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꼬리를 잃고 ‘이것’을 얻었다

곽노필 기자 2024. 3. 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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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오랑우탄. 사람은 물론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등의 유인원은 진화과정에서 꼬리를 잃어버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장류에서 사람(호모 사피엔스)이 속한 유인원(사람과)이 진화하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신체 특징 가운데 하나는 꼬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사람은 물론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등의 유인원은 진화과정에서 꼬리를 잃어버렸다. 과학자들은 화석 증거를 토대로 구세계 원숭이에서 꼬리 없는 유인원이 갈라져 나온 때를 2500만년 전으로 추정한다. 물건이나 나뭇가지를 잡는 데 쓰였던 꼬리의 상실은 유인원이 이족 보행을 하는 데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유인원에게서 꼬리는 어떤 연유로 사라진 것일까?

그동안 과학자들은 꼬리 발생에 관여하는 140여개 유전자가 있다는 점에서 이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가 꼬리 상실의 주된 원인이었을 가능성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미국 뉴욕대 랑곤헬스 연구진이 유인원 6종과 꼬리가 있는 원숭이 9종의 디엔에이(DNA)를 비교하고 생쥐 실험을 통해 검증한 결과, 꼬리 상실의 원인은 꼬리 유전자 돌연변이가 아니라 꼬리 유전자에 다른 유전자 조각이 끼어들었기(유전자 삽입) 때문이란 걸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꼬리 없는 유인원은 2500만년 전 처음 등장했다(Mya=100만년 전). 네이처 인용

꼬리 유전자 내에 외부 DNA 조각이 끼어든 탓

꼬리 발생에 관여하는 TBXT란 유전자 내의 ‘알루(Alu) 인자’라는 이름의 디엔에이(DNA) 조각이 범인이었다. 약 300개 염기쌍으로 이뤄진 알루 인자는 아르트로박터 루테우스(Alu)라는 세균에서 유래한 것으로, 단백질 합성은 하지 않고 자기복제 기능만 있다고 해서 ‘이기적 유전자’라고도 불린다. 알루 인자는 인간 게놈 전체에 100만개 이상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유전자 조각이 꼬리 유전자에 끼어들어 관련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면서 꼬리가 사라진 것이다.

네이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된 이번 연구는 애초 2021년 9월 동료학자 검토를 받기 전의 출판 전 논문 공유집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공개했던 것을 더욱 정교하게 수정한 것이다.

이 논문은 네이처 논문 심사를 통과하기까지 거의 900일이 걸렸다. 생쥐 실험을 통해 유전자 끼어들기 효과를 검증하는 작업에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처음 논문을 작성했을 때만 해도 연구진은 유인원 유전자를 생쥐의 유전자에 도입했을 때 다양한 꼬리 결함을 발견하긴 했지만 꼬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는 못했다. 연구진은 네이처에 논문을 제출한 이후 실험을 계속한 결과 마침내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연구는 더욱 강력한 근거를 갖춘 논문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논문 검토를 맡았던 독일 킬대학의 말테 스필만(유전학) 교수는 “연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논문 제1저자인 MIT하버드브로드연구소의 시아 보 박사가 뉴욕대 그로스만의학전문대학원 재학 시절 경험한 교통사고가 계기가 됐다. 당시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입은 꼬리뼈 부상으로 1년간 고생하면서 꼬리의 퇴화 연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내 꼬리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던 것이 그 호기심의 바탕에 있었다. 사람의 꼬리는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사람의 척추 아래쪽에는 아직 미골(꼬리뼈)이라는 이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인간과 유인원의 꼬리 손실 진화에 관한 연구는 ‘꼬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네이처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인간과 유인원 둘 다 똑같은 위치에 존재

직감적으로 꼬리가 사라진 것이 유전자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그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1927년 우크라이나 과학자 나딘 도브로볼스카야-자바스카야가 발표한 연구에 주목했다. 꼬리가 짧은 실험용 생쥐의 T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어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UCSC)가 관리하는 구글 게놈 브라우저를 검색해, 인간과 유인원의 TBXT 유전자에 ‘유전자 끼어들기’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냈다. 이는 꼬리가 있는 원숭이한테선 볼 수 없는 특징이었다.

그와 동료 연구진은 유인원 조상의 TBXT 유전자에 ‘알루 인자’가 삽입된 것이 꼬리 상실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뒤, 다양한 형태의 TBXT 유전자를 발현하는 생쥐 모델을 만들어 하나하나 검증해갔다.

그 결과 TBXT 유전자 내의 인트론 부위에서 일어난 알루 인자 삽입이 꼬리 길이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트론은 진핵세포의 DNA 염기서열 중 단백질 합성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부분을 말한다. 반면 단백질 합성 정보를 담고 있는 부분은 엑손이라고 부른다.

연구진은 인간과 유인원의 TBXT 유전자 내 동일한 위치에 존재하는 특정 알루 인자(AluY)가 두 가지 형태의 RNA를 생성한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하나가 꼬리 상실에 직접 관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유인원과 유사한 Tbxt 유전자를 만들기 위해 유전적으로 조작한 생쥐 모델의 꼬리 길이를 엑스레이로 찍은 사진. 맨 오른쪽이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은 일반 쥐다. 네이처 제공

꼬리를 잃고 선천성 척추 질환을 얻다

공동저자인 제프 보케 교수(생화학 및 분자약리학)는 보도자료에서 “대부분의 인간 인트론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DNA이지만 이 부위에 삽입된 ‘특정 알루 인자’(AluY)는 꼬리 길이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명확한 일을 했다는 점에서 이번 발견은 놀랍다”고 말했다.

2500만년 전에 일어난 이런 진화적 사건은 유인원의 직립보행 능력을 키워줌으로써 이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 정착하는 데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다. 화석 증거에 따르면 초기 유인원은 나무에 사는 원숭이처럼 네발로 움직였으며, 이족보행은 수백만년에 걸쳐 서서히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또 유인원만이 꼬리가 없는 영장류인 것도 아니다. 맨드릴과 일부 짧은꼬리원숭이, 눈이 큰 야행성 동물인 로리스원숭이도 꼬리가 없다. 이는 꼬리가 한번이 아닌 여러번에 걸친 진화를 통해 사라진 것임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발달 과정에서 꼬리가 사라지는 데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발견한 것은 우리 조상들한테서 일어난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는 세상 이치는 여기서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연구진은 유전자는 흔히 두 가지 이상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곳에 이점을 주는 변화가 다른 곳에서는 해로울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TBXT 유전자를 삽입한 생쥐에서 신경관 결손이 약간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신경관 결손이란 척추에 구멍이 생기면서 그곳으로 척추신경과 다른 조직세포가 삐져나오는 질환이다. 오늘날 신생아 1000명 중 1명꼴로 나타날 정도로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동저자인 야나이 이타이 박사는 “앞으로 실험을 통해 사람한테서 꼬리가 없어진 것이 척추 이분증 같은 선천성 신경관 결손에 기여했다는 이론을 검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DOI: 10.1038/s41586-024-07095-8

On the genetic basis of tail-loss evolution in humans and ape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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