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고전하는 진짜 이유 [박찬수 칼럼]

박찬수 기자 2024. 3. 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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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코앞에 두고 대통령이 지역에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는 게 선거와 관계없을 리 없다. “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대통령으로서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다. 그에 비하면 윤 대통령은 일주일에 두세번 꼴로 여당 득표에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닌 행동을 거리낌 없이 실행하고 있다. 민주당 위기의 본질은 이것과 연결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첨단 신산업으로 우뚝 솟는 대구’를 주제로 한 16번째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수 | 대기자

“대통령님은 언제 오시려나….”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문을 기다리는 어느 지역 신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신문은 “총선을 앞에 둔 선거용 행보라는 비판도 있지만, 지역을 방문하면서 풀어놓는 선물 보따리에 지자체와 도민들의 관심이 많다”고 썼다. 오죽하면 강기정 광주시장이 “영남·충청에서만 할 게 아니라 광주·전남의 어려움도 살펴야 한다”고 공개 초청까지 했을까.

용산 대통령실은 ‘민생을 챙기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건 대통령의 의무다. 선거에 관계없이 총선 이후에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한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대통령이 지역에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는 게 선거와 관계없을 리 없다. 경기 고양에선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의정부에선 수도권 광역교통철도(GTX)를, 부산에선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제정을, 대전에선 충청권 광역급행철도 조기 착공 문제를 언급했다. 지금까지 17차례나 했는데 호남에선 아직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점도 의미심장하다. 선물을 줘도 효과가 없으리란 판단에서일까.

“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대통령으로서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다. 그에 비하면 윤 대통령은 일주일에 두세번 꼴로 여당 득표에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닌 행동을 거리낌 없이 실행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민주당의 갑작스러운 위기의 본질은 이것과 연결돼 있다. 최근 선거 판세가 흔들린다는 얘기가 많다. 공천 논란이 불거지고, 중도층에 소구력 있는 후보를 전략적으로 살려내지 못한 건 이재명 대표로선 할 말이 없는 지점이다. 하지만 공천 논란 자체보다, 이번 총선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과 경제 실정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사실이 가려지는 게 훨씬 뼈아프다.

“이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온 평소의 윤 대통령이라면 영화 ‘건국전쟁’ 흥행에 한마디 보탤 법도 한데, 조용하다. 김건희 여사와 함께 가기로 했던 독일 국빈방문은 취소했고, 대통령실에서 공개해온 김 여사 관련 사진도 요즘은 보기 어렵다. 그 대신에 지역에서 숙원사업 해결을 약속하고 다니니,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분명 도움이 될 터이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경험했던 지난 2년의 정책 난맥과 처참한 경제 성적표를 그런 식으로 지울 수는 없다. 의사 파업에 오직 압수수색과 출국금지로 대응하는 걸 보면, 앞으로 국정운영 방식이 달라지리라 믿을 구석도 없다.

공무원 중 유일하게 당적을 가진 이가 대통령이다. 국정 수행과 정치 활동을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는 이유다. 다만, 야당에도 같은 기회를 주는 게 공정하다. 미국은 대통령이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하면, 그와 똑같은 시간의 라디오 연설 기회를 야당 대표에게 준다. 7일 열리는 조지프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대응해, 공화당에선 케이티 브릿 상원의원이 반대연설을 한다. 윤 대통령이 굳이 평소엔 듣지 않던 현장 목소리를 선거 임박해서 들어야겠다면, 야당 대표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는 게 옳다. 전례도 있다. 2008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이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정을 홍보하자,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야당의 반론권을 요구해 비슷한 분량으로 라디오 연설을 했다. 이런 문제 제기는 지금 공천 논란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4%였다. 석유파동과 외환위기,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곤 가장 낮다. 이 수치는 집권세력이 지난 2년간 국민 삶의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개선을 위해 정치·사회적 역량을 하나로 끌어모으는 데 성공하지 못했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야당이 집권세력보다 이걸 더 잘해낼 수 있으리란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굳이 야당에 표를 던질 이유가 없다.

국회부의장인 중진 의원이 탈당해 상대 당으로 간다고 해서 선거 구도가 움직이진 않는다. 진정 선거판을 흔드는 건, 집권세력의 국정 운영을 도저히 계속 두고 볼 수 없다는 유권자 절망감의 깊이다. 또한 침체한 대한민국의 활력을 어떻게 다시 끌어낼 건지 설득력 있는 대안을 야당이 제시할 수 있는가이다. 한두 사람 공천의 문제보다 이것이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이다.

누군가는 민주당의 공천 파동에 실망하고, 누군가는 그래도 윤석열 정부를 심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갈래갈래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건 결국 국민 삶의 문제다. ‘정권심판론’이란 다른 게 아니다. 잘 짜인 각본의 대통령 토론회에 가려진 경제·민생 현안을 어떻게 제대로 드러내느냐에 민주당 운명은 달려 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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