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규 교수의 조언, 노후가 비참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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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65살 이상에 해당하는 시니어 세대가 1,000만 명이 된다는 것.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인구가 나이를 핑계 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여생을 보내야 할까? 생각만 해도 ‘지루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이보규 21세기사회발전연구소 소장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라”고 조언했다. 어느 인생이든 갑자기 행복해질 수 없으니 지금부터 어떤 노후를 보낼지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에게 행복한 노후를 준비하는 법을 물었다.
36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 은퇴 후 강사가 됐습니다. 접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자립하기 위한 기회를 잡은 것이죠.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니까요. 이전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노후 문제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부모가 나이 들면 자식이 돌봐주는 게 당연했죠. 그런데 요즘 어떤가요? 경제관념이 서구화되면서 자식은 부모의 문제는 부모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아요. 65살 노인 자살 빈도는 인구 10만 명당 46.6명으로 OECD 노인 자살률 평균인 17.2명보다 2.5배가 넘는 수준이죠. 왜 그럴까요? 노인 빈곤 때문이에요. 노인 자살률과 마찬가지로 노인 빈곤율 또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아요. 66살 이상 노인 중 40.4%가 빈곤을 겪고 있어요(2020년 기준 OECD 국가의 노인 빈곤율 평균은 14.2%다).
대부분 평생 일하며 열심히 살았을 텐데 왜 그럴까요?
미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거죠. 1980년대에만 해도 평균수명이 65살이라 노후라는 말은 의미가 없었죠. 저 또한 퇴직 후 개인연금을 5년으로 받을지, 10년으로 받을지 선택해야 했는데, 당시 62세라 10년으로 나눠 받으며 쓰려고 했어요. 저축한 돈을 다 쓰면 수명이 다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연금을 다 받고 10년 넘게 지나 84살이 됐는데 아직도 창창해요. 그 시절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우리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어요. 이제는 노인도 독립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독립적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경제활동을 하고 취미를 찾고 사회 활동을 해야 합니다. 흔한 말로 “나는 사주팔자를 잘못 타고나서 가난할 수밖에 없어. 돈이 없으니까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말하며 의욕을 갖질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가진 어떤 것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없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정부가 준비해놓은 제도를 찾아야 해요. 각종 제도가 있는데 스스로 이용하지 못하면 그림의 떡입니다. 의욕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운동을 해야죠. 아직 어리다면 노후 준비를 차근차근해야 하고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스펙을 쌓는 거죠. 각자 스펙을 쌓아 월급을 많이 받거나 창업해 이윤을 남겨 저축하려고 노력해야죠. 내 주머니에 자금을 쌓아야 해요.
언제부터 노후 자금을 준비해야 할까요?
4050대요. 외국에서는 결혼식이 끝나면 부부가 은행을 찾아가 퇴직한 후에 세계 일주를 떠나기 위한 적금을 들어요. 결혼과 동시에 노후 대비를 하죠. 그런데 우리나라 4050대는 건강하고 수입도 많아서 내일이라도 최악의 상태가 올 수 있다는 걸 몰라요. 건강하고 윤택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돈이 있을 때 저축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수입에서 일정 금액은 저축해야 해요. 그게 시드 머니(종잣돈)가 되는 것이죠.
자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돈은 생명체이므로 늘려야 해요. 그러려면 투자해야 하니 부동산이나 주식을 살펴봐야죠. 젊어서는 실패해도 회복할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투자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이자율이 높은 채권이나 배당금이 높은 우량주를 찾아야죠. 그러나 나이가 많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복할 시간이 없으니까 있는 돈에서 아껴 써야 해요.
인생은 의도적으로 살아야 해요.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내 몸값을 높여야 하죠.
“행복은 주관적인 것”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라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어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거예요. 아픈 곳이 없고, 먹고사는 데 경제적으로 지장이 없으며, 부부 관계가 원만하고 타인에게 생각이나 행위에 대해 비난받을 일이 없으면 행복할 수 있죠. 보통 원하는 걸 성취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명문대에 가면, 취업하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행복은 꿈다운 꿈을 가져야 이룰 수 있어요. 성취감을 목표로 하면 목표를 달성한 후엔 어떻게 할 건가요? 단순히 명문대에 가는 게 아니라 명문대에 가서 뭘 하겠다거나 좋은 아내를 얻어 뭘 하겠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죠. 좋은 아내를 얻어 자녀를 낳고, 자녀를 나보다 나은 인격체로 키우겠다는 식의 꿈 너머의 꿈을 갖도록 노력해야 해요. 때로는 착각이 도움이 되기도 하죠.
착각이 행복하게 만든다는 의미인가요?
행복하려면 항상 웃어야 하는데 착각한 순간에 행복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내가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죠. 그런 착각이 행복을 준다는 의미예요. 단, 건강하지 않은데 건강하다고 착각하거나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면서 승진할 것이라고 으스대는 식의 착각은 하면 안 되죠. 대전제는 철저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인생은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의도적으로 살아야 해요.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내 몸값을 높여야 하죠.
인생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어렵죠.(웃음)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모두 윈윈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얘기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과 신뢰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아서 상대가 나를 신뢰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좋은 사람은 어딜 가든 평판이 똑같아요. 그만큼 믿음직스럽게 행동한다는 의미죠. 평판은 나의 처신에 따라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약속했으면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제일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죠.
가족에게 잘해야 해요. 직장 동료나 동창, 친구, 지인 등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그중 제일 어려운 것은 부부 관계입니다. 상대방의 애정 관계를 의심하고 금전 관계를 불신하면 갈등이 시작돼요. 만약 배우자에게 “화났어?”라고 물었는데 “화 안 났다”는 답변을 들었다면 그냥 믿으세요. 거기서 “화났잖아? 화났는데 왜 아니라고 해?”라고 윽박지르지 말라는 거죠. 상대방의 말을 믿지 않아 갈등이 시작되면 회복할 수 없는 관계까지 치달아요. 갈등은 어느 인간관계에든 있어요. 역지사지해 내가 너의 뜻을 받아들이려고 해야죠. 내 생각은 옳고 너의 생각은 틀리다가 아니라 내 생각도 너의 생각도 옳다고 여겨야 해요.
부부 관계를 잘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요?
남자들은 구슬을 가진 공주를, 여자들은 백마 탄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데 막상 사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아요. 상대를 정확히 모르니까 그렇죠. 내가 결혼한 지 55년이 됐는데 아직도 아내의 마음을 몰라요. 아내가 화를 내면 며칠 지나서야 왜 화를 냈는지 알 때도 있어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서로 맞춰나가야 하는데 상대방이 내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걸 두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고치겠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결혼식 주례를 250번 정도 했는데 그때마다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상대방을 도우려고 얻어 왔다고 생각해라.” 결혼은 내가 밥하기 싫어서 밥해줄 사람을 구한 게 아니라 내가 받으려고만 생각하면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못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상대방이 밥할 수 없어서 내가 도와주려 결혼한 거예요. 또 남자는 아내가 옳다고, 여자는 남편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훈련이 돼야 합니다. 내가 옳다 생각하고 상대방이 내게 맞추길 바라면 가정의 화목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어려운 것들입니다.(웃음)
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실천해야 해요. 젊어서 부부 싸움은 금방 화해할 수 있어요. 포옹하고, 입을 맞추며 스킨십을 하다 보면 금세 풀리죠. 그런데 나이 들수록 갈등이 쉬이 해소되지 않아요. 그땐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내게 시집오지 않았으면 덜 고생했을 텐데’, ‘내가 저 사람을 더 뒷바라지했으면 더 성공했을 텐데’라며 동정해야 해요. 그러면 인생이 완성됩니다.
어느 인간관계든 갈등이 있어요. 내 생각도, 너의 생각도 옳다고 여겨야 해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의 평가는 내가 살아온 세월 동안 반복된 행동의 결과입니다.
노후에 하지 않아야 할 10가지
늙은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많아요. 실버 세대, 꼰대, 노친네 등이 있죠. 그중 노인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어르신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어르신이라고 불리려면 10가지를 조심해야 해요.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요?
첫째는 나이를 묻지 않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이 나이를 물으면 대화하고 싶지 않아 해요. 둘째는 ‘하라’, ‘하지 마라’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를 가르치려고 들면 어르신이 아니죠. 셋째는 젊은 사람들이 뭘 하지 않는다고 ‘나 때는’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말은 곧 인격입니다. 입은 도구일 뿐 말은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죠. 생각을 좋게 가져야 말이 예쁘게 나옵니다.
또 무엇이 있나요?
넷째는 과거 무용담을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전에 자식을 위해 어디까지 했다고 말하면서 자식에게 압박을 주면 안 됩니다. 다섯째는 출신 학교, 가문, 친구 자랑을 하면 안 됩니다. 나 자신이 발광체가 돼야지 나와 관계없는 사람을 끌어들이면 그것만큼 창피한 게 없습니다. 여섯째는 젊은이가 나만 못하다고 자랑하지 않는 것이고, 일곱째는 내 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덟째는 내가 옳다고 토론하지 않는 것이지요. 아무리 어른의 말이 옳아도 젊은이를 이겨서 뭐 하겠습니까? 아홉째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생활을 진정성 있게 말해야 해요. 할아버지가 있는 집에는 청소년 문제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아버지가 아들의 성적을 나무라면 할아버지가 가서 “네 아버지도 공부를 못했다”라면서 진정성 있게 말하면 노인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젊은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나 출생 연도, 성별, 피부색이나 오늘의 날씨 같은 것은 내가 바꿀 수 없잖아요. 내 영역 밖에 있는 것은 불평하지 마세요. 또 지나간 일은 후회하지 마세요. 어차피 지난 일은 고칠 수 없으니까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세요. 후회를 바탕으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더 좋은 내일을 창조하세요. 과거를 한탄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느라 오늘을 실패하면 안 됩니다. 지나간 것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게 지혜로운 사람이죠.
마지막으로 <우먼센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리 인생은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나뉩니다. 그때마다 인생을 디자인해 인격을 갖추고 살아야 해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의 평가는 내가 살아온 세월 동안 반복된 행동의 결과입니다. 저는 “태양은 태양을 향해 걷는 자에게 비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태양이 하늘에 떠 있어도 햇빛을 받지 못해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단풍으로 살아갑시다. 비를 맞아 아스팔트에 떨어진 낙엽처럼 살아서 되겠어요? 찬란하게 빛나는 단풍처럼, 저녁 하늘을 물들이는 황혼처럼 노년의 삶을 연출하길 응원합니다.
기획 : 하은정 기자 | 취재 : 김지은(프리랜서) | 사진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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