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돈 주면 정리될 문제?…그 돈조차 바닥나고 없다” [징용해법 1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피고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모금한 돈으로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이 나온 지 6일로 1년이 됐다.
당사자는 빠진 채 피해자 쪽인 한국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셀프 배상안’이 해법이 될 수 있느냐는 비판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는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기금은 고갈돼 가고 있지만 뚜렷한 확보 계획이 없고, 일본 기업의 참여도 전무해 답보 상태다.
외교부 임수석 대변인은 징용해법 발표 1년에 대한 평가를 묻자 “엄중한 국제 정세와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한일 양국 간 신뢰를 회복하고 양국 간 협력을 끌어낸 계기”라며 “합리적 방안”이라고 답했다.
일본 기업 참여가 없다는 지적에는 “해법이 진전을 이루게 될 경우 일본도 이에 호응해 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법이 어떻게 진전을 이룰지, 왜 지금까지는 진전이 없었는지에 대한 답은 생략된 셈이다.
다만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점차 해법을 수용하는 추세라고 보고 있다.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1차 소송’ 당사자 15명 중 정부 해법을 수용한 11명에게 배상금이 지급됐다.
지난해 말부터 나온 ‘2차 소송’ 피해자 측과는 현재 접촉 중이다. 임 대변인은 “최근 대법원 추가 확정판결에서도 피해자와 유가족 다수가 해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징용해법 1년을 맞아 남은 과제와 전망을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와 짚어봤다. 다음은 양 교수와의 일문일답.
-징용해법이 나옴으로써 한·일 관계가 회복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인가.
“(징용해법은) 최근 한·일 관계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매듭을 1차적으로 풀어낸 건 사실이다. 관계 개선의 전환점을 만든 건 분명 평가할 만한 점이다.”
-양국 관계 회복이야 정부 차원의 얘기이고 피해자들이나 국민 입장에선 다른 것 같다.
“사법부의 판단도 있고 피해자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무시한 상태에서 정부가 무리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정치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사무적, 행정적으로 밀어붙였다. ‘돈 주고 정리하면 될 거다’ 정도로. 국내적으로 그렇게 처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나. 20년에 걸쳐서 사법부가 판단해 왔고 피해자들도 그만큼 쌓아온 건데 지금 완전히 일본 정부측 논리에 동조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도 풀 방법이 분명 있었는데 이쪽에서 알아서 다 포기한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정부가 왜 무리해서 밀어붙였다고 보는지.
“정부로서는 이 문제를 후순위에 둔 것이다. 한·미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로 이를 원하는 쪽으로 끌고가려니 징용해법이나 위안부 문제를 일종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이 문제 자체를 독립적인 것으로 풀어야 할 사안으로 보지 않고 종속 변수로 봤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피해자들 직접 만나서 대화도 더 하고 대국민 호소문도 내고 그런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정치화하는 부분도 있을까.
“2016년에 일본 정부가 일본 전범 기업들을 불러서 한국 피해자들에 대해 돈을 내지 마라고 했다. 일본 정부 책임이 크다고 본다. 이건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이 나와서 3년 시효가 2021년에 끝났고, 남은 것은 기껏해야 200건 정도다. 아쉽지만 대부분 다 돌아가시고 그렇다. 일본 기업들이 3번이나 사죄하려고 했고 기회가 있었는데 일 정부가 나서서 가로막고, 우리 정부가 이런 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국민들이 납득하기가 어렵다.”
-제3자 변제라는 게 결국 재단 기금 확보가 관건인데.
“지금 그 돈도 다 바닥났다. 정부 돈을 주는 것도 못하게 돼 있고. 그렇게 무대책인 상태다. 기업들에게 정부가 돈을 받아내는 것도 불법성이 있어 힘들다. 일본 측에서도 돈이 하나도 안 들어왔다. 현재 기금은 포스코에서 100억원 약정액 중에 아직 안 냈던 돈 40억원을 낸 것이 있고, 서울대 동문회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등이 금액을 밝히지 않고 낸 푼돈들 정도다. 이제 새로 판결이 나오면 배상금 줄 돈이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나. 정부가 직접이라도 주는 건가.
“재단에서 정부 자금을 받아서 줄 수는 없게 돼 있는 것으로 안다. 국민 세금으로 제3자 변제를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민사 소송은 기업 돈이 들어가야 되는 것이라 소송이 걸릴 수 있다.
문제는 재단에서 배상금을 주더라도 제3자가 돈을 갚는 것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동의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근데 가해자가 동의를 안 한다. 일본 전범 기업들이 ‘국내에서 한국 돈으로 처리한다’는데도 괜찮다는 허가를 안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계약이 성립이 안 된다.”
-자기 돈 쓰는 것도 아닌데 왜 허가를 안 해주는 건가.
“‘강제’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서 그렇다. 불법이라는 걸 전제하기 때문에 이 말이 들어가는 것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투 트랙’을 갈 수밖에 없다. 일단 제3자 변제안 거부하는 4건, 계속 판결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로 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히타치조선처럼 기업들이 공탁을 하는 방안이 있다. 선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추진해 볼 수 있다. 일본이 또 반발하겠지만 어떻게든 수습되는 수순으로 갈 수 있다.”
-히타치조선에서 6000만원 공탁한 것이 피해자에게 지급되면서 일본 기업 돈을 처음 받아낸 사례가 나온 것의 의미가 있겠다.
“벌금을 낸다는 건 사죄를 하든 안하든 간에 죄책을 인정하는 측면이 있다. 피해자들이 사죄를 못 받아서 화는 나지만 강제로 돈을 그 사람에게 받아낸다는 건 일종의 자기 충족감을 느끼게 한다. 근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번에 기시다 총리가 못 온 이유도 그게 크다고 하고.”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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