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칩 시장이 던지는 4가지 화두 [조원경의 경제·산업 답사기]
인공지능(AI)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엔비디아는 비디오 게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제공하는 유망한 회사에서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 센터에 GPU를 공급하는 글로벌 공룡기업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엔비디아가 오는 3월 18일부터 21일까지 미국 산호세이 컨벤션센터에서 AI 콘퍼런스 ‘GTC(GPU Technology Conference) 2024’를 개최한다. 엔비디아의 치솟는 시장 지배력에는 잠재적인 위협이 물론 존재한다. 미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칩 수출 제한, AMD와 인텔의 도전, 중국 칩 설계자들의 잠재적인 부상 등이다. 엔비디아가 대만 칩 파운드리 TSMC 설계 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부각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칩스 법(CHIPS Act)을 통해 자국 반도체 칩 제조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인텔로 대변되는 미국 파운드리가 완전히 가동되기까지는 적어도 10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생성 AI 칩 시장의 80%이상을 독점해온 엔비디아(H100, A100 등)는 지난해 4분기 매출 221억 달러, 영업이익 136억 달러의 놀라운 실적을 발표해 미국 시가총액 3위 기업이 됐다. 최근 화제인 AI 칩의 현황과 미래를 엔비디아와 연결해 살펴보기로 한다.
그린 칩 리더십-범용 AI 칩에서 맞춤형 AI 칩으로 초점 확대
AI 서비스의 품질은 데이터 연산 처리 성능에 좌우된다. 연산처리 성능은 AI칩이 좌우한다. 흔히 AI 칩이라고 하면 AI가속기(Accelerator)를 말하며 다음과 같은 구분이 가능하다.
AI칩은 자연어처리, 로보틱스, 컴퓨터 비전, 네트워크 보안 등을 위해 사용한다. 이중 AI 칩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GPU는 대량의 전력 소모와 발열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높은 연산 성능을 제공하면서 전력 소비량이 적은 기술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 프로그래밍 가능한 반도체)와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 주문형 반도체)가 주목받고 있다.
통계자료 사이트 스태티스타(statista)의 AI칩 시장 전망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AI 칩 시장 규모는 약535억 달러에 달했다. 일상생활로 확산한 AI 열풍으로 이 수치는 2027년에는 12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엔비디아의 AI용 GPU 독점이 공고해지자 직접 만들어 쓰자는 움직임이 가시화됐다. 이 상황에서 엔비디아의 행보가 달라졌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300억 달러(약 40조원) 규모 맞춤형 AI 칩 시장 공략에 나섰다. 엔비디아는 첨단 AI 프로세서를 포함해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대상 맞춤형 칩 설계에 초점을 둔 새로운 사업부 구축으로 이를 실현하려고 한다. 엔비디아는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오픈AI와 맞춤형 칩 제작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지금은 엔비디아의 H100, A100 칩이 범용 다목적 AI 프로세서로 사용되고 있지만 비싸고 전력을 다량 소비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맞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제 브로드컴, 마벨 테크놀로지 등이 제공 중인 데이터 센터용 맞춤형 AI 칩 개발에 뛰어들어 성장을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데이터 센터 칩 외에도 5G 무선 통신, 자동차, 비디오 게임 등에서 맞춤형 AI 칩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러한 시장의 요구는 전기 먹는 하마인 AI 가동에서 전력 소비를 줄이자는 그린 리더십에 부응한 것이다.
투자은행 니덤(Needham) 자료를 분석해 보면, 전 세계 맞춤형 AI 시장 규모는 2023년에 약 300억 달러 규모이다. 이는 연간 글로벌 칩 판매량의 약 5%에 해당한다. 이중 데이터 센터 맞춤형 AI 칩 시장은 올해 최대 100억 달러로 성장하고, 2025년에는 두 배로 성장할 전망이다. 저 전력 맞춤형 AI칩이 앞으로 화두로 계속 떠오를 것이다.
샘 올트먼의 반도체 제국-엔비디아의 항로에 영향 줄까?
챗GPT로 AI 반도체 열풍을 일으킨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글로벌 투자자와 기업을 한데 모아 AI 제국을 건설하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한다. 엔비디아의 GPU 구입에 어마어마한 돈을 썼으니 그런 생각을 가질 만하다. 올트먼은 엔비디아와 AMD 등 극소수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AI 반도체 시장의 구도를 바꾸겠다는 생각이다. 그 규모가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15배나 되는 7조달러(약 9300조원)이니 이게 성사될까 싶기는 하다. 이 돈의 규모는 글로벌 기업 가치 1, 2위 기업인 MS와 애플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은 5270억 달러(약 701조 원) 수준이고 2030년이 되어야 1조달러 정도인데 투자 규모가 지나치다는 평이 나온다. 심화하는 반도체 자국 우선주의와 각종 규제를 뛰어넘어 AI라는 공통 목적을 향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올트먼의 구상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가장 앞선 AI 소프트웨어 역량을 보유한 오픈AI가 자사 서비스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AI 칩 생산 능력까지 갖추면 ‘일반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모든 곳에 두루 쓰이는 범용 AI)’의 등장이 앞당겨질 수 있다. 그의 구상을 실현하려면 대만 TSMC와 우리나라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AI 칩 수요가 단기간에 급증하다 보니 엔비디아의 GPU 물량 공급 능력이 이를 따라잡지 못해 고객사가 제품을 주문한 뒤 받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나서서 공정한 물량 배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까지 한다. 이 상황이 못마땅한 올트먼은 AGI 구현을 위해서도 GPU 연산능력의 한계를 지적했다.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 정부가 동아시아와 중동 돈까지 끌어들이려는 올트먼의 구상을 허가해 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엔비디아는 올트만 견제에 즉시 나섰다. 젠슨 황 CEO는 2024 세계정부정상회의(WGS) 대담 프로그램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컴퓨터가 더 빨라지고 있어 필요한 컴퓨터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으로 추측해야 한다.더 빠르게 제조하는 칩 산업 덕분에 AI 비용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자신한다.”
엔비디아 인공지능 GPU는 3만5000여종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어 공급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엔비디아는 반도체 웨이퍼와 패키징, 메모리반도체와 전력장치 등 부품 공급망을 잘 구축해 공급부족 상황에 잘 대응하려 한다.
스타트업 ‘피규어 AI’(Figure AI) 투자-엔비디아의 로봇 꿈은 이뤄질까?
AI 칩은 다양한 기계 학습과 컴퓨터 비전 작업에서 유용하다. 그 결과 모든 종류의 로봇이 자신의 환경을 잘 인식하고 제대로 반응하게 한다. 이는 농작물을 수확하는 코봇(cobot)에서부터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르기까지 로봇 공학의 모든 영역에 걸쳐 도움이 된다. 올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1억 달러), 엔비디아(5000만달러), MS(9500만 달러)와 챗GPT 개발사 오픈AI(5000만 달러))가 스타트업 ‘피규어 AI(Figure AI)’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세상을 달구었다. 피규어 AI는 2022년 테슬라와 로봇 전문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 출신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회사다. 피규어 AI는 당초 5억 달러의 투자금을 모을 계획이었으나, 이보다 많은 6억7500만 달러 조달을 이끌었다. 인텔(2500만 달러), LG 이노텍(850만 달러)과 삼성 투자(500만 달러)도 상당한 자금을 약속했다. 피규어 AI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통해 인간이 하지 못하는 위험한 일을 수행하고 부족한 노동력 문제를 해소하려 한다. AI 기술에 대한 열풍이 불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대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 한가운데 AI 칩이 제대로 역할을 하며 엔비디아가 달리고 있다. 지난해 엔비디아는 로봇을 훈련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자동생성하는 AI 에이전트 ‘유레카(Eureka)’를 공개했다. 엔비디아의 AI 칩에 따른 자연어 처리(NLP)와 강화 학습을 결합해 유레카가 사람 개입 없이도 시행착오로 학습을 수월하게 하려고 하는 게 핵심이다.
소라(Sora : 하늘)-엔비디아의 칩만으로는 안 돼?
오픈 AI가 지난달 새로운 동영상 생성 플랫폼 ‘소라(Sora, 하늘)’를 공개했다. 소라는 사용자가 플랫폼에 문자 형식으로 생성하고자 하는 텍스트로 된 명령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상당한 길이의 초현실적인 고화질 동영상을 창출하는 프로그램이다. 소라가 공개되자 영상의 뛰어난 퀄리티로 관련 업계는 물론 영상 제작자들까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반응이 돌았다. 지난달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열린 인텔 파운드리 행사에 참가한 올트먼과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오픈 AI를 비롯한 인공지능 플랫폼은 다량의 데이터 분석과 산출을 위해서 현재 보다 훨씬 많은 고성능 첨단 AI 칩 공급이 절실하다는데 동의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엔비디어에 밀려 고전 중인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기업 인텔을 비롯한 글로벌 칩 제조업체들 주도의 ‘실리코노미(Siliconomy, 반도체 칩 기술이 이끄는 혁신 경제)’의 부흥 가능성과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세상은 엔비디아의 독점력을 위협적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전용 AI 칩 개발은 성장가도를 달릴 것이고 불가피해 보인다. 그 방향은 에너지 효율성 향상, 응용 분야에 적합한 칩 개발, 다른 기술과 융합할 수 있는 AI 칩이 목표일 것이다. 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자율주행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다. 차세대 AI 칩은 결국 인간 두뇌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하도록 설계될 것이다. 기존의 AI 칩의 경우 데이터를 통한 학습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앞으로의 AI 칩은 실시간으로 학습해 AI 네트워크의 재학습을 지원할 것이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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