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본능과 감정 그리고 이성
생물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바로 본능, 감정, 이성에 의한 행동이다. 많은 동물은 본능에 의해 살아간다. ‘이기적’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생존과 번식을 강화하는 행동들 말이다. 생물은 배운 적이 없어도 혈당이 떨어지면 먹을 것을 찾고, 천적의 기척을 느끼면 도망치며, 번식기가 찾아오면 짝짓기를 한다. 때로 매우 정교해서 지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내장된 프로그램에 따르는 자동 반사에 가깝다. 개미의 장례 행동이 그렇다.
사회성 곤충인 개미는 죽은 동료의 사체를 회수해 개미굴 내에 위치한 특정한 장소, 일종의 공동매장지에 안치한다. 하지만 개미들이 동료의 죽음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개미는 동료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개미들이 동료의 사체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최소 이틀은 지난 후의 일이다. 마치 그때까지는 투명했던 사체가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개미들은 서둘러 동료의 사체를 매장지로 옮긴다.
사회생물학자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의 매장 행동을 조사해 이것이 인지적 행동이 아니라, 단지 개미가 죽은 뒤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올레산의 독특한 냄새에 대한 반사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올레산의 냄새를 맡은 개미는 무조건 냄새의 원인이 되는 대상을 매장지로 옮긴다. 살아 있는 개미라 하더라도 인위적으로 올레산을 묻혀두면 이들은 말 그대로 개미 떼같이 달려들어 버둥거리는 동료를 끌어다가 기어이 매장지에 버린다. 심지어 올레산이 묻은 개미가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인지하고 스스로 매장지에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니, 매우 고차원적으로 보이는 이들의 매장 행동조차도 그저 화학물질에 대한 반사 행동과 다름없다.
이보다 조금 신경계가 발달한 동물들은 본능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반응하기도 한다. 동료가 죽으면 밤새 곁을 지키며 긴 코로 고운 흙을 뿌려 몸을 덮어주는 코끼리나 죽은 자식을 몇주간이나 품에 안고 다니며 털을 골라주는 어미 침팬지에게서 슬픔의 감정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돌고래들은 함께 파도를 타며 해파리를 공처럼 튕기며 놀고, 물소들은 꽁꽁 언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미끄러지며 논다. 같은 문제를 해결한 두 마리 원숭이에게 달지 않은 오이와 달콤한 포도로 차별적 보상을 주면, 채소를 받은 쪽은 이를 먹지 않고 집어던지는 등 부당함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이들이 본능이 아닌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건, 이들의 행동이 자기 보전 욕구나 생리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본능에 기인한다면 썩어가는 사체의 불쾌한 냄새나 귀찮은 파리 떼를 감수하거나, 맛은 덜하지만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던져버리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의 행동을 결정하는 마지막 이유는 이성이다. 생물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인간만이 가능한 행동으로 본능적인 반응도, 감정적인 대응도 아닌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행동을 의미한다. 인간은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 중 유일하게 행동 범위를 시간적·공간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은 과거 경험을 통해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고, 개인의 행동과 의식이 인류 집단의 변화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도 가늠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건 여타 생물들도 가능하지만, 인간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도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해야만 하는 것과 쉽게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세분할 줄 알고, 심지어 할 수 없었던 것들을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고안할 줄도 안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의 생물학적 몸이 다른 동물과 별다른 차이가 없음에도, 인간을 고유한 존재로 만든다. 인간은 생존하고 느끼는 존재를 넘어 생각하고 상상하고 이루는 방법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또 앞으로 몇년간 미래와 공간과 방향을 꾸려갈 대표자들을 고를 시기를 앞두고 있다.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그저 휴일을 편안히 쉬며 즐길 수도 있고, 막연한 선망과 혐오의 감정에 따라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심사숙고를 통해 합리적 판단을 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두면 좋겠다. 그건 우리만이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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