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시즌 개막, 주주환원·밸류업 바람 속 '창과 방패' 대결 주목
행동주의펀드, 정부 주가 부양책에 활동 강화 명분 생겨
기업, 선제적 배당·자사주 소각 발표 대응도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주주총회(주총) 시즌이 개막한 가운데 행동주의펀드와 기업이 주주환원과 기업 밸류업 바람을 타고 역대급 '창과 방패' 대결을 예고하고 있어 주목받는다. 행동주의펀드는 사측에 자사주 추가 매입이나 완전 소각 등을, 기업은 행동주의펀드의 요구가 과도하다는 호소와 선제적 주주환원책 공개 등을 통해 주주들의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정기 주주총회소집공고를 공시한 기업 중 삼성물산, 금호석유화학, 삼양패키징 등이 이번 주총을 통해 행동주의펀드와 맞대결을 벌일 전망이다.
먼저 삼성물산은 앞서 1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과 보통주 주당 2550원, 우선주 주당 2600원의 배당과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영국계 행동주의펀드인 시티오브런던과 국내 행동주의펀드 안다자산운용 등이 포함된 5개 사의 압박을 받고 있어 이번 주총을 통해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규모를 늘리게 될지 관심을 끈다.
시티오브런던 등은 삼성물산에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추가로 매입하고 보통주 주당 4500원, 우선주 주당 4550원의 배당안 결의를 요구했다. 여기에 행동주의펀드인 팰리서캐피탈이 삼성물산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찬성한다고 5일 밝히면서 행동주의펀드의 창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팰리서캐피탈 측은 "삼성물산 주식은 내재 가치에 비해 과도하며 용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저평가된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주주 환원을 개선할 수 있는 설득력 있고 투명한 사업 계획이 부재한 상태"라며 "주주제안은 삼성물산의 내재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존의 권고안에 부합하고 회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금호석유화학 주총도 관심사다. 최대주주이지만 경영권에서는 밀려난 박철완 전 상무와 손을 잡고 강력한 행동주의펀드 활동을 예고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달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금호석유화학 자사주 전량 소각 등을 주주들에게 어필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 측은 "금호석유화학 주가는 지난 1월 말 기준 지난 3년 고점 대비 약 58% 하락했다. 저평가의 가장 큰 원인은 대규모 미소각 자사주"라며 "자사주 소각은 주주가치 제고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금호석유화학의 지속적인 발전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감시와 견제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행동주의펀드의 압박을 선제적으로 수용한 기업도 있다. 삼양패키징은 보통주 1주당 500원 현금배당을 결정하면서 79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삼양패키징에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을 꾸준히 요청해 온 행동주의펀드 VIP자산운용 측도 "현금 배당을 잘하는 기업이지만, 주가 부양에 보다 효과가 큰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배당 대신 권했는데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자평했다.
창사 이래 첫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SK이노베이션 주총도 눈길을 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지난달 이사회를 열고 8000억원에 육박하는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공시하면서 주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의 실적 우려와 연이은 투자 확대로 주가가 급락하자 선제적으로 자사주 소각을 공시해 주주들의 마음 달래기에 나선 모양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배당 가능 이익 범위 내에서 최대 수준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올해 들어 고점 대비 크게 내린 게임사인 NHN과 네오위즈도 창사 이래 첫 현금배당을 실시하고, 사법리스크와 문어발식 상장으로 주주들의 비판을 받던 카카오도 자사주 소각과 배당을 결정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향후 해마다 보통주 1500만주, 2우선주(미래에셋증권2우B) 100만주 이상을 소각하고 898억원 규모의 배당금 지급도 하겠다면서 주주들에게 어필했고, HD현대건설기계도 출범 이후 처음으로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행동주의펀드와 기업들의 주주환원책이 이번 주총에서 활발한 배경으로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을 내놓으면서 각자 명분이 강화된 이유로 보고 있다. 다만 기업들의 주주환원책이 주가에 선제적으로 반영되면서 단기간에 크게 오른 만큼 신중한 투자도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3월은 정부 정책 기조에 행동주의펀드의 입김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역대급 주주환원'이 검토될 예정이다. 대기업과 금융권 등에서 중장기적인 주주환원을 공개해 주가도 끌어올린 모습이다"라면서도 "다만 그간 상승 폭이 큰 만큼 실망 매물 출회는 불가피해 보인다. 주총에서 맞대결을 예고하고 있는 곳도 있고, 주총 이후 분기 배당 기준일이 공시된 기업도 있는 만큼 관련 비중을 서둘러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2ku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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