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폐지…노동자 여가권 배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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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주재관으로 부임했을 때, 독일은 낯설었다.
공휴일에는 물론이고 평일에도 저녁이 되면 대형마트뿐 아니라 일반 상점도 문을 닫았다.
연방 헌법재판소가 "일요일에 상점 문을 열도록 하는 것은 독일 기본법의 정신을 훼손한다. 일요일과 기타 국가 공휴일은 노동에서 벗어나 쉬고, 또 영혼의 힘을 찾는 날로 지정돼 있으며 이는 헌법으로 보장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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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임영섭 |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
2003년 주재관으로 부임했을 때, 독일은 낯설었다. 공휴일에는 물론이고 평일에도 저녁이 되면 대형마트뿐 아니라 일반 상점도 문을 닫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시내 중심가에도 정적이 흘렀다. 인터넷을 개통하는 데 한 달이 걸렸고, 목적지 브란덴부르크에 도착한 시내버스 안내방송은 “브란덴부르크” 딱 한 마디였다.
4년 뒤 돌아와 보니, 한국이 낯설었다. 매장에서 “피팅룸이 저쪽에 있으십니다”라고 안내하고, 계산대에서는 “서명하실게요”라고 한다. 전철에서는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일본어로도 안내하고, 내리는 문이 어느 쪽이고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시라”는 방송까지 한다. 서울시가 버스 안 라디오 방송 송출 제한을 역설적이게도 ‘서비스 개선’ 조치로 내놓은 적도 있다.
얼마 전 정부는 대형마트의 공휴일 의무 휴업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달에 두 번 공휴일에 쉬도록 한 유통산업발전법을 평일 휴무가 가능하도록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공휴일 휴업의 골목상권 보호 효과가 미진하다고 보고, 평일 쇼핑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나 1인 가구의 불편함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이 법의 원래 취지는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및 대규모 점포 등과 중소 유통업의 상생발전”이다. 정부의 개정 추진과정에서 근로자의 건강권에 대한 고민은 안 보인다. 대형마트 근로자가 휴일에 가족과 같이할 기회마저 빼앗는 것이라는 불만도 들린다.
독일의 상점 영업시간 규제는 1956년 제정된 상점폐점법에 근거한다. 2006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주 정부에 영업시간 통제 권한을 넘겼지만, 평일 개점시간이 늘었을 뿐 지금도 공휴일에 상점을 여는 곳을 찾기 힘들다. 연방 헌법재판소가 “일요일에 상점 문을 열도록 하는 것은 독일 기본법의 정신을 훼손한다. 일요일과 기타 국가 공휴일은 노동에서 벗어나 쉬고, 또 영혼의 힘을 찾는 날로 지정돼 있으며 이는 헌법으로 보장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권’과 ‘여가권’은 별개의 권리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비자면서 동시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다. 대부분의 우리는 돈을 쓰는 데보다 버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싫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서비스의 절제가 필요한 이유다. 서비스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제공하는 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손님이 왕이던 시대가 아니다. ‘내부 고객이 먼저’라는 경영방침을 실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회사에 만족하는 직원이 외부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가로 충전하고 영혼의 힘을 찾은 직원이 건네는 건강한 미소를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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