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를 뚫고 나온 강아지…'멜로'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최지희 2024. 3. 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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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
'스티븐 해링턴 : 스테이 멜로'전
'멜로'와 '룰루' 귀여운 캐릭터로
기후변화 등 사회적 문제와
인간 우울 향한 메시지 날려
높은 층고 살린 초대형 회화에
미술관 기둥·바닥 뚫는 설치작
미술관 구조 십분 활용한 전시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설치된 스티븐 해링턴의 대형 설치 작품 ‘들어가는 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사옥 지하 바닥을 뚫고 강아지 한 마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 강아지의 이름은 ‘멜로’. 두 손으로 기둥을 붙잡고 관객을 향해 눈인사를 건넨다. 높은 층고, 측면의 기둥 등 전시장의 구조를 이용해 재치 있는 조각 작품을 만든 주인공은 미국 작가 스티븐 해링턴. 그는 튀는 색감과 캐릭터를 주로 그리고 만드는 작가다. 나이키, 크록스, 몽클레어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에 자신의 그림을 넣으며 일반 대중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

 ○판화부터 브랜드 협업 제품까지

해링턴이 한국 관객을 찾아왔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여는 개인전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를 통해서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회화와 조각, 판화부터 브랜드 협업 제품까지 100여 점을 들고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기존 작품과 더불어 미공개 신작, 초기작과 디자인 작품까지 20년에 걸친 그의 작업 인생을 한곳에서 선보인다.

그의 작품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강아지 ‘멜로’와 야자수 ‘룰루’다. 두 캐릭터는 해링턴에게 인간을 상징한다. 인간의 형상이 아닌 동식물로 사람을 나타낸 데에도 이유가 있다. 인종과 나이, 성별 등을 초월해 관객이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창조하고자 했다.

귀여운 모습을 한 캐릭터지만, 그 내면에는 저마다의 고민과 진지한 이야기가 있다. 특히 멜로는 코로나19 초기, 작업실에만 갇혀 옴짝달싹 못 할 때 탄생했다. 상상 속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그의 간절함과 우울함을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도 다양한 얼굴을 한 멜로의 모습을 대면할 수 있는데, 모두 그가 가진 고민과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해링턴의 과거 작품도 함께 걸렸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시간 순서대로 그의 초기 스케치, 드로잉, 설치작품, 영상, 판화 등을 한곳에 모았다. 그의 작품 변천사와 작업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 그림으로 표현

오직 이번 전시를 위해 해링턴이 그린 신작도 있다. 너비 10m, 높이 4.5m에 달하는 대형 회화 ‘진실의 순간’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해링턴은 몇 번이고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규모에 꼭 들어맞는 ‘맞춤형 작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캐릭터와 다양한 색감을 사용해 가볍고 재치 있는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회를 향한 진지한 메시지가 담겼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방에 불이 붙었다. 주위 등장인물은 패닉에 빠져 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을 그려내며 기후 문제와 환경오염 속 인간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고민하는 사회적 문제를 계속해서 그림으로 그려낸다. 해링턴은 “그림이라는 나의 일상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를 항상 고민하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개인적으로 스케치북과 다이어리에 그려 온 그림도 만날 수 있다. 해링턴은 손이 닿는 곳곳에 스케치북을 놓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마구잡이로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그림은 한국의 다양한 이미지를 모아놓은 스케치다.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소주, 한옥 등이 강아지 마스코트 ‘멜로’와 함께 담겼다.

해링턴이 10년 넘는 기간 선보인 디자인 작업과 브랜드 협업 작품도 모였다. 운동화, 티셔츠 등 패션 제품뿐만 아니라 가구 브랜드 이케아와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 등 생활용품 기업들과 손잡고 내놓은 컬래버 작품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 브랜드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해링턴은 “컬래버는 미술관에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도 내 작품이 닿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브랜드의 이름값이나 개수보다 실제로 인간의 삶에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기업들과만 일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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