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 어른거리는 ‘1등의 저주’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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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기업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1등의 저주는 이후에도 많은 기업을 덮쳤다.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코닥은 '코닥의 딜레마'(=1등의 저주)라는 용어만 학술서에 남긴 채 공중분해됐다.
돌고 돌아 이제 1등의 저주가 애플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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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기업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어떤 업종의 지배적 기업이 후발자에게 따라잡히거나 지위를 위협받을 때 쓴다. 잘나가는 현재에 안주하며 세상 변화를 등지고 혁신과 담을 쌓으면 소리 없이 찾아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록스’(Xerox)다. 회사 이름이 곧 ‘복사’의 일반명사로 사전에 등재될 만큼 한때는 사세가 대단했다.
“제록스는 오늘날의 컴퓨터 산업 전체를 가질 수도 있었죠. 규모가 10배는 커졌을 수도 있죠. 90년대의 아이비엠(IBM)이 됐을 수도 있겠네요. 90년대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됐을 수도 있고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한 이유가 있다. 제록스는 건식 복사기 하나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렸다. 그 돈으로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팰로앨토 연구소’(PARC)를 차렸다. 오늘날 일상이 된 컴퓨팅 기술이 거의 모두 그곳에서 개발됐다. 윈도·아이콘·메뉴·포인터로 구성된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오오피(OOP·객체지향프로그래밍), 복사-붙여넣기, 워드프로세서, 이더넷, 레이저프린터 등 꼽자면 한이 없다. 1973년엔 세계 최초로 개인용컴퓨터(피시)도 만들었다.
그러나 상용화를 마냥 미뤘다. 돈이 넘쳐나니 연구만 계속했다. 1979년 잡스는 그곳을 방문했다가 ‘신대륙’을 발견한다. “그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엇을 가졌는지도 모르더군요.” 잡스는 일부 기술이전 요청을 제록스가 거절하자 아예 핵심 과학자(래리 테슬러)를 데려갔다. 최초의 상용 피시, 애플 매킨토시(1984)의 기원이다.
1등의 저주는 이후에도 많은 기업을 덮쳤다. 노키아는 모토롤라를 제치고 피처폰의 최강자가 됐지만,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에 밀려 몰락했다. 인텔은 게임용 그래픽 카드나 만든다고 무시했던 엔비디아에 추월당했다. 아이비엠은 마이크로소프트 좋은 일만 한 자신들의 피시 전략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코닥은 ‘코닥의 딜레마’(=1등의 저주)라는 용어만 학술서에 남긴 채 공중분해됐다.
돌고 돌아 이제 1등의 저주가 애플에 어른거린다. 애매한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타이탄 프로젝트’)에 10년간 매달리다 에이아이(AI·인공지능)를 놓쳤다. 따라잡기엔 출발이 많이 늦었다. 아이폰으로 차지했던 전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도 지난 1월 에이아이에 올라탄 엠에스에 도로 빼앗겼다. 잡스라면 달랐을까, 궁금하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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