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선의 틈]선대인을 탓하지 말자
주변 친구들 중에 “선대인 때문에 그때 집을 못 샀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잖이 있다. 40대에 들어선 지금도 집값 이야기만 나오면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부동산을 키워드로 놓고 검색해도 ‘그때 선대인 때문에 집 못 샀다’며 ‘탓’하는 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차피 개인 책임이지만 시계추를 12년 전으로 돌려서 따져보자. 선대인은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아파트 가격이 ‘거품’이라며 집값의 대세 하락을 외친 대표 주자다. 부동산 전망 기사를 쓸 때 하락한다는 관점을 찾기 위해서는 그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 등 여러 책에 담긴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소득이 오르지 않는데 아파트 가격만 오른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진다. 저출생으로 인구가 줄어든다. 공급이 늘어난 아파트를 감당할 인구가 없다. 가격은 떨어진다’는 논리였다. 핵심 키워드는 아파트 거품, 저출생과 인구 감소였다. 그때는 너도나도 그의 말에 밑줄을 그었다. 요즘으로 치면 그의 말에 ‘좋아요’ 버튼을 꾹 눌렀을 테다(최근 주식 관련 그의 행보는 논외로 치자).
‘아파트 대세 하락’은 적어도 그 직후엔 틀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정책으로 유동성이 흘러넘쳤으며, 박근혜 정부에선 대출 규제가 완화됐다. 1인 가구 비중은 2000년 15%대였다가 2015년 27%까지 올랐다. 일부는 수도권에 신규 아파트 공급이 부족했다고도 한다.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그 시절 부동산은 ‘바람’을 탔다. 순풍에 돛을 달았어야 했다. ‘부채도 자산’이라는 말에 수긍하고 대출을 일으켰더라면, ‘1가구 2주택’이 되기란 하늘의 별을 딸 정도 일은 아니었을 거다. 당시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선대인의 책을 ‘전설의 오답노트’라며 공부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급격하게 달라졌다. 은행 대출 금리는 지난 1월 평균 연 3%대로 내려왔지만 대체로 4%대를 넘나들고, 중앙은행들은 유동성을 조이고 있다. 부동산 가격도 고점 대비 하락했고, 사고파는 거래도 이뤄지지 않는다.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물량도 늘었다. 부동산 침체기다. 예전처럼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줄었다.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부동산 전문가 172명, 공인중개사 523명, 은행 프라이빗뱅커 73명에게 물었더니 10명 중 7명 이상이 올해도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이 시국에 다시금 ‘선대인’을 꺼내는 이유는 ‘혼자 사니까 더더욱 오를 가치가 있는 곳에 집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1인 가구 후배, 결혼을 앞두고 전세와 매매 사이에서 고민하는 예비 부부, 학령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학군지의 구축 아파트로 이사 가 재건축을 기대할지 고민하는 친구의 질문을 마주하면서다. 아이가 있든 없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나이가 많든 적든 무게중심은 하나다. 인구 감소 시대에 노후 대비 자산으로 아파트가 여전히 유효한가.
두 개의 주장이 맞붙는다. 하나는 인구가 줄어도 ‘똘똘한 한 채’, 즉 오를 수 있는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부동산 양극화다. 일부에선 학교와 학원이 몰려 있는 몇몇 지역을 꼽기도 한다. 여기에는 부동산을 향한 ‘절대적 믿음’이 깔려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산의 70%를 차지하는 아파트는 ‘욕망’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아예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사람들의 심리도 시장을 움직이는 한 축이다.
다른 하나는,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하락한다는 주장이다. 부동산 업계에 있으면서도 부정적 전망을 내놓는 채상욱 애널리스트(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와 통화해봤다. 그는 “올해, 내년 등 단기적 흐름 말고, 저출생을 고려해 장기적 전망을 본다면, 인구가 줄어드니 실질성장률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성장률이 마이너스면 자산시장도 마이너스”라고 했다. 그는 “부동산이 아니어도 투자할 곳은 많다”고도 했다. 이를테면 재건축을 바라보며 오래된 아파트를 매매하는 소위 ‘몸테크’는 10년, 20년 뒤의 관점에서 추천할 만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실 당장 예측하기 힘든 금리를 제외하면 선대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 돈을 벌어서 소비에 쓸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는 선대인이 예측했던 때보다 더 빠르게 감소한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아파트를 구매하면 언젠가 되팔 수 있어야 한다. 인구가 줄었는데 고가의 아파트를 사줄 사람이 있을까.
결국 결정은 자기 몫이다. 이젠 선대인을 탓하진 말자.
임지선 경제부 차장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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