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HD현대가 '구축함' 놓고 전쟁하면 돈버는 곳은?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바다를 지킬 수 있었던 출발점은 1975년 5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독자적인 한국형 구축함 건조를 지시한 때부터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중국·일본·러시아 등 열강과 바다를 맞댄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선 자주국방을 통한 해군력 강화가 필수였고, 그 핵심키가 먼 바다에 나가서 싸울 수 있는 구축함(Destroyer)의 건조였다. 해양강국의 희망을 품고 '구축함 건조'라는 숙제가 던져졌지만, 그보다 작은 초계함이나 호위함조차도 쉽지 않았다.
갖은 제약과 고난의 길이 있었다. 우리 손으로 전투함을 처음 만든 건 그로부터 5년후다. 1980년 현대중공업이 최초의 한국형 전투함으로 1500톤 울산급 호위함(FF-951)을 건조했다. 뒤이어 1982년 배수량 890톤의 첫 동해급 초계함(PCC-751, 대한조선공사)이 취역했다.
한국형 구축함(Korean Destroyer) 시리즈의 첫번째인 KD-1(배수량 3200톤급) 광개토대왕함(DDH-971, 대우조선해양, 3척)이 진수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구축함 국산화를 언급한 지 20년도 더 지난 1996년 10월의 일이다. 뒤이어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4400톤, KD-2, 6척), 세종대왕급구축함(7650톤, KD-3, 3척)으로 해군력 강화는 이어져 우리 해군은 총 12척의 구축함을 보유하게 됐다.
이런 결실은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민과 군이 협력한 결과다. 초기 전투함 개발은 국영기업인 대한조선공사(현 HJ중공업)와 코리아타코마(현 HJ중공업),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 등이 힘을 합쳐 일궈낸 성과다.
세종대왕급 후속버전으로 배수량 8100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6척(개발비까지 포함해 7조 8000억원)이 다음 목표다. KDDX는 선체 뿐만 아니라 전투체계, 다기능 레이더를 비롯해 각종 무장까지 모두 우리 기술로 건조되는 첫 구축함이다. 그만큼 자주국방의 상징성이 크다.
이를 두고 최근 재계 7위 한화와 9위 HD현대의 전투가 한창이다. 다툼의 원인은 현대중공업이 제공했다. 이 회사 직원들이 2012~2015년 방위사업청과 해군본부 등을 여러차례 방문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만든 KDDX 개념설계 보고서를 빼돌린데서 출발한다. 군사기밀을 빼돌리고, 이를 비인가 서버에 올리는 방식으로 유출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이로 인해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과 방위사업청 군인 등이 기소돼 지난해 유죄가 확정됐다. 회사는 그 대가로 2025년 말까지 모든 군함 입찰에서 보안사고 패널티(1.8점 감점)을 받아 사실상 입찰에 참가해도 낙찰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이 됐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은 군사기밀 유출에 HD현대 임원들이 개입한 정황이 있어 아예 차기 구축함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경찰에 고발장을 접수해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입찰 자격을 부여하는 방사청이 HD현대에 보안사고 패널티만 주고, 입찰 자격을 유지한데에는 적잖은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위산업은 한 기업의 성과물이라기보다는 국가 전체 산업의 총결집체로 어느 특정 기업이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HD현대와 한화오션의 양강 체제인 차기구축함 사업에서 HD현대가 입찰에서 배제될 경우 독점에 빠질 공산이 크다.
'처벌 제척기간이 남았느니', '청렴서약 대상 임원이 누구냐' 등 법리와 논리를 따지면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정의가 존재한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고, 이는 결국 지리한 소송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법정으로 가기 전에 기업간 협의와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군사기밀의 해외유출은 간첩죄로 처벌해야 하지만, 국내 기업간 다툼에서는 '과잉금지의 원칙'이 지켜지는 게 필요하다. 상대가 사업을 할 수 없도록 기회를 막게 되면 결국 그 부메랑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국내 기업들이 기술유출이나 인력유출 문제로 서로 갈등을 빚을 때 결국 이득을 보는 곳은 해외경쟁자이거나 변호사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장기간의 소송전은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결코 기업 서로에게 이로울 게 없다. 기업의 실무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소송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타협점은 더 높은 곳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현재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김승연 한화 회장과 정몽준 HD현대 대주주는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이고, 이들의 뒤를 이은 김동관 부회장과 정기선 부회장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국가적 사업에서 대승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소송이 능사는 아니다. 방위산업은 단순한 이권사업의 범위를 넘은 국가적 사업이다. 국내에서 다투기보다는 협력해 해외시장을 넓히는 게 국익이다. K방위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어떤 길인지 고민해볼 때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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