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심판 동의, ‘보이지 않는 사표’ 막으려면 민주당 함께 못 해”

최혜정 기자 2024. 3. 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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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정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대표
차별금지법 등 진보 가치 실현 원하는 유권자 존재
민주 비례연합 참여하면 ‘보이지 않는 사표’ 발생
민주당과 접전지 지역구 단일화 협상은 진행중
‘기후교통카드 의제화’ 정의당 성과로 인식되지 못해
‘2중대 딜레마’ 제도 변화없이 빠져나오기 어려워
녹색당과 선거연합, 협동적 관계로 시너지 낼 것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대표가 2월28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올해 민주노동당 원내 진입 20년, 정의당 창당 10년을 맞는다. 진보정당이 제도권에 정착한 지 20년이 됐지만, 대표적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어느 때보다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을 확보할 기회로 여겼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형해화됐고, 이른바 ‘조국 사태’ 대응은 당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 최근엔 잇따른 탈당 행렬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생존 시험대에 선 정의당은 4·10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의 선거연합체인 녹색정의당을 통해 ‘가치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언했다.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만나 “진보적 가치를 국회에서 실현시켜줄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존재한다”며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정당투표로) 정의당을 찍었던 270만명을 돌아오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정의당이 위기라고 한다. 대선과 지방선거 득표율은 직전 선거의 반토막이었고, 현재 지지율은 2%대다. 원인을 진단한다면?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실패했다. 원내 정치로만 보면,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많은 의석을 갖고 있다보니 소수정당과 연대·연합할 필요성이 없었다. (20대 국회와) 같은 6석이어도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부족했던 면이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이후로 신뢰 자본을 잃어버린 부분도 뼈아프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노란봉투법 등 계속 해왔던 것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국민 성에 차지 않는거 같다. 또 심상정 의원을 제외하고 의미있게 존재감을 인정받는 차세대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하는 고질적 문제도 있다.”

―박원석 전 의원과 배복주 전 부대표 등 핵심 당직자와 류호정 의원 등 청년 그룹이 잇따라 탈당했다.

“왜곡된 선거 제도 안에서 10% 지지를 얻어도 의석 5~6석에 그치는 상황이 반복되자 지친 것 같다. 정의당에서 미래를 그리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양당 체제를 깨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공감한다. 그렇다고 해서 양당 아닌 그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원칙없는 연합에 공감하긴 어렵다. 특히 이준석, 이낙연 같이 거대 양당 대표 출신들이 만든 정당과 결합하는 형태를 납득할 수 없다. (정의당) 정치 노선 문제보다 연대·연합과 관련된 의견 차이, 그리고 이를 통해 본인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느냐 여부 등 실리적 판단이 압도했다고 본다.”

―정의당이 의제보다 거대 양당 사이 포지셔닝에 과도하게 집중한다는 비판도 있다.

“검수완박이나 이재명 체포동의안 등 양당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게 주로 부각됐다. 의제를 사회에 올리는 역할도 정치의 일부인데, 그런 부분에서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예컨대 저희가 최근 몇년 동안 계속 대중 무상교통 얘기를 해왔는데, 지금 기후교통카드 등으로 의제화됐지만 우리 성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또 저희가 내는 정책 중 상당 부분이 바로 양당에 수용되는 부분도 있다.”

―심상정·노회찬 이후 차세대 정치인이 없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나왔다.

“노력을 안한 건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1, 2번을 청년(류호정, 장혜영)으로 배치한 게 착오였다고 보는 분들도 있지만, 경선으로 정한 것이다. 위성정당 창당을 예상치 못해 아랫 순번까지 의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무력했다는 지적은 받아들인다. 김종철 전 대표가 불미스런 일로 퇴장한 부분도 뼈아프다. (개별 의원이) 의정활동을 잘한다 해도 노동자 밀집 지역이나 노회찬·심상정급 아니면 지역구 돌파가 잘 안된다. (선거) 막판에 사표론이 작동하는 문제도 있다.”

―정의당이 페미니즘 이슈만 강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장혜영 의원은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조세 문제 등을 많이 제기했고, 류호정 의원도 노동 문제나 소상공인 등 민생법안 발의를 많이 했다. 젠더 문제에 대해 발화하는 게 주로 보도되고, 의정활동도 균형감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아쉬운 점도 있겠지만, 과소평가되거나 왜곡된 프레임도 분명히 있다.”

―진보정당 원내 진입 20년이 됐는데 여전히 어렵다. 진보정당 실험은 실패한 것인가?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판단해 주실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꾸 제도(선거제) 탓만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동의한다. 다만 물건이 좋고 잘 팔리는데, 팔아도 팔아도 적자가 나서 회사를 접는 경우도 있다. (21대 총선에서) 9.6% 지지를 받았는데 여전히 6석이다. 제도 개혁 없이는 진보정당 뿐 아니라 제3지대 정당은 지속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한국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의제를 던지는 정당이라기보다는 거대 양당이 비상식적인 일을 할 때 상식을 얘기하는 역할로 축소된 면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기자회견 때 드린 말씀이 있다. 핵발전을 가속화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을 원하면서도 (민주당이 추진하는) 가덕도 공항에 반대하는 기후시민을 위한 정당, 여성가족부를 해체하려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면서,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하는 당에 투표하고 싶은 시민을 위한 정당 등이다. 정의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 구도에는 동의하지만, 민주당과는 함께 갈 수 없는 게 명확하다. 진보적 가치를 국회에서 실현시켜 줄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있다. 우리가 비례연합정당에 포함됐다면 투표장에 안 나오는 ‘보이지 않는 사표’가 발생했을 것이다.”

―비례연합에 참여하면 몇 석은 보장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심판하고 싶지만 민주당은 지지할 수 없는, 사표를 양산하게 된다. 실리적으로 따진다면 (참여가) 맞을 수도 있지만, 유권자 입장에선 명분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는거다. 진보 정치를 지지해 준 유권자들을 외롭지 않게 하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위성정당엔 참여하지 않고 지역구 선거 연대는 가능하다는 건 어떤 취지인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2012년 민주통합당(옛 더불어민주당)과 통합진보당(옛 정의당)이 병립형 선거제 아래 지역구에서 전국적 연대를 했다. 2016년 총선에선 인천·창원에서 야권연대를 했다. 무소속이던 윤종오·김종훈 의원 같은 분들이 민주당과 단일화해 원내에 들어왔다. 접전 지역에서 2016년 수준의 부분적 연대 가능성을 얘기한거다.”

―협상 대상 지역구가 구체적으로 정해졌나?

“27일 협상을 시작했다. 민주당은 (정의당에 대해) 진보당과 똑같은 방식을 고민하는 것 같다. 한 군데 정도 (민주당이) 무공천 하고, 나머지 지역은 경선으로 단일화하는 방식이다. 경선하면 민주당이 다 이긴다. 진보당은 비례 3석을 보장받았으니 (후보를) 다 내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지역구 완주 여부가 비례 선거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도 국민의힘과 양자 구도로 붙었을 때 이길 수 있는 후보들이 있다. 일괄적으로 전국적 단일화를 할 수는 없다.”

―민주당으로선 정의당과의 지역구 연대가 아쉬운 상황은 아닐 수 있다.

“지역마다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지난 총선 때 서울 용산에서 강태웅 민주당 후보가 권영세 후보에게 890표 차이로 졌다. 그때 우리 당 후보가 4000표 이상 얻고, 민중당도 1000표 이상 얻었을거다. 인천 지역도 좀 복잡해질 것이다. 접전 지역에서 우리가 완주하지 않을 때 민주당이 얻는 이점이 있다.”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대표가 2월28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번 총선 목표치는?

“2020년 총선에서 (정당 투표로) 정의당을 찍었던 270만명을 돌아오게 하는 게 목표다. 지역구에서 복수 당선자를 내고 비례의석에선 지난 총선만큼 의석을 갖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진보정당 정치인들은 목표가 ‘교섭단체’, ‘10석 이상’이라 했는데 오히려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번 총선 핵심 의제는 뭔가?

“사회적 불평등 해소, 기후 정의, 지역소멸 대응 전략이다. 지난 대선 때부터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주장했다. 서울대 만큼 예산이 투입되는 대학이 있어야 한다는거다. 지역의 고등교육 기관이 지역 허브로서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관련해선 자영업자, 소상공인 정책이 시급하다. 코로나 부채 문제 해결도 필요하다. 일자리 안정기금, 지역화폐 등도 늘려야 한다. 이상 기후에 따른 폭염휴가제 등도 도입이 필요하다.”

―비례대표를 2년씩 돌아가며 하기로 했다. 헌법에 국회의원 4년 임기가 보장되어 있지 않나?

“20년 전부터 토론되던 안건이다. 비례대표는 전문성에 기반한 것이다. 상임위원회는 2년만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2년씩 하는게 전문성을 더 살리는 방식이고 시민들에게 효능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내에서 오랜 토론을 거쳤고, 한 표 차이로 결정됐다. 그래서 다음 국회에서 실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녹색당과 선거연합을 했다. 선거 뒤 각자 당으로 돌아가는 ‘선거 플랫폼 정당’이라 했는데, 시너지 효과가 있는가? 의석 배분을 생각하면 손해는 아닌가?

“애초 노동당, 진보당에도 제안했지만 녹색당만 화답했다. 선거 앞두고 유권자들의 선택 폭을 압축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사표가 생길 수 있다. 정의당 빼고 다른 당들은 모두 득표율 3%에 못 미쳐 결국 사표가 된 것이다. 협동적 관계를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고 봤다. 당내에서도 ‘녹색당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분들이 30% 정도는 됐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은 걸로 평가해달라. 적어도 우리보고 꼼수 정당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의제가 겹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정의당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이들이 있다.

“진보정당에서 나올 법한 정책들이 민주당에서 발의되는 경우가 있다. 의원이나 보좌진 성향에 따라 산발적으로 제기된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색은 같은데 농도만 다른 정당으로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게 분명히 있다. 우선 진정성이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을 거부권 걱정없던 여당일 때는 무시하다가 야당일 때 뻥뻥 지른다.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가 일관되지 않다. 또 돈봉투 사건 같은 추문이 여전하고, 지역 발전이란 명목 아래 토건 중심 세계관이 여전하다.”

―정의당 일부는 민주당과 연합을 안해서 힘들어졌다고 하고, 일부는 연합을 해서 힘들다고 한다. 김 대표 의견은?

“정답이 있었던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정치를 못하니까 연합 여부가 더 부각된 것 같다.”

―다른 정치라면?

“우리가 의제를 먼저 던지는 정치를 해야 되는데 그런 걸 잘 못하고 있다. 또 그런 의제가 있더라도 의석 수가 적으니까 발화에서 끝난다. 그러니 연대, 연합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하나로 얘기할 순 없다. 우리가 노란봉투법을 가결시킬 때 민주당과 연합 없이 가능한가? 연합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단 연합정치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갖고 얘기해야 된다.”

―정의당의 ‘2중대 딜레마’ 해소 방법이 있나.

“제도 변화 없이는 사실 이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는 어렵다고 본다.”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사들 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진다. 정의당은 ‘국민참여 공론화위원회’를 제안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지금 의대 정원 숫자만으로는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늘어난 인원이 제대로 공공 의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논점이 증원 규모에만 맞춰져 있다. 종합적이고 복합적 논의가 필요하고,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국민과 정부, 의료계가 모두 참여하는 방식으로 대화해야 한다. 국민 입장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한국 사회가 불행한 미래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워낙 갑자기 등장한 정부여서,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 비전은 부족했던 것 같다. 교육·노동·연금개혁을 한다는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건지가 없다. 한미동맹을 무척 강조하지만, 미국의 실질적 무역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 대한 대안도 없다. 또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푸는데 있어 무능하고 계획이 없다.”

―원래 변호사이자 방송인이다. 굳이 어려운 시기에 비대위원장, 상임대표를 맡은 이유가 뭔가?

“20년 동안 투표할 수 있게 해준 정당이 망가지는데, 심상정 탓이니 류호정 탓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게 싫었다. ‘유권자나 일반 당원이었던 사람의 책임은 없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한테까지 이 제안이 왔으면 이건 정말 위기인 것이고,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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