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잘 지내나요? 멜버른이 왜 좋냐면요
서울 사는 김나영 작가와 호주 멜버른의 삶을 잠시 뒤로한 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제니 & 제임스가 나눈 10문 10답.
▶Interviewee from Melbourne
류지영 파티시에 & 박진영 셰프
멜버른 7년 차, 서울 5달 차 파티시에 류지영(제니), 멜버른 13년 차, 서울 5달 차 셰프
박진영(제임스)
-자기소개, 간단하게 부탁해요.
제니 & 제임스 부부입니다. 둘 다 10년이 넘는 호주 생활을 하다가 다섯 달 전 귀국해서 서교동에 작은 와인바 '리퍼'를 열었어요. 리퍼는 8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저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과 다양한 와인은 물론, 멜버른에서부터 공수한 LP 바이닐(Vinyl)로 음악을 틀어요. 다정한 이웃들도 좋고, 가게를 운영하며 서교동이란 동네와 사랑에 빠졌어요. 멜버른을 떠나왔지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날도 마음 한구석에 그리고 있답니다.
-처음에 한국이 아닌 타국의 삶을 생각할 때 특별히 호주를, 그리고 멜버른을 고른 이유가 있었나요?
제니 ▷고등학교 졸업 후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에서 공부하기 위해 호주 시드니로 향했어요. 부모님은 제가 적응하지 못하고 울면서 돌아올 거라 예상하셨대요. 하하, 꿋꿋하게 시드니에서 3년 유학 생활을 마친 후에 더 조용한 도시에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애들레이드로 진학했고, 거기서 졸업했죠. 졸업 후에 취업을 준비하다가 보니, 다이닝 신(Scene)이 특히 발달한 멜버른에서 한 번 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떠나온 게 멜버른과의 첫 만남이었고, 그렇게 7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됐네요. 돌아보니 그토록 긴 시간 동안 한 도시에 정을 붙였다는 게 신기해요.
제임스▷ 군대 전역 후 진로를 고민하게 되면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영어권 나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그땐 다양한 나라의 실시간 정보가 올라오는 SNS도 없었고, 지금처럼 정보 공유가 활발하지도 않았던 때라 특정 나라나 도시에 대한 대단한 갈망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아요. 마침 친척 한 분이 멜버른에 살고 계셨고, 그래서 큰 고민 없이 향할 수 있었죠. 심지어 그렇게 알게 된 멜버른이란 도시 이름이 꽤 마음에 들어서 그냥 꽂혔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도시를 고민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인연이 이렇게나 길어질 줄은 몰랐고요.
-멜버른은 두 분이 잠시 떠나온, 긴 시간 동안 삶을 꾸려 갔던 도시라 애정도 남다를 것 같아요. 각별하게 더 애착이 가는 동네가 있나요?
멜버른 중심업무지구(CBD)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피츠로이(Fitzroy)'라는 동네를 무척 사랑합니다. 개성 넘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특유의 동네 분위기, 특색 있는 레스토랑과 커피의 도시답게 다채로운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들, 볼거리 넘치는 빈티지 숍, 그리고 흔하지 않은 플레이리스트를 들려주는 가게들의 음악 선곡까지 즐기다 보면 오감이 모두 행복해지는 동네예요.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피츠로이가 마치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인 동네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피츠로이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고, 잠시 쉬어 가기 좋은,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칼튼가든이란 아주 예쁜 공원도 있어요. 산책하기 좋은 건 물론이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수도 있어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달까요. 특히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 구경 가 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저 역시도 멜버른 여행 이후 '피츠로이에 내 영혼을 두고 왔다'라는 표현을 항상 하고 다녀서 무척 공감이 가요. 이렇게나 사랑하는 멜버른에서의 삶을 잠시 접고 서울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요? 얼마나 머물다 돌아갈지에 대한 계획도 세워졌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건 역시 가족이에요. 둘 다 제법 긴 시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애틋함이 더 커지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좋은 걸 누려도 그걸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가족이 있었다면 조금 덜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멜버른을 깊이 사랑해서 그곳에서의 삶을 잠시 멈춘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요즘도 행복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더 머물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아직 못 내렸어요. 다만 서울이란 도시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때까진 있어 보고 싶어요.
-멜버른과 서울의 삶, 어떤 점에서 큰 차이를 느끼나요? 장단점 모두 궁금해요.
저희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결국 다른 매장들의 영업시간과 쉬는 날을 보면서 제일 큰 차이를 느끼는 것 같아요. 호주에서의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 있어서 무언가를 사러 가기 전에 '아직 영업 중이려나?'를 생각해 보게 되는데, 한 번도 문을 닫았던 적이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아, 맞다. 여기 서울이지!'라고 복기합니다. 결국 큰 차이점은 '워라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느 업장이든 영업시간이 길고, 빠르게 응대를 받을 수 있어 편하지만,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으로서는 결국 근무 시간이 길어지는 거니까요. 멜버른에선 그게 어디건 간에 일 처리 속도가 대부분 느려서 기다리는 게 익숙한 일상이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일하는 입장에선 정말 편한 거였구나 싶어요. 아이러니죠.
-제가 호주에 살아 보고 싶었던 이유와도 일맥상통해요. 저 역시 멜버른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 그 매력에 흠뻑 빠졌었는데, 꽤 긴 시간을 보낸 두 분이 말하는 멜버른살이의 장점을 듣고 싶어요. 제가 느낀 가장 큰 장점은, 이방인에게 굉장히 오픈 마인드인 도시란 점이에요. 멜버른에서 마주친 이들이 저를 여행자로 보지 않고 당연히 그 도시의 일원이겠거니 여기는 게 느껴졌거든요.
맞아요. 멜버른은 정말 말로 다 표현이 안 되는 매력이 있는 곳이에요. 계획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을 멜버른에서 보내고 온 후로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늘 뭐가 그리 좋았었는지 물어보는데요, 그럴 때마다 특별한 장점을 꼽기보다는 '멜버른은 단점이 없는 도시야'라고 답해요. 도시 중심에서는 무료 트램을 이용할 수 있어서 교통도 편리하고, 예술의 도시답게 다채로운 전시와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초록의 공원과 반짝이는 호수, 그리고 커다란 바다가 모두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있다는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정이 많고 친절합니다. 모두 다양성을 존중해 주고요. 이렇게 나열하다 보니 더이상 바랄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좋은 도시네요, 멜버른.
-멜버른에서 여유 시간을 보낼 때와 서울에서 보낼 때, 어떤 차이나 공통점이 있나요?
이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조금 어려운 게, 아직 서울에서 제대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없거든요. 하하. 귀국한 후로 이사와 첫 매장 오픈, 저희 둘의 결혼식(작년 11월이었어요), 그리고 각종 행사까지 참여하느라 정말 쉴 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냈네요. 그래서인지 멜버른 단독주택에서 살 때 보냈던 여유로운 시간이 더 선명하게 기억나요.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새 소리를 들으면서 아침을 먹고(정말로요), 읽고 싶던 책을 몰아서 읽고, 또 까무룩 낮잠에 들었다가 노을이 질 무렵 깨어나 그 풍경을 바라보던 날들이요. 무슨 동화 속 한 장면 묘사 같지만 정말 저희가 보냈던 평범한 주말의 모습이에요. 말하고 나니 확실히 쉬어 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 둘 다(웃음).
-멜버른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이것만큼은 꼭 경험해봤으면 하는 것 세 가지를 꼽아 주세요.
첫 번째는 퀸 빅토리아 마켓이나 사우스 멜버른 마켓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해서 요리해 먹기, 매주 일요일엔 캠버웰(Camberwell)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인 선데이 마켓(Sunday Market)도 가 볼 만해요. 두 번째는 공원에서 피크닉 즐기기. 칼튼 가든(Carlton Garden) 외에도 포크너 가든(Fawkner Garden), 앨버트 파크(Albert Park)를 추천해요. 세 번째는 시티 중심에서 트램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세인트킬다(St. Kilda)' 바다에서 노을 구경하기.
-파티시에인 제니, 셰프인 제임스가 추천하는 멜버른 최고의 레스토랑 & 카페는 어디인가요?
퍼블릭 와인 숍(Public Wine Shop). 식사도 가능하고 간단하게 와인이랑 스낵을 즐기기 정말 좋은 곳이에요. 멜버른의 세심한 호스피탈리티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에요. 매주 메뉴가 바뀌는 재미도 있어서 여러 번 방문했었네요. 지금 저희가 운영 중인 리퍼의 롤모델 같은 공간이기도 해요. 클레이폿 시푸드(Claypot Seafood)도 추천해요. 해산물 전문점이에요. 한국의 포장마차처럼 원하는 해산물과 소스를 이야기하면 즉석에서 바로 조리해서 내어줍니다. 여러 군데 매장이 있어서 여행 동선에 맞는 지점 중 가까운 곳이라면 어디든 맘에 쏙 드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바게트 스튜디오(Baguette Studio). 멜버른식 브런치를 즐기기에 최적인 곳이에요. 커피도 맛있고, 브런치 메뉴와 페이스트리, 디저트까지도 몽땅 다 맛있는 카페라 강력 추천!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희는 국가를,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살아 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더 즐기고 감사히 여길 줄 알게 되었어요. 어디에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결국 '어떻게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단 걸 알게 된 거죠. 영원한 건 없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으리란 걸 알게 됐어요. 최대한 많이 즐기고, 도전해 볼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품고 살게 됐습니다.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도 미처 다 누리지 못하게 되고, 그건 곧 미래의 후회로 이어지기 마련이거든요. 현재를 충분히 즐겨야 과거도, 미래에도 모두 좋은 일 아니겠어요? 멜버른도, 서울도…, 세상에는 완벽한 곳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충분히 행복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멜버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은 또 서교동과 진심으로 사랑 중입니다.
*김나영 작가의 질문으로 시작된 해외살이 인터뷰 시리즈. 타국에서의 삶을 동경해 왔던 마음 때문인지 수상하게도 해외에 지인이 많은 김나영 작가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방인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해외살이를 묻는다.
글 김나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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