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인터뷰] 중거리로 마음 훔치던 권순형, 15년 정든 K리그를 떠나며…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베스트 일레븐=태평로)
또 한 명의 전설. 피치에서 쏘아대는 중거리슛이 유독 멋졌던 권순형. 그가 은퇴한다.
1986년생 권순형은 2010-2020년대를 거닌 K리그 대표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강원 FC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해, 제주 유나이티드와 상주 상무를 거쳤고, 성남 FC를 끝으로 그라운드와 작별하기로 했다. K리그에선 통산 373경기를 소화했다. 그간 쌓아올린 스탯은 21골 29도움. 후방에 머무른 미드필더임에도 골과 도움 생산력이 '특출했다.'
축구계는 이제 '은퇴한 열정부자'를 영입한다. 은퇴는 아쉽지만 권순형은 하고 싶은 일이 무척 많기도 하다. 본인 스스로 열정부자라고 지칭할 정도. 이미 축구교실 개업 준비도 마쳤다. 뿐만 아니라 축구와 관련한 모든 분야에 도전할 계획이다. 축구를 매개로 선한 영향력을 꾸준하게 발산하겠다는 멋진 목표도 세웠다.
권순형이 여러 갈래로 캐릭터를 확장하기 이전 '선수 권순형'을 마지막으로 기록했다. 방출을 두려워했던 젊은 K리거는 끝까지 살아남아 전장을 대표하는 베테랑이 됐다. 그가 15년 동안 아시아 최고의 싸움터인 K리그에서 생존한 비결은 명확했다. 진정성. 축구를 대하는 진정성이었다.
b11: 한가한 겨울이 무척 오랜만일 거 같아요.
"축구를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시작했어요. 그때 이후로는 겨울에 이렇게 한가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매년 동계 훈련에 매진했으니까. 약간 이상해요. 앞으로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까, 그런 생각? 일단 육아부터 열심히 하고 있어요!"
b11: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다니던 초등학교에 갑자기 운명처럼 축구부가 창단됐어요. 저는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 중에서는 잘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축구부에 들어갔어요. 그땐 부모님도 엘리트 축구라는 게 뭔지 모르셨어요. 그냥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라, 이런 마음으로 아들을 시키셨죠. 그런데 여기까지 와 버렸네요."
b11: 프로 커리어를 보면 쭉 한국이네요. 전성기 때는 여기저기 제안도 많았을 거 같은데!
"제안이 왔던 적 있죠. 해외 커리어 미련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하지만 K리그도 정말 수준 높은 리그랍니다. 어려운 곳이에요. 여기서 이렇게 오래 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 감사할 따름입니다."
b11: 첫 팀은 2009년의 강원. 기회 잡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프로의 벽이 높았어요. 전반기에는 아예 못 뛰었습니다. 이을용 선수처럼 수준 높은 형들이 많았거든요. 들어갈 자리가 도무지…. 심리적으로도 어려웠어요. 특히 같이 입단했던 신인 동기들이 다 뛰고 있을 때는 더 조급했죠. 마찬가지로 신인인 저는 2군에서 훈련하며 리저브리그만 뛰었어요. 그러다가 진짜 방출되는 줄 알았어요."
b11: 그때 권순형의 멘탈 관리법은?
"힘들었어요. 안 힘들었다고는 말 못해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버티는 것'이었어요. 훈련하고 버티고, 또 훈련하고 버티고, 그걸 반복했어요. 멘탈이 무너져도 어떻게든 버텨냈어요. 그러다가 한 경기에 나가게 되면 자세가 달라져요. 한 경기를 대하는 자세가요. 허투루 뛸 수가 없었죠. 지금 돌이켜 보면 프로 초창기 때 괴로움을 경험한 게 도움이 컸어요. 경기를 뛰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프로 1년 차 때부터 확실하게 알고 출발했습니다."
b11: 커리어 초반이었던 2012년, 그때부터 출전 경기가 급격하게 늘어났어요. 40경기 뛰었습니다.
"강원에서 제주로 막 이적해왔을 때였어요. 당시 제주를 이끌던 박경훈 감독님께서 중용을 해주셨죠. 송진형 선수와 같이 미드필드를 도맡았는데 합이 잘 맞았어요. 진형이는 7:3 정도로 공격에 무게를 뒀고, 저는 그 반대인 3:7로 움직여 수비에 힘을 실었어요. 조합이 참 좋았어요. 그때 플레이 스타일이요? 활동량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b11: 커리어의 프라임 시간대! 2016년부터 2018년까지의 제주 권순형은 어마어마했어요. 특히 2016년 K리그1 37경기 5골 8도움은 지금 봐도 놀랍습니다.
"상주 시절에 교육을 받았던 게 제대 후 퍼포먼스에 좋은 영향을 미쳤던 거 같아요. 박항서 감독님이 상주 지휘봉을 잡을 때였는데, 늘 공격을 많이 해라, 슛을 많이 때려라 오더를 주셨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많이 때렸어요. 2016년의 제주는 공격 전술이 탄탄했어요. 치고받는 과정이 많은 역동성 넘치는 축구였죠. 덕분에 제가 공격포인트를 작성할 기회가 많았어요. 세트피스를 전담으로 찼고, 후방 미드필더임에도 아예 위로 진출하는 상황도 잦았고요. 맞다, 아쉬운 일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b11: 그렇게 잘했는데도 그 무렵에 아쉬운 게 있었어요?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그맘때 K리그1 시상식에서 기대를 좀 했어요. 그런데 경쟁자가 하필 권창훈 선수와 이재성 선수였답니다…."
b11: 그래도 권순형의 기세가 쉽게 꺾이진 않았습니다. 2016년 공격포인트는 13개, 2017년도 9개, 2018년도 8개.
"절박한 시기였어요. 제대 이후 프로에서 없어지느냐, 살아남느냐 이때였거든요. 제대하기 몇 달 전에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절실함 덕분에 퍼포먼스도 좋았던 거 같아요. 그 마음이 경기장에서 나왔어요. 그리고 제주를 이끌던 조성환 감독님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조성환 감독님이 중용을 해주신 덕택에 잘 됐어요."
b11: 프라임타임을 보낸 제주 이후엔 성남 유니폼을 입었어요.
"2019시즌 마치고 성남의 김남일 감독님이 불러주셨어요. 아무래도 조금은 열악한 상황이었죠. 팀이 하위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끈끈한 맛이 느껴졌어요. 선수단 전체가 뭉친 기억이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 있습니다. 분명 쉽진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클럽이 외풍에도 시달렸잖아요. 그런 와중에도 어려움을 함께 겪고 헤쳐 나가며 정이 들었어요. 팬들과도 무척 끈끈했습니다."
b11: 커리어 최고의 골도 하나 꼽아볼 수 있을까요?
"FC 서울 원정 경기에서 터뜨린 중거리골! 이게 4-3으로 역전하는 게임에서 결승골이었어요. 제주가 서울을 잘 이기지 못했는데, 이겼던 경기라 더 특별해요."
b11: 프로 커리어 15년을 뒤로 하고 어렵게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배경을 여쭤보고 싶어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성남에서는 감사하게도 코치 제안을 주셨고, 몇몇 K리그 클럽에서는 실제로 관심도 보였어요. 다만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내 커리어에서 또 다른 팀을 남기는 게 맞을까? 성남에서 현역으로 뛰는 게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을 거 같다고 판단했어요."
b11: 은퇴를 결심하고 가족에게 전달한 순간은.
"제가 동계 전지훈련을 안 가니까 가족들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을 거예요. 최근에 와이프에게도 장난으로 '이젠 그만해야지~'라고 말을 종종 했거든요. 결심을 하고서는 인스타그램에 먼저 글을 올렸어요. 그리고 와이프에게 '나 이제 은퇴 선언했어'라고 말했어요. 와이프가 그걸 보더니 화장대에 앉아 로션을 바르다가 울더라고요. 저와 같은 감정이었던 듯해요. 같이 오랜 시간 동안 고생했으니까. 제가 어떻게 축구를 대하는지 잘 지켜봤으니까."
b11: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최근에 연탄봉사도 다녀왔더라고요. 벌써부터 선한 영향력이 '뿜뿜.'
"그거 아세요? 연탄이 생각보다 무거워요. 늘 스케줄이 안 맞았는데, 이제 제가 시간이 남잖아요. 그래서 다녀오게 됐어요. 또 다른 봉사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소외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축구 아카데미를 열기. 영리 활동도 좋지만, 비영리 활동도 꾸준하게 해보고 싶습니다. 연탄 봉사를 마친 후엔 어르신들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게 참 뿌듯하더라고요."
b11: 은퇴 축구선수들에겐 여러 가지 진로가 있습니다. 요새는 갈래가 더 다양해졌어요.
"일단 판교에 제 이름을 딴 축구 아카데미를 열어요. 3월에 시작합니다. 지도자에 대한 꿈도 가지고 있어요. 제가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게 약간의 한(?)인데, 지도자로 국가대표 선수를 한번 길러보고 싶어요. 아, 기회가 되면 해설이나 행정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열정 부자예요. 모든 방면에 대한 가능성을 다 열어뒀어요. 은퇴 이후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니까 다 해보고 싶어요."
b11: 축구 아카데미 권순형 풋볼랩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운영하나요?
"축구를 취미로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운동을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저도 딸을 키우는 입장인데, 요즘 아이들이 뛰어노는 시간이 워낙 부족해요. 그래서 권순형 풋볼랩에서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정말 즐거웠으면 해요. 물론 체계적으로도! 엘리트 선수들도 돕고 싶어요. 제 선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조언자가 꼭 필요했던 거 같아요. 개인 훈련을 할 공간도 필요했고요. 그런 니즈를 제가 해결해주고 싶습니다. 프로를 꿈꾸는 엘리트 유소년 선수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멘토가 돼보려고 해요.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사람이니 도움이 될 지점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b11: 권순형 커리어에서 볼을 가장 잘 차던 K리거는?
"일단 생각이 나는 건 2008년에 올림픽대표팀 소집됐을 때. 그때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진짜 말이 안 되게 잘하는 선수가 한 명있었어요. 이청용. 청용이 같은 캐릭터는 아직도 못 본 거 같아요. 진짜 번뜩여요. 프로 사이에서도 몇 수는 더 높다고 보면 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민첩성과 지능이 압도적입니다. 프로 선수들끼리는 경기장 안에서 끊임없이 심리전이 펼쳐져요. 이쪽으로 줄까, 돌아서 줄까, 템포를 늦춰볼까, 그런 전투가 계속 이뤄지는데 그때마다 청용이의 수가 아주 높아요."
b11: 최근에 이청용 선수에게 같은 질문을 드려본 적이 있는데, 이청용 선수는 박주영 선수를 꼽더라고요.
"맞네. 그렇죠. 주영이 형이 있었네요. 저도 주영이 형으로 바꿔야 할 거 같아요(청용아 미안해). 주영이 형은 약간 '넘사벽' 같은 느낌이라서 제가 아예 생각도 못했네요. 그 형은 타고 났어요. 빠르고, 탄력 좋고, 골 잘 넣고, 볼 잘 차고, 드리블 훌륭하고, 슛까지 날카롭고. 축구 지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겁니다."
b11: 은퇴하는 시점에서 바라보는 요즈음 K리그는 어떤 거 같아요?
"뭐랄까, 슈퍼스타가 없는 느낌? 예전이면 박주영·기성용·이청용 같은 특별한 선수들이 많았잖아요. 요즘은 스타의 숫자가 부족한 거 같아요."
b11: 권순형이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축구를 좋아했고, 사랑했어요. 그 사랑하는 걸 어떻게 하면 더 오래할 수 있을지, 그것만 고민하며 살았어요. 덕분에 여태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전 특별한 선수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축구를 대하는 진심만큼은 특별했다고 생각해요. 미련이 아예 없진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니까요. K리그에서 다시 못한다고 생각하니 그게 참 아쉽습니다. 그리울 거예요."
글=조남기 기자(jonamu@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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