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유적·유물은 여행객에 묻는다…‘어떻게 살 것이냐’고
내세의 부활·영생 간절한 염원, 믿음···미라와 무덤·신전·미술품에 생생
‘사자의 서’에 담긴 고대 내세관···시공 초월해 삶과 죽음의 성찰 유도 下>
‘세상 어느 곳보다 놀라운 것이 많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미 2000여년 전에 이집트를 여행하고 이렇게 기록했다. 이집트 문명은 먼 옛날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인들이 줄지어 찾고, 한번쯤 꿈꾸는 여행지이다. 3000여 년이나 지속된 유구한 역사, 찬란한 문화유적·유물, 아직도 규명되지 않는 신비로움 등 그 이유는 여러가지다.
여기에 인간이라면 피할 수없는 삶과 죽음을 둘러싼 실존적 물음을 던지는 것도 매력적이다. 고대 이집트 유적·유물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이른바 ‘빅 퀘스천’을 안긴다. 여행객들에게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하는 것이다.
람세스 2세나 투탕카멘·하트셉수트 등 3000여년 전 파라오들의 미라를 보면 죽음, 그리고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없다. 우뚝선 쿠푸피라미드와 허물어져 돌무더기가 된 우나스 피라미드, 채색벽화가 돋보여 ‘아름다운 무덤’으로 불리는 세티 1세, 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 속 널방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룩소르와 아스완·에드푸·에스나·덴데라·아비도스 등 곳곳에 많은 신전들이 남아 있다. 부러진 돌기둥, 무너져 내린 천장을 대신하는 푸른 하늘을 접하면 신과 인간,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밖에 없다. 고대 이집트 유적·유물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향한 당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 내세에의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믿음이 아로새겨져 있어서다.
‘한국이집트학연구소 곽민수 소장과 함께 하는 2024 이집트 문명 탐사’(이티원(ET1) 주관·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후원) 2차 여행은 나일강을 따라 무덤, 신전, 박물관 등 30여 곳을 답사했다. 유적·유물들에 녹아 있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관,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생각을 살피고 느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와 그 곳에서의 부활, 영생을 믿었다. 이 내세관의 뿌리에는 신화가 있다. 고대 이집트는 지역·시대에 따라 여러 신들이 숭배되고, 다른 신화들이 존재했다. 고대 사회가 그렇듯 신들의 족보, 신화 내용은 얽히고설켜 복잡하다. 고왕국(기원전 2600~2100년경), 중왕국(기원전 2055~1600년경)을 거쳐 신왕국(기원전 1500~1069년경)시대가 되면 비로소 일부가 통합·정리된다.
신화들 가운데 오시리스·이시스 이야기는 내세관의 뿌리라 할 수있다. 지역·시대에 따라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태초의 창조신 ‘아툼’(또는 태양신 ‘라’)이 나온다. 아툼은 ‘공기’ ‘습기’의 신을 낳고, ‘공기’ ‘습기’의 신은 ‘땅’ ‘하늘’의 신을 낳고, ‘땅’ ‘하늘’의 신은 아들 오시리스·세트, 딸 이시스·네프티스를 낳는다.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부부가 돼 이상적인 이집트를 이끌어 가는 왕·왕비다.
하지만 세트가 형을 죽이고 왕권을 차지한다. 이시스는 갖은 고생 끝에 네프티스, 신들의 도움으로 오시리스를 되살려 낸다. 그리고 아들 호루스를 잉태한다. 호루스는 성장해 세트와의 대결을 통해 복수에 성공하고 결국 왕이 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에서 되살아난 오시리스를 부활과 생명의 상징으로 여겼다.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신이자 부활의 심판관으로 숭배했다. 이시스는 부활을 이끈 헌신적인 아내이자 어머니의 상징으로 최고의 여신이 됐다. 호루스는 이집트를 수호하고 파라오·왕권을 상징하는 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무덤·신전·미술품들에는 이들이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얼굴·몸의 일부가 재생·생명을 뜻하는 초록색으로 표현되고 2개의 깃털이 달린 왕관을 쓰고 갈고리 모양 지팡이와 도리깨를 든 모습이 오시리스다. 이시스는 왕좌 모양의 머리 장식, 호루스는 매의 얼굴에 상·하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는 이중 왕관을 쓴 모습이다.
태양신 ‘라(레)’도 신화들 속에서 핵심적 신이다. 창조신이자 이집트·파라오 보호와 왕권을 상징한다. 다양한 모습과 이름의 ‘라’는 배를 타고 태양이 뜬 낮에는 이승세계(하늘)를, 해가 진 밤에는 저승세계(지하)를 오간다. 오시리스가 저승세계, 호루스가 현세의 이집트를 관장한다면 ‘라’는 매일 지고 또 떠오르는 태양처럼 끝없는 순환과 재생을 통해 이승과 저승을 연결시키는 셈이다. 태양같은 원반 머리장식 등 여러 모습의 ‘라’는 그 특성상 파라오들이 스스로를 ‘라의 아들’로 표현했고, 호루스·아문(아멘·암몬) 등 다른 신들과 융합되기도 했다.
무덤·신전의 벽화·부조, 유물에서 만날 수있는 신은 50여명에 이른다. 사랑과 미·행복 등을 상징하는 신으로 암소뿔 사이에 원반이 있는 머리장식의 하토르, 죽은 자를 인도하는 이집트 늑대(또는 자칼) 머리의 아누비스, 따오기 머리를 한 지식·기록의 신 토트, 깃텃을 꽂은 머리장식이거나 커다란 새의 날개를 양손에 편 모습 등으로 나타나는 진실과 정의·질서의 신 마아트, 나일강의 신으로 숫양 머리를 한 크눔, 고대 도시 멤피스의 최고 창조신 프타 등도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으면 저절로 내세로 가 부활과 영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여러 절차와 심판을 통과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승에서의 삶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고민했고, 부활을 위한 특별한 장례문화를 만들었다.
미라도 그 중의 하나다. 내세에서의 부활과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생전처럼 하기위해서는 망자의 몸이 보존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라가 그 방법이었다. 전문가들이 나서 주검에서 장기들을 분리하고 물기를 모두 빼낸뒤 아마천으로 꽁꽁 싸매는 등의 미라 작업과정은 까다롭다. 길게는 70일 정도 걸리기도 했다. 미라 작업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는 이집트문명박물관의 미라 특별실, 룩소르박물관 등 곳곳에서 만나는 미라들에서 확인된다.
망자의 몸인 미라를 보호하기 위해 미라를 담는 관도 여러 개 만들었다. 또 부활과 영생을 기원하는 주문을 쓴 문서를 미라에 넣거나 관 안팎에 새겼다. 생전의 삶이 가능토록 갖가지 껴묻거리들도 매장했다. 무덤도 견고하게 만들어 내부 벽·기둥에 영생을 기원하는 주문들, 신을 향한 경배 내용의 벽화·부조들이 장식됐다. 물론 미라·관·무덤·껴묻거리 등 장례 전반은 신분·재력 등에 따라 여러 방식·수준으로 진행됐다.
사람만이 아니라 고양이·개·따오기 등 여러 동물의 미라와 관, 무덤도 만들었다. 야생동물이든 가축이든 동물도 사람과 함께 창조됐다고 믿었다. 사람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각 동물들의 특성에서 찾아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황소 미라들의 무덤인 카이로 인근 사카라의 ‘세라피움’ 유적은 거대한 규모로 답사객들을 놀래킨다.
아스완과 룩소르 사이의 고대 유적지 콤옴보의 ‘소베크·호루스 신전’ 옆에는 악어 미라 전시관이 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한 악어 미라들이 답사객을 맞는다. 곽민수 소장은 “흔히 고대 이집트인들이 동물 숭배를 했다고 표현하는데, 동물 숭배라기 보다는 특정 동물을 특정 신의 화신으로 여긴 것이라 통상적 동물숭배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부활·영생의 간절한 염원과 믿음은 미술과 건축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다. 신이나 사람의 독특한 인물 표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눈과 가슴·몸통은 정면 모습을 그렸는데, 얼굴과 팔·다리·발은 측면 모습이다. 신체 각 부분을 해체해 다른 시점에서 묘사한 뒤 재조합한 셈이다. 아름다움을 창조하겠다기 보다는 인물의 근본적인 특징, 본질이 잘 드러나도록 표현하는 것이다. 인물의 크기나 위치 등으로 신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술품 중에는 특히 인물 조각상이 많이 전해진다. 인물상은 지배자 권위의 표상이면서, 무덤 속에 부장한 조각상은 미라 같은 상징성도 있다. 입상의 경우 남성은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걷는 모습, 여성은 모은 발과 날씬한 허리·풍만한 가슴이 강조됐다. 좌상은 곧추세운 등, 단정한 다리, 무릎 위에 올려놓거나 상징물을 움켜쥔 손 등이 특징이다.
재료는 무덤이나 신전처럼 주로 돌이다. 쉽게 변하거나 훼손되지 않고 영원성을 상징하는 석재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특히 조각상의 팔과 몸통, 다리 사이 등은 파내지 않고 그대로 두거나, 뒷편에 지지대까지 만든 경우도 많다. 더 견고하고 굳건한 모습이 영원하기를 강조한 때문으로 보인다.
신전들도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관, 정신세계의 시각적·건축적 구현물이다. 신전은 입구의 탑문부터 내부의 가장 안쪽 신상이 모셔진 성소까지 이르는 동선을 중심으로 구축됐다. 중심 동선을 축으로 수평·수직적으로 크기·높이 등 다양한 건축적 공간 구성과 배치, 기둥과 천장 장식 등이 이뤄졌다. 여기에 빛과 동선의 높낮이 등까지 활용했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고, 부활과 영생을 기원하는 신성한 공간이기에 여러 건축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이런 효과는 이후 그리스·로마 건축은 물론 다신교적 신전들, 여러 종교 건축물에도 활용된다. 기독교 성당 등 종교 건축물은 건축적·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대표적 사례다.
신전은 또한 신의 아들을 자처한 파라오의 왕권·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신왕국시대에는 신격화된 파라오의 장례·제사를 치르는 장례공간과 신전이 결합한 장례신전(장제전)까지 조성된다. 신전과 장례신전에는 파라오의 업적을 자세하게 기록했고, 신들과 함께 거대한 파라오 석상들이 내부에 세워졌다.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 대신전, 인류 건축사의 기념비로 평가받는 하트셉수트 장례신전(데이르 엘 바흐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유적은 인간을 넘어 신이 되고자 한 이들의 끝없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관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흥미로우며 현재적 의미까지도 큰 부분이 있다. 바로 심장 무게 달기라는 심판 과정이다. 죽은 자가 부활과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심장 무게 달기 외에도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중에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았다’ ‘훔치지 않았다’ ‘신 봉헌물에 손대지 않았다’ 등을 밝히는 고백도 있다. 자신이 생전에 착하고 정의롭고 진실되게 살았음을 신들 앞에 드러내는 것이다.
여러 과정 중에서 심장 무게 달기 심판이 중요한 것은 망자가 내세에서의 영생을 누리느냐, 아니면 영원히 소멸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심장 무게 달기 심판은 신왕국시대에 제작·성행한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 잘 담겨 있다.
사후세계의 안내서이자 망자를 위한 주문 모음집이라 할 ‘사자의 서’는 내세에 관한 갖가지 내용과 망자의 부활·영생을 위한 주문, 신을 위한 찬가 등이 상형문자·그림으로 기록됐다. 람세스 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신왕국시대 무덤의 상형문자와 벽화·부조 대부분은 ‘사자의 서’ 내용을 기록·시각화한 것이다.
심장 무게를 통한 심판은 저울 양쪽에 망자의 심장과 진실·정의·질서 등을 상징하는 마아트 신의 깃털을 각각 올려놓고 그 무게를 비교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심장이 한 사람의 전 생애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봤고, 실제 미라 제작 때에는 다른 장기들과 달리 특별히 다뤘다.
심장은 한 사람이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지가 오롯이 담겼다고 믿었다. 그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지은 죄가 적어 내세에서의 부활·영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죄가 많아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영원히 소멸된다.
심장 무게 달기는 ‘사자의 서’에서도 가장 유명한 삽화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림에는 망자를 안내하는 아누비스, 심장과 깃털이 놓인 저울,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울 경우 심장을 먹어치워 망자를 소멸시키는 악어 머리·하마 다리 모습의 괴물 암미트(암무트), 심판 과정을 기록하는 따오기 머리의 토트, 망자를 인도하는 매 머리의 호루스, 앉아서 이시스·네프티스의 보좌를 받는 오시리스 등 주요 신들이 등장한다.
사실 사후세계와 부활·영생에 대한 믿음, 이에 따른 장례문화는 고대 문화들 곳곳에서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집트가 유독 관련 유적·유물이 많다. 그만큼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이 뚜렷했고, 그 내세관이 실제 삶에도 영향을 끼쳤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죽음으로 인해 삶이 존재하고 더 충실해질 수있듯 죽음과 삶을 함께 고민하고 성찰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처럼 지금 여기 현대인들 모두도 죽음을 맞는다. 어쩌면 ‘죽기위해 살아가는’ 인간은 삶과 죽음을 둘러싼 끝없는 사유,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묻는 실존적 물음을 늘 마주할 수밖에 없다. 고대 로마인들도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메멘토 모리)고 외치지 않았던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적·유물들, 심장 무게 달기와 같은 심판 과정은 시공을 초월해 우리들 삶의 유한성을 다시 일깨운다. 그리하여 유한한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묻는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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