 다 보네. 근데 책 내용이 뭐야?” 맹구가 갸우뚱하더니 “등장인물이 너무 많구먼. 숫자들도 헷갈리고. 끝까지 다 읽으면 이해가 되겠지 뭐.” 친구가 책을 빼앗아 표지를 펼치는 순간, 앗! 전화번호부다.
요새 친구들은 전화번호부가 뭔지도 모르겠지. 그 두툼한 인생 소설책.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조르라니 적힌 그 누리끼리한 책. 적힌 이름들 어디서 무사히들 계시는지.
일 더하기 일은? 2가 아니라 중노동. 요샌 그도 일자리가 없어 노는 이들이 많다지. 직장을 그만두면 새출발을 해야 하는데, 직업군이 바뀌고, 어떤 직업은 변화된 시대 따라 사라지기도 했다. 실직 후 밀려든 가난에 가족이 해체. 그건 새출발이랄 게 못 되지. 실직한 동무가 언제 그러덩만. 집에 들어가면 침묵이 두렵다고.
“아내에게 침묵은 노여움의 표현이었다. 침묵의 시간은 노여움의 깊이와 비례했다. 집안은 얼음처럼 싸늘해졌다.” 정찬의 단편소설 ‘길 속의 길’, 화를 푼 아내가 “여행이나 다녀와” 하는 말, 주인공이 시골 할머니댁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내 맘속에도 수런거렸다. 새출발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었으면 좋겠어. 침묵이 아닌 와글다글 수다라면 좋겠어. 정치권도 새출발의 산고를 겪는 중이렷다. 요란한 게 좋은 거야. 변화한단 소리거든. 조용한 건 나쁜 거야.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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