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반도체 패권경쟁의 숨은 병기 `내방사선 반도체`에 승부걸 것"
GIST 출신 반도체 소자 전문가
2년전부터 핵심기술 연구 집중
위성에 실린 반도체 소자 30%
우주방사선 영향으로 고장 발생
수출 경쟁력 위해 기술확보 시급
"초미세화·초집적화되는 반도체를 수출하기 위해 항공기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우주방사선의 영향으로 반도체가 손상될 위험이 큽니다. 위성과 발사체에 실린 수많은 반도체 소자 중 30% 가량에서 우주방사선으로 인해 고장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주방사선에 영항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내방사선 반도체'가 반도체와 우주패권 시대에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강창구(46·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내방사선 반도체를 국가전략기술로 육성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강 박사는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신소재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반도체 소자 전문가다. LG전자 생산기술원을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전자재료 전공으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후 귀국해 2015년부터 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에 몸담으면서 반도체 공정을 활용한 반도체 센서와 차세대 플렉서블 방사선 검출기 등 개발하는 연구를 해 왔다. 최근에는 지난 20년간 반도체 소자와 공정 연구개발 역량을 토대로 특수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는 내방사선 반도체 핵심기술과 인프라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내방사선 반도체는 대기나 우주방사선 영향에 의한 반도체 손상과 오류 위험이 최소화되도록 특수하게 개발·제작된 반도체를 의미한다. 인공위성에는 대략 1만5000개의 반도체가 들어가는 데, 그 중 몇가지는 손상이나 오류가 나서는 안 되는 핵심 부품이다. 대표적으로 위성의 두뇌 역할을 하는 온보드 컴퓨터와 통신용 부품 등에 내방사선 반도체가 적용되고 있다.
강 박사는 "2008년 호주 퀀타스 항공의 여객기가 비행 중에 갑자기 이유 없이 급강하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는 우주방사선에 영향을 받은 항공기의 자세·고도 정보시스템 오류에 의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항공기나 위성, 발사체를 포함한 우주항공 분야와 자율주행, 원전, 로봇 등 첨단산업에 쓰이는 반도체는 방사선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만큼 이를 견딜 수 있는 내방사선화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가 방사선 환경에서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안정적으로 동작하려면 특수한 기술이 적용돼야 한다. 이 가운데 반도체와 우주기술은 글로벌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주요 선진국이 수출통제 전략물자로 지정해 수출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방사선 반도체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으로, 기술안보 차원에서 국가가 나서서 시급히 기술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강 박사는 메모리반도체 수출강국인 우리나라가 앞으로 지속 가능한 반도체 수출 경쟁력을 가지려면 내방사선 반도체 기술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항공기를 이용한 반도체 수출 과정에서 비행 중 반도체가 우주방사선에 영향을 받게 되면 오작동 우려가 있어 모두 반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에 선제적 대응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내방사선 반도체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는 내방사선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내방사선 반도체 분야 전문가 채용도 물밑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내방사선 반도체를 개발하려면 방사선에 강한 소재부터 설계, 공정, 특성평가 등이 요소 기술로 뒷받침돼야 한다. 내방사선 반도체 소자 개발을 위해 지상에 우주방사선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신뢰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
강 박사는 "원자력연구원은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를 필두로 사이클로트론, 고저준위 감마선 조사장치, 양성자가속기 등의 방사선 조사시설과 반도체 설계·소자 제작이 가능한 방사선 기기팹을 갖추고 있다"면서 "중성자, 양성자, 감마선, 전자선 등 모든 방사선원을 갖추고 있고, 이를 시험평가할 수 있는 국내 최고 수준의 빔라인 운영 경험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은 관련 산학연 연구협의체인 '내방사선 반도체 연구회 컨소시엄'을 지난해 6월 구성해 각 기관의 장점과 역량을 융합해 내방사선 반도체 핵심기술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내방사선 반도체 연구 기관인 미국 텍사스대학교 댈러스캠퍼스, 미국 광소자 전문기업인 머스탱 옵틱스 등이 국제 협력기관으로 참여키로 했다. 원자력연구원은 두 기관과 내방사선 반도체 핵심기술과 시험평가기술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 협력의향서를 체결하는 등 글로벌 협력을 펼치고 있다.
강 박사는 "내방사선 반도체는 국가 안보, 첨단기술 주권 확보, 공급망 안정화 등의 측면에서 산학연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면서 "정부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 등이 반도체 설계, 공정, 방사선 조사영향평가, 표준화 등에서 개별적으로 지닌 강점을 융합하고, 해외 선도 연구기관과 협력해 국내외를 아우르는 내방사선 반도체 연구 공조체계를 조성하기 위해 국가적 결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연구원은 300krad급 내방사선 반도체 핵심기술 개발과 방사선 조사영향평가시설 구축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톱 전략연구단 지원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강 박사는 "현재 내방사선 반도체 기술 분야의 글로벌 선도기업인 'BAE 시스템'이 영국 국영기업으로 출발했다"며 "우리나라도 글로벌 톱 전략연구단을 통해 '한국판 BAE 시스템'을 육성해 내방사선 반도체 전자부품 시장 세계 3위로 올라서는 바탕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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