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6조

기자 2024. 3. 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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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에 금석문 강독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고대사 전공은 아니지만 대학원에서는 학부 때와는 달리 무엇을 새로 배우게 될지 궁금했다. 과연 학부 때와는 수준이 달랐다. 판독문을 준비해서 강독하는 것까지는 그렇게 다르진 않았지만, 교수님이 소장하고 계신 탁본을 직접 보면서 재판독을 해보거나 새로운 추정을 해보는 점이 색달랐다. 논란 많던 광개토왕릉비 역시 여러 탁본을 비교하고, 한 소장 기관에 가서 그 거대한 탁본을 펼쳐놓고 문제 구절을 판독해보기도 했다. 탁본 같은 예스러운 자료를 직접 만지고 보면서 공부를 하면, 잊어버린 감각이 자극을 받는다. 역사를 전공하면서는 도리어 무뎌진 소싯적의 호고적 취향과 덕후적 기질 같은 것 말이다.

금석문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다. 그 정체를 몰라 빨래판이나 대장간의 다듬잇돌로 방치됐던 비석이랄지, 보상금 문제로 집에서 나온 비석을 감춰버린 얘기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내력 때문에 손상된 비석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안 그래도 고대의 비석은 서체나 문체도 독특한 데다 여러 명칭의 표기법이 독특하기 때문에, 따로 공부해야 하는 게 많다. 그런데 비석까지 마모되거나 깨져서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되면, 온갖 상상력과 지식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미 닳도록 금석문을 보셨을 교수님이 정기적으로 대학원에서 금석문 강독 수업을 여는 것 역시 여기에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금석문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과 신선한 눈들이 모이면 예전에 못한 판독과 해독을 해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단양적성비 판독과 해석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단양적성비는 주요 부분이 땅에 묻혀 있었던지라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판독이 잘된다. 다만 윗부분이 깨져 나가는 바람에 3분의 1 정도의 정보가 없어졌을 뿐이다. 글자가 좀 없어지기는 했어도 나머지 부분이 또렷해서 판독과 해독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비석의 전체적인 성격이나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판독이 잘되니 더욱 아쉬웠다. 저 없어진 부분만 다 찾아내면 뭔가 더 정밀하고 구체적인 사실들을 찾아낼 수 있을 텐데 싶은 것이다. 이런 안타까움을 표하자, 같이 수업을 듣던 고대사 전공 선배가 느긋하게 말했다. “원래 없는 부분이 더 커 보이는 거야”라고. 고대사 전공자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비석의 없어진 부분에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는 얘기도 함께해주었다.

더불어 키득대기는 했지만,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이런 감각이 있다. 정보가 온전하지 않을 때, 빠진 고리 하나만 찾으면 전체가 완전하게 재구성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같은 것 말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깨진 유리 조각을 다 찾으면 유리병을 만들 수 있을 것처럼 기대하지만, 역사의 맹점은 그 유리 조각이 원래 유리병이었는지, 유리잔이었는지, 한 개였는지, 여러 개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 찾은 조각으로 하나의 의문을 푼다 해도 바로 새로운 의문이 전개된다. 그러므로 전체를 완전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6조, “모든 역사상을 한 번에 밝혀줄 결정적 한 방은 없다”이다.

특히 이 규칙은 역사로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광개토왕릉비 탁본이 한창 뜨거운 이슈였던 시절, 이것이야말로 비밀을 밝혀줄 탁본이라는 소리에 혹하여 비싼 돈을 주고 별것도 아닌 탁본을 사 오는 분들이 있었다. 지금도 ‘역사의 비밀을 밝힐 결정적 단서’ 같은 걸 내건 책이나 방송에 혹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제발 믿으시라. 비석 파편 몇개에도 눈이 벌게 있는 족속이 역사학자들이다. 그런 게 있었으면 역사학자들이 벌써 다 찜 쪄 먹고 볶아 먹고 튀겨 먹었다. 속지 말자.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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