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해진 “언제든 삶에 ‘예스’라고 말하길 바라”

김지영 기자 2024. 3. 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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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흥행에 깜놀, “전혀 예측 못했다”
●김고은 목소리가 가장 부러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운동

배우 유해진은 “영화 ‘파묘’의 흥행 돌풍이 그저 놀랍다”고 말했다.[(주)쇼박스]
"마니아만 좋아할 줄 알았어요. 전혀 감을 못 잡았네요."

영화 '파묘'에 출연한 배우 유해진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파묘'는 개봉한 지 1주일 만인 2월 29일 누적 관객수 330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아져서일까요. 기술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미장센이나 현장감이 진짜 독보적이구나 하고 감탄했지만 장례, 이장 같은 소재나 오컬트 미스터리 장르로 관객을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여겼거든요. 이런 뜻밖의 상황을 마주하니 그저 놀라울 뿐에요."

스타급 배우를 대거 캐스팅해도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각각의 배우가 개인기를 구사하면서 어벤저스처럼 팀워크를 발휘하는 작품도 있다. '파묘'는 후자에 속한다. 유해진‧최민식‧김고은‧이도현의 열연과 '한국판 오컬트 장인'으로 불리는 장재현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는 미국에서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의뢰인 집인의 화근을 없애기 위해 이장을 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유해진은 돈 냄새를 잘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손발을 맞춰 온 장의사 '영근'으로 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열연을 펼친다. 장재현 감독은 이런 그를 두고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배우라고 극찬했다.

재미있어야 마음 움직여

영화 ‘파묘’의 한 장면.[(주)쇼박스]
다른 작품에 비해 비중이 작은 역할을 맡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나.

"이야기의 맥을 끌고 가는 인물이 있고, 돋보여야 하는 인물이 있다. 내가 맡은 영근은 돋보이지 않지만 이야기의 맥을 끌고 가는 인물, 다른 세 사람보다 한 발자국 더 현실에 가까운 인물이다.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공감을 끌어내는, 영화를 한결 친절하고 설득력 있게 만드는 인물이다. 앞에서 끌던 두세 명이 비탈길을 만나면 슬쩍 밀어주기도 하는 그런 역할 말이다."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결정한 계기가 궁금하다.

"시나리오가 신선했다. 장재현 감독이 이런 장르의 이야기를 영화에 어떻게 녹여낼지 궁금해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다."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뭔가. "재미다. 감동을 주든 흥미를 느끼게 하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선호한다. 내가 흥미를 못 느끼면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잘해내기가 힘들 것 같다."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떠올린다면."촬영이 끝나면 바로 잊어버려서 지금까지 에피소드를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배우들은 귀신을 봤다고 하고, 장재현 감독도 혼부르기 할 때 몸이 으슬으슬 했다고 한다. 사실 나도 으슬으슬하긴 했는데 약 먹으니 다음 날 바로 괜찮아졌다."

가장 만족도 높은 장면을 꼽는다면. 

"김고은 배우가 신들린 연기하는 대살굿 장면을 잊을 수 없다. 편집도 기막히게 잘했고 그 연기를 하기 위해 김고은 배우가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는지 주욱 지켜봤기에 그 결과물인 대살굿을 보며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다."

김고은은 유해진에게서 "저 세상 유머러스함"을 뺏어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해진은 김고은의 무엇이 탐날까. 유해진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고은 씨의 목소리다. 노래를 너무나도 잘한다. 깜짝 놀랐다. 실력이 그렇게 대단할 줄 몰랐다. 영화를 보면서 느낄 것이다."

삶이라는 선물에 화답하는 방식

유해진은 1997년 영화 '블랙잭'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1997년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용가리라는 캐릭터로 강한 여운을 남기며 조연급으로 꾸준히 캐스팅된다. 그러다 '왕의 남자'(2005)의 육갑이, '타짜'(2007)의 고광렬로 인지도가 급상승하며 주연급 배우로 성장한다. 이후 여러 작품에서 공동 주연을 맡으며 흥행에 기여한다.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 '럭키'(2016)에서 자신의 장끼인 코미디의 맛을 제대로 살리며 약 70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이듬해 개봉한 '공조'가 누적 관객수 800만 명을 돌파하며 주연배우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다.

그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출연한 작품의 총 관객수는 1억5363만7229명으로 오달수(1억8488만6299명)에 이어 2위로 집계됐다. 작품 속에서는 친근하고 넉살 좋은 캐릭터를 많이 소화했지만 실제 성격은 조용하고 진지하며 차분하다고 전해진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그의 진중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작품 속에서 보여준 깨방정 연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기자의 질문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성의 있는 답변을 하기 위해 '사색'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촬영이 없을 땐 독서와 사색을 즐긴다. 몸을 많이 쓰는 활동도 좋아해 취미가 운동이라고 한다.

운동을 즐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침에 눈 뜰 때마다 너무 고맙다. 운동을 하는 큰 이유 중 하나도 내가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데 있다. 땀 흘릴 때 그런 감정을 가장 크게 느낀다. 정말 삶은 그 자체로 너무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를 헛되게 보내고 싶어서 하는 게 운동이다. 하루 한번쯤은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자'가 좌우명인가.

"좋아하는 명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서 예스라고 얘기할 수 있길'이란 말이다.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하다. 언젠가 참 그리워할 날들 아닌가. 그런 상념에 빠져 있다 보면 먹고 싶은 거 먹고, 걸어 다닐 수 있고, 이렇게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에 감사하게 되더라. 그래서 지방촬영 가서도 경치 좋은 데가 있으면 막 뛰어다니고 좋은 공기를 마시려고 한다."

‘타짜'로 스타 반열에 오른 후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남모르는 슬럼프가 있었나. 

"한동안 같은 캐릭터가 반복해서 들어왔다. 어떤 역할이 화제가 되면 그런 일이 벌어져서 의욕이 떨어지곤 했다. 그때가 슬럼프였다. 심적으로 힘들었다. 지금은 그런 걸로 힘들어하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것도 좋지만 늘 새로워도 힘들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애드리브에 강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매번 즉흥적으로 애드리브를 하나.

"애드리브를 현장에서 그냥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름대로 사전에 연구하고 공부해서 이 말보다 저 말이 낫지 않은지를 감독, 상대배우와 미리 상의한 후 애드리브를 한다. 단독 신이면 감독과 상의 하에 진행하지만 상대배우가 있는 신이면 상대배우와도 합의를 거치는 게 예의라고 본다."

외로움은 익숙함으로 극복해야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연기 철칙이 있나.

"대본을 소중히 하자는 것이다. 예전에 어느 유명한 야구 선수가 처음에 프로구단에 들어갔을 때 글러브를 정성스럽게 길들이는 것부터 배웠다고 하더라. 글러브를 잘 관리하는 것이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나 역시 대본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초심을 지키고자 한다."

배우는 외로운 순간을 견뎌야 하는 직업이다. 그 외로움을 견디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나.

"극복하는 노하우 같은 건 없다. 계속 연습해서 익숙해지는 방법뿐이다. 축구선수가 골을 넣기 위해 부단히 연습해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연습한다."드라마를 안 하는 이유가 뭔가. "감사하게도 영화가 계속 들어온다. 또 영화 쪽 작업 스타일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드라마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내용이 좋고 영화 같은 냄새가 있는 작품이면 꼭 하고 싶다."‘

파묘' 속편이 나오면 출연할 건가.

"물론이다. 이번 작품에서 안 죽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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