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서툰 엄마와 기차놀이·로션놀이… 스킨십에 마음의 문 ‘활짝’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다문화·다자녀 가족 7팀 대상
관계개선 프로그램 10회 진행
의사소통 불편, 어색했던 모녀
윷놀이·자석놀이하며 절친 돼
조모에 자라 엄마 멀어진 아이
눈맞춤하고 포옹하면서 유대감
“한국에 온 지 오래됐는데 한국 놀이를 경험할 기회는 부족했습니다. 직장 다니느라 딸과 놀아줄 시간도 없었고요. 그동안 딸 혼자 많이 외로웠을 텐데 이번 기회에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지난해 9월 20일 초록우산 대구종합사회복지관. 인생 첫 윷놀이에 앞서 백주연(가명) 양 어머니는 들뜬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놀이가 시작되고 상담사가 규칙을 설명하자 주연 양은 지루하다는 듯 어머니의 팔을 붙잡고 기대기를 반복했다. 딸이 바르게 앉도록 지도한 그는 상대 팀에서 윷이 연이어 두 번 나오자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화를 내는 주연 양에게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내 화를 가라앉힌 주연 양이 ‘높이 던져야 한다’며 감정을 말로 표현했을 땐 충분히 공감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윷놀이를 마친 모녀는 서로 안아주고 응원하며 색깔 자석 놀이를 이어갔다.
이 같은 풍경은 불과 두 달 전까지 상상조차 어려웠다. 주연 양이 어머니를 따르기 시작한 것은 대구종합사회복지관이 지난해 하반기 진행한 다문화가족 관계 증진 프로그램 ‘핑퐁패밀리’에 참여하면서다. 가족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다자녀 가족 7팀(14명)을 대상으로 10회에 걸쳐 가족 치료 놀이를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초반만 해도 주연 양은 “엄마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서 답답하다”며 상호작용, 의사소통상의 불편함을 표현했다. 이는 놀이 도중 어머니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무시하는 행위로 이어졌다. 주연 양이 지나치게 안기고 기댈 때도 어머니는 이를 거부감 없이 수용했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학부모 상담도 남편이 가고 딸과 관련된 일은 전부 남편이 해결해 왔던 터라 딸을 대하는 게 마냥 어색했다.
중기에 들어서면서 어머니가 훈육을 배우고 놀이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자 주도권이 어머니 쪽으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새로운 양상의 갈등이 생겼지만 상담사, 보조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점차 변화한 둘은 프로그램 말미 새로운 놀이를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과 긍정적인 결과의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는 ‘절친’이 됐다.
순간의 어색함을 견뎌내고 즐거운 변화를 경험한 또 다른 가족도 있다. 할머니 손에 자라 ‘어머니와 친해지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됐다는 나라 양은 초반 어머니와의 눈 맞춤조차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차놀이, 로션 놀이 등을 통한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을 시작으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고, 놀이 진행이 안정감을 찾아갈 즈음엔 어머니에게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해 감동을 안겼다고 한다. 아동이 어머니에게 다가가 머리에 뽀뽀하는 가정, 어머니와 아동이 서로 마주 보고 얼굴에 뽀뽀하는 가정, 서로에게 “고마워요!” “사랑해요!”라는 말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가정,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가정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회기를 거듭하면서 참가자 사이 유대감도 나날이 커졌다. 복지관 관계자는 “서로 육아 고민을 나누는 모습, 짝을 바꿔서 활동할 때 모든 아동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아동은 “매주 수요일이 기다려질 만큼 엄마랑 단둘이 시간 보내는 게 즐거웠다”면서 “평소엔 한국어를 잘 못 해 조용한 엄마였는데, 여기서는 잘 웃고 말도 많이 하시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같은 변화는 정량적으로도 나타났다. 복지관에서 가족 탄력성(가족이 위기와 스트레스에 적응하고 가족의 역기능을 야기하는 조건 속에서도 역경으로부터 회복하는 능력 척도) 검사를 프로그램 전후로 실시한 결과, 사전점수와 사후점수 평균이 각각 52.3점, 65.8점으로 조사돼 총 13.5점 향상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공동기획
이소현 기자 winn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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