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파업 정당성 따져보니…“의료재난” 선포, 다툼 소지 있다

한겨레 2024. 3. 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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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의료진들의 복귀가 미미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는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수도권 긴급 대응 응급의료 상황실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진욱 | 분당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현재 진행 중인 정부와 의사 간 갈등에는 적정한 의사 수와 필수의료 개혁의 방법론 외에도 “의사의 파업이 윤리적으로 허용되는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중요한 쟁점이다. 필자는 현 상황을 초래한 현실 인식의 시시비비나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않은 상태의 노동쟁의의 합법성보다는(이에 대한 결정은 앞으로 사법부의 몫일 것이다) 단지 일반적 윤리 기준으로 의사의 파업을 따져보고자 한다.

코로나19 범유행을 겪으면서 세계적으로 보건의료업 종사자의 파업이 1년 만에 62% 증가했다. 근로조건·보수의 개선요구가 가장 흔한 이슈이나 보건의료제도 개선이 두번째로 흔한 파업의 요구조건이었다. 최근 영국에서는 일반의의 파업으로 입원·외래진료의 지연이 100만건을 상회했다. 세계적 파업의 증가 원인으로는 코로나19을 겪으면서 발생하는 번아웃(탈진)의 영향이 크지만, 전통적 의료시스템에서 의사들이 가졌던 소명의식이 컨슈머리즘(소비자 중심주의)으로 대표되는 의료산업의 서비스공급자 마인드로 대체되는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의사의 파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사의 파업이 의료 행위가 가지는 전문성에 수반하는 고도의 윤리성과 의료인의 배타적 진료권리를 보장해주는 사회적 합의를 훼손한다는 점이다. 굳이 히포크라테스까지 거슬러가지 않아도 세계의사협회 헌장은 “환자의 건강을 의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가치”로 명시하고 있으며, 대한의사협회 윤리지침은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라고 선언한다. ‘의무론적 의료윤리관’에서 의사 파업은 비록 의료시스템의 개선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행위이므로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한편 ‘공리주의적 윤리관’의 측면에서 보면 의사 파업은 이론의 소지를 남긴다. 이 주장의 논거는 비록 단기적으로는 환자에게 불편을 주더라도 장기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다수의 불특정 환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의 총합이 더 크다는 결과론적 유익이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에서 이뤄진 여러 연구에서 의사의 파업은 환자에게 불편을 야기하지만 사망률에는 유의한 변동이 없었으며, 더 숙련된 의사가 진료를 담당하면서 젊은 의사의 파업 기간 사망률의 감소세를 보였다는 연구도 있다.

보다 실용적 접근법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의로운 전쟁 이론’(종종 강대국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용되는)을 이용해 의사파업의 윤리적 정당성 조건을 제시하는 시도가 있었다. 어떠한 전쟁이 정의롭다는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정당한 동기·의도,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상응하는 위력 행사, 최후의 수단, 적법한 권위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전쟁이론을 응용해 마크 토인비(Mark Toynbee)등 윤리학자들은 △모든 환자에게 응급 진료가 지속하고 △쟁의의 목적이 환자의 안녕(웰빙)을 목적으로 하며 △쟁의 이외의 모든 방법이 실패한 경우에는 의사의 쟁의 행위가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전공의들의 근무 포기 “자체”에 대한(그 원인과는 별개로) 정부의 입장은 다분히 의무론적 윤리관에 입각한 선언적 측면이 있고 의사협회·전공의의 주장은 공리주의적 윤리관과 노동에 대한 개인의 권리의식이 주요 근거이다. 하지만 응급의료 시스템이 이전과 같이 유지돼 환자 진료의 결과가 악화하지 않는다면 현 상황을 의료재난상태로 선포한 정부의 판단은 법적 다툼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한편, 급변하는 의료환경에서 미래지향적 의료시스템을 제시하고 이에 의한 장기적 개선 효과를 정부와 국민(전공의를 포함하는)을 대상으로 납득시킬 책임이 전공의의 과도한 근무 강도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기형적 의료시스템 속에 있는 선배 의사에게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책임 소재를 법적으로 가리는 것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3차 의료기관의 운영이 지장을 받을 때 가장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중증도 높은 환자를 장기적 의료인력 부족으로 겪을 수 있는 잠재적 위해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보완책이다. 정부-의료계의 합리적 모색을 통해 전공의에게 지나친 진료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는 위험한 의료시스템을 개선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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