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기자의 영화감] 창조주를 넘어선 피조물… ‘가여운 것들’
성인 몸에 태아 뇌 이식한 벨라
원초적 욕구 충족 단계서부터
지성·감성 갖춘 인격체로 성장
무가치한 신의 피조물서 탈피
스스로의 결단으로 자신 창조
매주 영화는 개봉하고, 관객들은 영화관에 갈지 고민합니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립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봅니다.
멀쩡하게 생긴 여성이 뒤뚱뒤뚱 걷고, 피아노를 꽝꽝 두드리며, 갑자기 오줌을 쌉니다. 벨라 백스터(에마 스톤)가 원초적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이유는 아가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한 벨라는 아버지 격인 고드윈 박사(윌럼 더포)가 창조한 과학의 산물이죠. 집이라는 폐쇄적 세계 안에 구속하기엔 자유의 욕망이 컸던 벨라는 세계를 향해 모험을 떠나고, 다양한 사회적 층위의 사람들을 만나며 인류사를 압축해 경험합니다.
6일 개봉한 영화 ‘가여운 것들’(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은 강렬하고 도발적입니다. 매혹적으로 축조된 인공적 세계 안에서 신의 섭리를 조롱합니다. 신화를 비틀어 기괴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란티모스 감독의 장기가 잘 발휘됐는데요. ‘태초에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기독교 교리와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비틀기이자,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마이 페어 레이디’로 영화화)의 뒤집기 버전입니다.
◇스스로 만든 ‘2차 저작물’이 신이 만든 ‘원본’보다 낫다?
벨라는 첫 여행지인 파스텔톤의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원초적 욕구를 채웁니다. 함께 여행을 떠난 한량 덩컨 웨더번(마크 러펄로)과 시도 때도 없이 ‘욕망의 뜀박질’(섹스)을 하고, 달콤한 음식과 노랫소리를 겪습니다. 이어 질식할 듯한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유람선에선 책 읽는 할머니와 흑인 냉소주의자를 만나 지성을 습득합니다. 황금색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선 사회의 잔혹함을 목격하고 연민을 느끼죠. 이후 무채색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그는 자신의 몸을 생산수단으로 삼아 매음굴에서 몸을 팔며 자본주의 전선에 뛰어듦과 동시에 동료와 함께 사회주의를 습득합니다. 벨라의 경험은 인류의 진보 과정과 유사합니다. 욕구를 채우고, 머리를 채우며, 마음을 채운 후 사회 구조를 체득한 것이죠.
벨라의 성장에 따라 프레임은 극적으로 변합니다. 어안 렌즈와 광각 렌즈를 통해 벨라와 그를 둘러싼 기괴한 세계를 극도로 왜곡해서 보여줬던 영화는 벨라가 성장하며 시야가 넓어지는 만큼 점차 정상적인 프레임으로 바뀝니다.
아버지인 고드윈이 위독하단 사실을 전해 듣고, 런던으로 돌아온 벨라는 발전된 문명처럼, 지성과 감성을 갖춘 인격체로 성장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 남편(크리스토퍼 애벗)의 등장으로 인간성이 결여됐던 자신의 불편한 과거 ‘빅토리아’가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여기서 편의상 본체였던 빅토리아를 ‘원본’, 고드윈이 빅토리아를 의학적으로 다시 조합해 만들어낸 벨라를 ‘1차 저작물’, 몸으로 부딪치며 인간사를 겪고 성장한 벨라를 ‘2차 저작물’이라고 통칭해보면, 영화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신의 피조물이었던 원본은 잔혹했고, 임신을 거부하며 다리에 몸을 던진 인물이죠. 1차 저작물은 기괴한 실험체였을 뿐입니다. 그에 비해 2차 저작물은 훌륭하게 성장한 후, ‘신’(God)이라 불리던 아버지의 집과 일을 물려받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벨라에게 고드윈은 말합니다. “벨라 백스터는 네가 만든 거야.”
신의 피조물일 땐 잔혹하고 악한 ‘괴물’에 가까운 인간이 스스로 결단을 통해 성장하면서 연민과 지성을 갖춘 선한 ‘인격체’로 자라난 거죠. 쉽게 말해 신이 만든 원본보다 자신의 힘으로 성장한 2차 저작물이 낫다는 겁니다. 벨라를 만들었던 고드윈이 ‘신’이라 불리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벨라는 고드윈으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보다 이상적으로 구현해나갑니다. 자신의 손으로요.
◇페미니즘 vs 반페미니즘
영화는 성에 대한 벨라의 변천사를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빈번하게 나오는 성애 장면에서 에마 스톤은 몸을 던진 열연을 펼쳤습니다. 사랑보단 원초적 욕구를 중시하고 있기에 성애 장면은 노골적입니다. 더구나 초기의 미성숙한 벨라가 덩컨과 섹스하는 장면은 불편하게 보일 여지가 있죠. 그렇다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로 벨라를 묘사하고 있다고 치부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벨라는 늘 성에 있어서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욕구의 주체로서 행동합니다. 제작자로도 참여한 스톤은 “음식이나 철학, 춤에 대한 발견처럼 섹스도 그녀의 여정 중 일부”라고 강조했습니다.
◇가장 덜 불편한 란티모스 영화
영화에 구현된 기괴한 이미지와 뒤틀린 풍자는 란티모스 감독의 장기입니다. 그런데 그의 전작들에 비해 영화는 덜 불편합니다. 그 이유는 인물이 처한 도덕적 딜레마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짝짓기를 강제하며 ‘사랑을 하지 않으면 동물이 된다’는 ‘더 랍스터’(2015)나 ‘가족 중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가’를 묻는 ‘킬링 디어’(2018)와 달리 ‘가여운 것들’에서 벨라의 성장은 의심 없이 피상적으로 이뤄집니다.
이러한 변화는 배우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진 데 기인한 것입니다. 란티모스의 전작에서 배우들은 감독이 만들어낸 인위적 세계 안의 꼭두각시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 이어 이번 영화도 배우들의 에너지가 두드러집니다. 연기 보는 맛은 있지만, 란티모스 특유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냉소적 시선이 줄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다가오지만 란티모스 팬이라면 싱거울 것 같습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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