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불복종의 정치, 더 많은 ‘수박’이 미얀마의 미래다
미얀마 내전 상황에 변화가 감지된다. 결정적 계기는 작년 10월27일부터 미얀마 북부 샨주에서 시작된 ‘세형제동맹’이라고 불린 3개 소수민족무장단체들의 공세, 이른바 ‘1027작전’이다. 요충지가 장악되었고, 투항한 군인과 경찰이 4000명에 이른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 작전은 논쟁의 여지가 다소 있지만 임시정부 민족통합정부(NUG)의 협력하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민주진영은 70년 넘게 자치권 확보를 위해 투쟁해온 소수민족들을 품지 못했지만 2021년 2월 쿠데타가 내전으로 변하면서 이들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결함인 다수의 전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2008년 군부가 만든 헌법 폐기 선언과 함께 연방민주주의 원칙을 담은 헌장을 선포했다. 범반군부연합체인 민족통합자문위원회(NUCC)는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중요한 협의체가 되었다. 또 평화적 방식의 시민불복종운동(CDM)을 유혈진압하고 체포된 시민들을 고문하고 심지어 처형하는 군인들을 본 청년들이 시민방위군(PDF)을 키워가기 시작했고, NUG의 주력군이 되었다. 이때 소수민족무장단체들이 무기와 군사훈련을 지원했다.
반면 사병과 장교들 중에 군영을 이탈하는 숫자가 점차 늘어났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국민을 학살하고 국민의 재산을 약탈하는 군에 더 이상 몸담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현재 군 내부에 ‘수박’도 늘어나고 있다. 군에 13년 복무하다가 쿠데타 직후 탈영해 한국에 정착한 린테아웅 전 미얀마군 대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더 많은 수박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때 수박(미얀마어로 프예띠)은 녹색 군복을 입은 군인이지만 붉은색으로 상징되는 아웅산 수지의 민족민주동맹(NLD) 중심 민주진영에 동조하면서 군영 밖으로 정보를 흘리는 장병을 지칭한다. 수박은 적극적으로 CDM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민주진영에 협조적인 공무원들까지 가리키고 있다.
위기의식을 갖게 된 미얀마 군부는 지난 2월 병력 증강을 이유로 그간의 모병제를 폐기하고 징병제로 전환하면서 징집 대상을 남자 18~35세, 여자 18~27세로 제한하되, 대졸 남녀는 전문인력으로 분류해 45세, 35세까지로 각각 확정했다. 군사정부가 강제징집을 예고하자 징집 대상이 되는 청년들이 동요하면서 국외로 빠져나가거나, 대도시 근로현장 남성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특히 그 여파로 태국에서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미얀마인들이 급증하면서 총리까지 직접 관여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한편 혁명군의 일원이 될 각오로 소수민족무장세력 거점인 ‘자유지역’으로 들어가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미얀마 중부 마구웨 지역에서 군부 측이 체포한 PDF 소속 포떼(23세)와 따타운(22세) 두 청년을 화형시키는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미얀마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경향신문 3월4일자).
PDF 병력은 분명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무기와 탄약이 부족하고 가까운 마을이 불에 타면 식량 공급도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또 민주진영에서는 영토의 60%를 장악했다고 얘기하지만 인구가 밀집한 도시 지역은 군부가 점령하고 있다. 그럼에도 라카인, 친, 카야주 등 변방 지역 반군부 무장세력들의 미얀마군을 향한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제사회는 기회주의적인 ‘최소희생의 원칙’을 버리고 미얀마 내전에 적극 관여해야 한다. NUG를 승인해야 한다. 이들이 과연 제대로 된 정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어야 한다. 국제사회가 미얀마군이 저지르고 있는 데모사이드(Democide), 즉 정부에 의한 시민 대량학살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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