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겁박하고 위협 중"…병실 비운 의사들 '해외 여론전'

정심교 기자 2024. 3. 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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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사회(WMA) 루자인 알코드마니(Lujain Alqodmani) 회장은 영상에 직접 출연해 "대한민국 정부는 의료계에 가하는 강압적인 조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 영상은 4일 대한의사협회 유튜브 채널에 게시됐다. /사진=의협 유튜브 캡처

정부와 의사집단 간 대립이 '국내 교전'에서 '해외 여론전'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정부가 법적 처분으로 대응하자, 의사들이 "한국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의사들을 겁박하고 위협 중"이라며 해외에 지원사격을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행보는 최근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의사들의 등을 돌리자 입지가 좁아진 의사들의 새로운 전략으로 풀이된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내민 카드는 '해외 언론 활용'이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각국 외신을 상대로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회견을 주재한 박인숙 의협 비대위 대외협력위원장은 "평생 공부만 하고 환자만 보던 전공의들이 하루아침에 도망자, 범죄자 신분이 돼 휴대전화도 버리고 숨어있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이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사의 집단행동은 불법이 아니"라며 "우리나라에선 의사의 집단행동이 무조건 불법이고 형사처벌 대상이며 면허 박탈의 이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공익을 위해서라면 의사의 기본권도 제한할 수 있다는 현 정부의 놀라운 발언은 끔찍한 인권침해이자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발언"이라며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겁박하고 위협해 전공의들이 심한 압박감을 받고 있다"라고도 호소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6일(왼쪽)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의 연설문과 이를 인용보도한 해외 뉴스를, 5일(오른쪽) 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 기사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사진=박단 위원장의 페이스북 화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6일 자신의 SNS에 "전일(5일)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 참여한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의 연설문이 AP, ABC뉴스 등에 보도됐다"며 ABC뉴스 링크를 걸었다. 연설문 속 전공의는 "나는 사임한 레지던트 중 한 명"이라며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며 권리를 행사하는데 정부로부터 공개적으로 일하라는 명령과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는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이 도맡고 있다. 그는 일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미국 블룸버그, 중국 CCTV 등 10여 개 외신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의협 브리핑에서 "외신은 이 사태에 대해 편견 없이 객관적 시각으로 봐 한국 언론보다 이해가 빠르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의사들을 돕겠다는 '해외 지원사격'도 등장했다. 전 세계 114개국 의사 단체연합인 세계의사회(WMA)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의대생 정원을 대폭 늘리겠다는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 의료계에 혼란을 초래했다"며 한국 의사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세계의사회는 1일, 1차 입장문에서 "의대생 및 젊은 의사를 포함한 의사들은 민주적인 법과 헌법의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며 "(전공의) 개인의 사직을 막고 학교 입학 조건을 제한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잠재적인 인권 침해로 간주해 국가적으로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세계의사회는 3일 낸 2차 입장문에서 "최근 의협 지도자들의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압수된 것은 그들의 권리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침해이자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4일 의협은 루자인 알코드마니(Lujain Alqodmani) 세계의사회장이 한국 의사들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의협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다. 영상에서 그는 "세계의사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초래한 위기 속에서 한국 의사들을 확고히 지지한다"며 "대한민국 정부는 의료계에 가하는 강압적인 조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등 무더기 징계에 나서자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 항의와 집단행동이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소재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3.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해외 지원사격 요청에 의대생들도 가세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KMSA·의대생협회)는 4일 세계의대생연합(IFMSA)에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제 성명서를 전달했다.

세계의대생연합은 전 세계 130개국의 의대생 130만여 명이 가입된 국제 학생 단체다. 의대생협회는 "논란이 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갑작스레 발표되면서 이에 대응해 레지던트는 사직하고 의대생들은 집단 휴학을 하고 있다"고 밝히며 "정부는 점점 폭압적으로 변하고 명령과 위협을 가하며 의사와 의대생을 범죄자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KMSA는 폭압적인(tyrannical) 정부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정부가 미래의 환자들을 위험에 밀어 넣게 두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 건강과 싸우는 우리에게 지원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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