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 접견실의 아득한 거리

한겨레 2024. 3. 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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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 중에 유난히 많은 명언을 남긴 이는 단연 영국의 윈스턴 처칠일 것이다.

그중 한국에서는 한 문고회사가 단어 하나를 바꿔 더 유명해진 문장,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은 우리를 만든다"는 2차 대전 중 폐허가 된 의회의사당의 재건을 약속하며 그가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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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의 지난달 21일 첫 회의 장면. 대한축구협회 제공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 중에 유난히 많은 명언을 남긴 이는 단연 영국의 윈스턴 처칠일 것이다. 그중 한국에서는 한 문고회사가 단어 하나를 바꿔 더 유명해진 문장,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은 우리를 만든다”는 2차 대전 중 폐허가 된 의회의사당의 재건을 약속하며 그가 했던 말이다. 이 말은 건축과 우리 삶의 관계를 명징하게 드러낸 말로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공간과 도시를 설계한다는 것은 사람뿐 아니라 사람 너머의 숨겨진 이면도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녹록지 않다. 예를 들어 기업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설계의뢰를 받았을 때가 그런 경우다. 눈에 보이는 곳을 멋지게 꾸미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기업환경이 사람관계라는 사실에 주목하면 개선과 해결이 쉽지 않다. 이 경우 대표실과 회의실 공간의 자리 배치를 살펴보면 실마리가 드러난다. 그 회사의 의사결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실과 접견실은 사람이 함께 앉는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실체적인 목적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회의실이 소통을 위한 곳이라면 접견실은 권위와 과시를 위한 공간이다. 기업환경을 바꿔달라 의뢰한 기업조차도, 그럼 제일 먼저 대표실 큰 소파와 응접 테이블을 가벼운 의자와 회의 데스크로 바꾸자는 제안을 수용하는 빈도는 높지 않다. 아직도 많은 회사의 대표가 소통보다는 지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통령 집무처 엘리제궁에서 근무했던 한 외교관이 사석에서 고백한 말이 있다. 상대국의 요구를 들어주긴 싫으나 섭섭하게도 하고 싶지도 않을 때 가장 넓고 화려한 접견실에 상대방을 들인다고 한다. 반면 꼭 합의를 이끌고 싶은 사안이면 가장 좁고 소박한 회의실에 자리 잡는다 했다. 진짜 대화하고 싶으면 의자를 바짝 당겨 상대와 가까이 앉아야 한다. 크고 푹신한 소파에 퍼져 앉은 곳에서 (대접받았다는 감정적 만족감 외에) 실질적 합의가 나오기 힘든 이유다.

지난 2월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뉴스 중 하나는 2023 아시안컵에서 고전했던 축구대표팀과 대한축구협회였다. 4강에서 무기력한 패배를 당하자 여론은 폭발했고, 엉뚱하게 선수들 간 불화로 옮겨가더니, 결국 유명 감독은 경질되었다. 잘될 때는 ‘누구 덕’이고 잘 안 될 때는 ‘누구 탓’인 협회의 리더십과 의사결정과정 같은 문제가 또다시 입방앗거리로 등장했다. ‘감독이, 협회장이, 어떤 임원이, 특정 선수가 문제다’와 같은 사람에 대한 비난은 축구뿐 아니라 (책임을 수반하는) 정치나 회사경영을 포함한 우리 일상의 모든 분야에서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대표팀 새 감독 선임을 의논하기 위한 전력강화‘회의’에 소집된 협회 임원들이 모여 앉은 모습에 시선을 준 사람은 많지 않다. 엄숙한 표정의 위원장 양편으로 두손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하게 앉은 회의 참석자들, 그것도 아니면 쿠션에 등을 대고 몸을 뒤로 눕힌 채 편히 앉은 사람들 앞 테이블에는 상대방의 의견을 노트하거나 자신이 말할 자료조차 펴있지 않았다. 목축일 음료만이 그 위를 채우고 있다. 회의의 결과물은 회의 탁자에 올려진 자료의 ‘화학적 총합’이란 것은 일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공간이 모든 것을 결정할 리는 없다. 하지만 이들도 좁은 원형테이블 주위로 가깝게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눈다면 분명 더 많은 의견들이 쏟아질 거라는 사실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 회의가 수백 번 반복되면 그 결과가 어떨 것이라는 것 또한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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