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넘어 깨달은 스승의 소리 들려줄 것”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3. 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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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 완창 무대 서는 채수정
박송희류 소리 진수 선사할것
1월 ‘적벽가’ 완창 후 두달 만
임방울제 대통령상 받은 명창
판소리 1호 음악학 박사에
판소리 사설로 국문학 석사도
오는 3월 16일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채수정 명창을 최근 매일경제가 만났다. 이승환 기자
동편제(전라도 동북 지역에 전승돼 온 판소리 유파)의 법통을 계승한 인간문화재 박송희(1927~2017)를 사사한 명창 채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54)는 50대에 접어들어 자신이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고한 스승이 남긴 소리를 반복해 듣고 연구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자신이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오는 3월 16일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공연에서 박록주제 박송희류 ‘흥보가’를 완창하는 채 교수는 그동안 만들어 온 자신의 스타일을 접어두고 스승 박송희의 판소리 어법을 최대한 구현할 예정이다. 나이가 들고 귀가 열리면서 새롭게 발견한 스승의 소리를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그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선생님께서 주려 하셨던 것을 그동안 못 받았던 것이 죄송스럽고 그동안 내가 다 받아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한다”며 “선생님께서 남긴 녹음을 반복해서 듣고 영상을 시청하며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소리 완창은 소리꾼 한명이 판소리 마당 하나 전체를 짧게는 3시간, 길게는 8시간에 걸쳐 부르는 공연이다. 내공을 갖춘 소리꾼이 오랜 기간 준비해 선보이며, 공연 뒤 ‘소리 몸살’이라는 후유증을 앓기도 할 만큼 많은 공력을 소모한다.

채 교수가 부를 박록주제 박송희류 ‘흥보가’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2개의 ‘흥보가’ 중 하나다. 송만갑-김정문으로 전해져 온 동편제 소리를 박록주가 간결하게 다듬었고, 여기에 박송희가 ‘놀보 박타는 대목’을 덧붙여 권선징악의 교훈을 부각했다. 기교가 적고 리듬이 단조로우며 소리에 무게감이 있는 동편제의 특징을 계승했다. 이번 공연은 명고 김청만과 박근영이 고수로 참여하고, 송지원 음악인문연구소장이 해설 및 사회를 맡아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오는 3월 16일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채수정 명창. 국립극장
국립국악고에 진학하며 판소리를 시작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박송희를 만나 그가 세상을 떠나는 2017년까지 30년 넘게 가르침을 받았다. ‘흥보가’와 ‘적벽가’ ‘숙영낭자가’ 등을 튼실하게 익히며 목청이 좋고, 소리판을 쥐락펴락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은 후 2011년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와 미국·일본·영국·프랑스·브라질 등 해외에서 ‘흥보가’와 ‘적벽가’를 수 차례 완창하며 내공을 다졌다.

소리꾼이 된 것은 예인의 성향을 가졌던 집안 어른들의 영향이 컸다. 전라남도 진도가 고향인 아버지와 고모들이 진도아리랑과 판소리, 육자배기 등을 즐겼고, 그 덕에 어린 시절부터 전통 가락을 향유하며 자란 것이다. 채 교수는 “진도는 인구의 90%가 노래를 하는 고장이고, 고모들은 그곳에서도 소리를 잘하셨다”며 “가족들이 모이면 완창 발표회를 하는 등 자연스럽게 소리를 접하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나를 국악고로 진학시키면서 판소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판소리를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에서 공부해 최초의 판소리 음악학 박사가 됐을 뿐 아니라 고전문학인 판소리 사설을 연구해 경희대 국문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채 교수는 “김대행·김종철 서울대 명예교수 등 국문학자들이 박송희 선생님을 찾아와 소리를 배우는 것을 보면서 소리꾼인 나도 문학으로서의 판소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3월 16일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채수정 명창을 최근 매일경제가 만났다. 이승환 기자
그는 2015년 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로 임용돼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22년 사단법인 세계판소리협회를 만들어 판소리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11월에는 판소리 축제인 제1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을 개최하고, 판소리의 유네스코 등재 20주년을 기념해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20시간 동안 60명의 소리꾼이 판소리를 연창하는 ‘판소리 20시간 릴레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채 교수는 “태권도처럼 판소리를 세계인이 즐기는 문화로 만들고, 소리꾼 후배들이 전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게 지평을 넓히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번 박록주제 박송희류 ‘흥보가’ 완창판소리는 지난 1월 13일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박송희제 적벽가 완창발표회 이후 두달 만에 선보이는 판소리 완창이다. 소리꾼 한 명이 판소리 완창을 두달 간격으로 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는 일정이다. 그는“판소리는 배우는 게 20년, 혼자 공부하는 독공이 10년이고 이후에는 (수련한) 소리를 써먹어야 한다”며 “평생 불러왔던 것이고, 기회가 있을 때 한번이라도 (완창을) 더 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1984년 시작된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당대 최고 명창들의 판소리 한바탕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무대다. 상반기에는 김금미(4월·박봉술제 적벽가), 조주선(5월·강산제 심청가), 남상일(6월·정광수제 수궁가)의 무대가 예정돼있다.

오는 3월 16일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채수정 명창을 최근 매일경제가 만났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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